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옥바라지는 대체 누가 할까
입력 2017.01.11 05:06 수정 2017.01.11 10:36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재판받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불나방’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고 멀어지면 추워 죽는 불나방. 나는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뜨거움을 못 느끼는 불나방들을 정치권에서 여럿 보았다.
정 전 비서관이 누렸던 권세와 비교하겠냐만, 나 역시 ‘작은 불나방’이었다. 함께해온 국회의원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인턴으로 시작한 나는 4급 보좌관이 됐다. 뿌듯했다. ‘난 여기서 의원님과 끝까지 함께해야겠구나’ 생각했다.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해왔던 정 전 비서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계 입문 뒤 순식간에 대표에 올랐으며,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고, 딱 말 한마디(또는 외마디)로도 판을 흔드는 분을 지근거리에서 모셨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는가.
범죄자로 전락한 영감…‘마른 하늘에 날벼락’
나도 ‘잘나가는 보좌관’으로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영감(보좌하는 국회의원)의 치부가 온 언론에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온갖 자극적인 기사가 줄줄이 나왔다. 우리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고, 또 마음 한켠에선 신뢰가 있었기에 ‘이러다 지나가겠지’ 하는 기대도 가졌다. 그러나 구속, 기소는 유죄 판결로 이어졌다. 사건이 터진 초기엔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보좌진은 각자 현실적인 생계 문제로 갈등을 시작했다. 선거 캠프에 참여해야 다음 국회에서도 일할 수 있을 텐데, 아니면 하루빨리 다른 직업으로 이직을 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 방의 보좌진은 일단 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함께하기로 했다. 가족도 아닌데 왜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을 감싸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보좌진 입장은 그렇지 않다. 마치 가족이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뒷바라지를 어떻게 할지 근심하는 나머지 가족들과 흡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한때 ‘잘나가는 보좌관’이었으나
모시는 의원 구속되며 함께 추락
매일 구치소 면회에 사건 대응까지
의원 심기 보좌에 흰머리 수북
‘비선실세’ 모두 처벌받은 뒤
대통령도 구속되는 상황이 온다면…
일단 구속이 되면 최장 20일까지 수사 후 기소를 하게 된다. 형이 확정될 때까지 머물게 되는 구치소에서는 기소 뒤부터 면회가 가능한데, 일요일만 빼고 하루에 한차례 10분간 할 수 있고, 한번에 5명까지 만날 수 있다. 면회도 하고 면회 오신 분들 안내도 해야 했기에 나는 거의 매일 구치소로 갔다. 그러면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갔다. 단 10분의 만남을 위해 구치소와 국회를 왕복하고 면회 시간을 대기하며 고민에 찬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구치소 주변 지리와 근처 식당은 그 동네 사람들만큼이나 섭렵했다. 면회는 최대 5명까지라서 가족을 우선으로 인원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영감을 만나러 먼 거리를 오신 분들도 자리가 다 차면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서적 같은 영치품, 음식(품목이 정해져 있음) 등을 챙기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면회 때마다 수척해져가는 의원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움, 안쓰러움이 겹치며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면회, 재판 준비에 지쳐가고…피감기관에선 홀대받아
면회만 옥바라지의 전부가 아니다. 사건의 주요 쟁점을 꿰고 이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건의 경위와 전말에 대해 분석하기도 하고, 재판 때는 법원에 가고, 변호사를 만나러 수차례 서초동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기자도 만나고, 조금이라도 이쪽 방면에 잘 아는 분이 있으면 찾아가 상담도 하고, 관련자가 소환 조사를 받을 때는 검찰청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흉사 앞에선 동료애도 당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힘겹게 함께 옥바라지를 하다 보면 보좌진끼리 부딪치는 경우도 많다. 검찰 조사나 재판 과정이 희망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보좌진끼리의 반목과 갈등도 최악으로 흘러간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몸살도 나고 심신이 엉망이 된다. 나도 옥바라지하면서 흰 머리카락이 수북해졌다.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순 없었다. 옥바라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구치소 안에 계신 분은 엄청 서운해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어떤 이들은 의원이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 여하튼 국정감사도 안 하고 보좌진 기본 업무도 안 하니 편한 점이 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데 옥바라지 몇달 해보니, 국정감사를 몇달씩 연속으로 한 것처럼 기운이 쇠해졌다. 의원의 추락과 함께 내 위상도 한순간에 급강하했다. 회의와 모임에서 무시당하는 건 기본이고, 피감기관 관계자들로부터 홀대를 받기도 했다. 평소 서로가 존대하며 오랫동안 업무적으로 친분을 쌓아온 한 공기업 직원이 갑자기 반말로 하대를 하며 ‘옆집 아저씨’ 취급을 할 때는 정말 서글펐다. 그저 도 닦는 심정으로 한숨 쉬고 넘겼지만, 다른 동료들은 성을 참지 못해 분노와 서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때로는 국정감사 하면서 피감기관에 따지던 ‘실력’으로 검찰과 법원에 대응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박 대통령 구속되면? 순실이도 없고 ‘문고리’도 없는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풀이 좀 꺾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겸손해지기도 했다. 검찰의 서슬 퍼런 고압적 태도를 보면서, 혹시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과도하게 괴롭힌 적이 없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요즘, 나는 가끔씩 궁금해진다. 아직 가정이지만, 박 대통령이 구속된다면 누가 그의 옥바라지를 하게 될까. 형이 확정돼봐야 알겠지만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최순실 일가도, ‘문고리 3인방’도 박 대통령을 보좌할 처지가 아닐 듯한데…. 박사모 회원들이 일일교대하면서 태극기 손에 들고 구치소를 지키려나?
옥바라지에 흰머리 늘어난 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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