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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고함(孤喊)] 아그네스 그리고 삐라

장백산-1 2016. 12. 21. 01:34

[도올 고함(孤喊)] 아그네스 그리고 삐라

[중앙일보] 입력 2008.12.17 01:59   수정 2016.12.20 16:53

 
 아그네스(전미도 분·左)와 닥터 리빙스턴(윤석화 분). 아그네스는 속죄양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결국 정신병동에서 죽는다. 그러나 그녀는 고귀한 신앙의 유산을 모든 이의 가슴에 남긴다. [임진권 기자]
 
 

정미소는 쌀을 빻는 곳이 아니다. 아름다움(美)을 정련해 내는 곳이라는 뜻에서 윤석화가 서울 동숭동에 만든 연극공간이다. 한번 들러 보았더니 담배 연기가 자오록한데 물샐틈없이 가득 메운 사람들이 숨도 못 쉬는 듯 긴장 속에 무대를 쳐다보고 있다. 닥터 리빙스턴이 담배를 계속 피워대기 때문이다. 담배 좀 안 피울 수 없겠나? 리빙스턴은 말한다. 무엇엔가 미칠 수 있다면, 진정 자기의 내면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을 발견한다면 담배를 안 피울 수 있다고. 무대 위에서 어느덧 그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리빙스턴은 누구인가?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무신론 믿음이 때론 진보를 가로막는가


의사 리빙스턴 그녀는 아그네스 사건에 대하여 법정에 보고문을 제출하게 되어 있는 의사다. 아그네스 사건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생리(physiology)와 관련된 사안이라서 의사의 진술은 결정적이다. 아그네스는 누구인가? 그녀는 청순한 스물한 살의 수녀이다. 아주 깊숙하고 그윽한 수녀원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며 사는 그녀! 칼라빙가 꾀꼬리보다도 더 청아한 목소리를 수녀원 사람들 가슴에 울려 퍼지게 하는 순결하기 그지없는 그녀!

그녀가 어느 날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기를 탯줄로 목을 감아 숨지게 했다. 그리고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수녀원 사람들은 그녀가 하나님의 아이를 잉태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살인죄 아니면 정신착란밖에는 도망갈 구멍이 없다. 그러니까 의사 리빙스턴의 보고에 따라 필경 감옥 아니면 정신병동으로 가야 한다. 리빙스턴은 의사, 그러니까 과학자! 양심 있는 과학자라면 합리성에 충실해야 한다. 합리성에 충실하면 무신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리빙스턴은 무신론자로서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펴댄다. 두 시간 내내 무대 위에 등장하는 것은 세 여인뿐. 아그네스, 수녀원 원장, 리빙스턴! 이 세 여인의 삶이 우리의 의식 속에 교차하면서 인간만사가 다 얽혀들어 간다. 과연 이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마지막 대사. “그것이 바로 기적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절규하는 리빙스턴의 거친 숨결 속에 막은 내린다. 나는 무대 뒤로 가서 땀을 닦고 있는 윤석화를 만났다.

-당신은 깨진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깨진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린 것이겠지요.”

-왜 꼭 하나님께 향해야만 마음이 열린다고 생각하세요? 의사 리빙스턴의 무신론의 아성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배우로서 이 작품을 너무 천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작품을 잘 보셨네요. 무신론자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미 신의 존재를 전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을 부정하고 있는 그 사람이 부정하고 있는 신은 인간의 제도 속에 갇혀 있는 신의 허울일 뿐입니다. 모든 무신론자들은 좀 까다로운 유신론자일 뿐이지요. 어수룩하게 믿고 싶지 않을 뿐이죠.”

-교회에 나가십니까?

“나갑니다. 아그네스가 애를 낳았다든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상식에 조금도 위배되질 않아요. 기적일까요? 성령으로 잉태했다고요? 이 작품은 그런 허황된 논리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애기 낳는 것은 분명히 생리현상입니다. 이 작품은 생리현상 그 상식을 벗어난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의 상식 속에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이 있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질문케 만드는 데 이 작품의 성스러움이 있습니다.”

-나보다 말을 어렵게 하시네요. 좋습니다. 당신의 실존적 선택인 신앙의 세계에 관하여 내가 뭐랄 수는 없겠죠. 그러나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곧 기적이다라고 말하고 싶어 하신다면 그 믿음이 당신의 삶에 최소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믿는 순간에 머리가 맑아집니다. 의미? 믿음의 의미는 고난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인생은 어차피 고통스럽습니다. 그 고난이 궁극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고난이 오히려 나를 구원하는 것이죠. 나의 삶이 고귀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좌선을 해도 머리가 맑아집니다. 삶의 고난의 저변에 있는 번뇌가 사라집니다. 당신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다양하게 추구될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이 세상의 타 신앙체계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악마로 몰 수는 없습니다. 나는 기독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뿐이죠. 사교를 제외한 모든 고등종교를 저는 동등한 하나님의 역사로서 수용합니다. 어렸을 때 엄마 따라 예산 수덕사를 가곤 했던 추억이 제 평생을 지배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이지요.”

-신앙은 아름다울 수만 없어요. 신앙인들의 삶이 이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바로 그러한 문제들이 ‘신의 아그네스’가 말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모든 광신은 인간이 지어낸 환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은 교회라는 조직의 힘과 결탁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조직의 편익에서 벗어날 때만이 진정한 신앙이다, 이 믿음이 아그네스의 삶이 의미하는 것이라고 닥터 리빙스턴은 깨달은 것 같아요.”

-북한에 삐라를 뿌리는 것을 방조하고, 빨갱이가 다 사라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잘못된 일이죠. 기독교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포용입니다. 원수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동포를 포용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도마복음에 관해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중앙SUNDAY 기사를 주변 사람들이 많이 읽고 있어요. 원초적인 살아있는 예수의 육성을 듣는 것 같아요. 기독교는 그러한 모든 비판이나 도전을 수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생명입니다. 도전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죠. 저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정치도 서로 비판을 수용하면서 국민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주어야 할 것 같군요.”

대담 도올 김용옥, 사진=임진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