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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전도사 '완장' 차고 체육농단.. '잃어버린 3년'

장백산-1 2017. 1. 10. 15:13

세계일보

[심층기획] 

개혁 전도사 '완장' 차고 체육농단.. '잃어버린 3년'


최형창 입력 2017.01.10 13:27




체육농단 드러나며 청산 목소리 고조 / 프로스포츠협회 장악 의혹 / 한국스포츠개발원 멋대로 운영.. 비정상의 정상화 시급
최순실(61·구속기소)씨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김종(56·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렸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를 지낸 김종 전 차관은 2013년 관직에 오르자마자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체육계를 좌지우지했다. 프로스포츠협회를 만들어 프로 단체를 장악하는 등 자신이 진정한 개혁의 세력임을 자처하며 재임시절 스포츠계 곳곳을 흔들었다. 그러나 김종 전 차관이 국정농단에 깊숙하게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종 전 차관이 주도한 각종 사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김종 전 차관의 재임기를 ‘잃어버린 3년’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다. 따라서 하루빨리 김종 전 차관의 잔재를 청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체육계의 목소리가 높다.

김종 문화부 2차관이 2014년 3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체육계 비리 근절을 위한 범정부 스포츠혁신 특별전담팀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자료사진
◆프로스포츠 장악 멋대로 통합 마케팅 추진

한국프로스포츠협회는 2014년 12월 창립총회를 연 뒤 2015년 11월 공식 출범했다. 이전부터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프로스포츠 관계자들 중심으로 협의체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김 전 차관 부임 이후 공식 협회로 발족했다. 이 협회는 프로스포츠 수준 향상과 저변 확대, 질적 성장을 통한 자생력 강화가 목적이다. 7개 프로연맹(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농구연맹, 한국여자농구연맹, 한국배구연맹, 한국프로골프협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단체장과 5개 종목이 추천하는 1인, 문체부 관계자 1인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출범 초기 김 전 차관의 측근들을 전문위원, 실무진으로 채워 ‘문체부 대행사’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시장 논리에 따라 자생력 강화가 우선시돼야 하는데 지나치게 관 주도로 사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창립 초기 이 협회에서 일한 A씨는 “자율성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협회는 사단법인인데 에이전트 사업, 통합 마케팅 등 김 전 차관의 관심사업을 문체부가 강제했다”며 “특히 에이전트 사업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게 관 주도로 밀어붙였다. 말을 안 들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압박도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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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가 협회를 통해 시도하려던 사업 중 하나가 종목 간 통합 마케팅이다. 김 전 차관은 지난해 4월 충남 안면도에서 열린 프로스포츠협회 마케팅 워크숍에서 “7개 연맹의 로고를 하나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프로연맹 관계자는 “프로스포츠를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데는 동의하지만 종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하려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장논리를 우선해야 할 프로스포츠를 정부가 강제로 통합해 운영하려 한 셈이다.

협회가 생기고 같은 시기에 문체부의 주최단체 지원금 지원체계도 바뀌었다. 그동안 각 프로연맹은 스포츠토토 해외발매분(메이저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에서 나온 수익금을 같은 종목이 직접 가져갔다. 그러나 해외 경기 수익금을 국내 연맹이 챙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국회의 지적에 변경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토토 해외경기 수익금은 706억8600만원이다. 이 중 50%는 종목 간 성과평가에 따라 유소년과 아마스포츠 지원사업에 배분됐다. 30%는 투표권 미발행 종목에 투입됐다. 문제는 20%다. 이 지원금은 약 140억원인데 각 연맹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보고 문체부가 최종 승인해 지급한다. 하지만 지난해 지급된 지원금이 특정종목에 편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 관계자는 “종목 간 성과 평가와 계획서를 보고 차등지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종목 관계자들은 “문체부 지시에 잘 따르면 더 주는 식이었다”고 반박했다. 특히 프로스포츠 협회라는 중간 과정이 하나 더 생기면서 연맹과 구단에 갔던 예산 일부(140억원)가 협회로 배정된 것도 문제다. 한푼이 아쉬운 시민구단 입장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로스포츠협회 관계자는 “협회 예산 140억원 중 80억원은 다시 연맹과 구단에 나눠 주기 때문에 실제로 협회가 쓰는 돈은 60억원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다만 협회 역할의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한 연맹 관계자는 “그동안 각 연맹들이 문체부와 직접 씨름했다면 이제 협회가 거의 다 하기 때문에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또 다른 연맹 관계자는 “연맹, 구단 관계자들이 협회 출범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여 사례를 공유한다. 장점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맹들은 그동안 협회 사업이 종목 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됐다고 지적한다. 또 협회가 생긴 뒤 각 연맹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부정방지 교육을 일괄적으로 통합 시행하는데 강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밖에도 협회가 검토 중인 부정방지위원회 등 여러 사업이 리그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로스포츠협회 관계자는 “외부에서 김 전 차관 사람으로 분류됐던 인사는 다 나갔다. 조직이 아직 출범 초기단계여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종목 간 특성을 고려하는 등 세부내용은 각 연맹과 협의해 바꿔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전경. 한국스포츠개발원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부임 이후 이름이 바뀌고 조직이 개편되는 등 큰 풍파를 겪었다. 
하상윤 기자
◆스포츠과학 산실 한국스포츠개발원도 좌지우지

지난해 브라질 리우올림픽 양궁 전관왕 제패의 신화 뒤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연구진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 2011년부터 양궁 대표팀을 지원한 김영숙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올림픽 전 뇌파치료를 이용한 뇌신경훈련(뉴로피드백)을 대표팀에 적용했다. 이 훈련은 선수들이 실전에서 심리안정을 취하는 데 큰 효과를 봤다. 이런 연구는 개발원 연구진의 기초연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개발원 스포츠과학실은 최근 몇년간 기초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경제’라는 이름하에 스포츠산업을 융성하겠다는 김 전 차관이 개발원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개발원은 1980년 12월 대한체육회 스포츠과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이후 1989년 분리독립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 된 뒤 1999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기관으로 들어갔다. 정부가 지원하는 유일한 스포츠 연구기관 역할을 수행하던 연구원은 김 전 차관 부임 이후 2014년 2월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바뀌었다. 

개발원은 2012년 연구원의 축적된 정보와 교육시스템을 제3세계에 지원하는 단체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석좌연구기관으로 등재된 기관이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개발원의 설립목적 등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스포츠산업과 일자리 창출 등 현장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스포츠과학실 총원은 30명에서 25명으로 줄인 반면 정책개발연구실은 18명에서 37명으로 늘리고 스포츠산업실을 센터로 격상됐다. 스포츠산업 관련 예산도 2014년 226억원에서 지난해 102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본연의 과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개발원 A연구위원은 “김 전 차관 부임 이후 개발원은 대부분 문체부에서 내려오는 정책 연구만 수행하기에 급급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은 “김 전 차관 부임 전부터 스포츠산업의 확장 필요성은 공감대가 있던 상황이었다. 다만 우리가 하려는 연구보다는 문체부의 정책을 지원하는 연구가 내려온 것이 대부분인 것은 사실이다”며 “개발원 이름은 사업조직이 확장되면서 억지로 붙여졌다. 내부적으로 연구원 이름을 되찾아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