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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집착한 박근혜에게 청와대는 최적화된 '시크릿 가든'

장백산-1 2017. 1. 11. 15:32
한겨레

사생활 집착한 박근혜에게 

청와대는 최적화된 '시크릿 가든'


최혜정 입력 2017.01.11 05:06 수정 2017.01.11 11:56


정치 - BAR 구중궁궐 청와대 '공간' 탐구

[한겨레]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만큼 구중궁궐 청와대를 ‘대중화’시킨 대통령도 없는 듯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내막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게이트의 싹을 틔운 청와대 출입문과 회의실, 건물 이름 등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이자 가장 권위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인 청와대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0년 관저 공사 도중 발견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표석을 언급하며 “권력자 입장에서는 지금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궁궐의 암투, 모해, 음모가 들끓는 곳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헌정 유린의 ‘근원’을 분석하면서 청와대의 폐쇄적인 구조도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조기대선이 가시화되자, 주요 주자들은 저마다 청와대 ‘공간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그림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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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건물 안내

본관 
대통령 집무실이 있으며 국무회의, 수석비서관 회의 등이 열린다. 박 대통령은 취임 뒤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자신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는 1주일에 1차례 열기로 했으나, 이후엔 격주로 월요일마다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비서실세 농단이 본격화되자 지난해 10월2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마지막으로, 본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는 한번도 열지 않았다. 

관저 
대통령과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 박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관저에 있는 집무실에서 하루종일 ‘근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동생을 포함해 친인척들의 청와대 출입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최순실씨는 자주 관저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위민관
청와대 참모들이 일하는 곳. 박 대통령은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본관으로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 주중대사는 위민관에서 관저까지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뛰어가서”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서별관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 건물에서 열려온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를 서별관회의라고 부른다. 수조원의 예산이 드는 대우해양조선에 대한 구조조정 지원이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서별관회의를 통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풍문
일반 직원들이 출입하고 외부인이 출입 절차를 밟는 곳. 지난달 최순실 국조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경호동 현장조사를 하러 갔으나 연풍문 회의실에서 실랑이를 하다가 청와대 경내에 한발짝도 들어가지 못했다. 

정문(11문)
국무회의 때 장관급 이상이 출입하는 곳으로, 장관들도 출입증을 보이고 얼굴 대조를 거쳐 통과가 허용된다. 그러나 최순실씨는 이영선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11문을 통해 관저를 드나들었다. 

춘추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상주하는 곳. 박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춘추관에서 7번의 대국민담화, 3차례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상춘재
한옥으로 지어진 외빈 접객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상춘재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나, 지난 1일 기자들을 이곳으로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어린 영애 시절’ 추억의 건물은 거의 없다

1960~70년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의 딸’로서 주로 사용했던 공간은 현재 청와대 안에 거의 없다. 당시엔 1735㎡(약 525평) 규모의 본관(옛 본관) 한곳에 대통령 가족의 생활공간과 집무실이 함께 있었다. 대통령 집무실 겸 서재가 1층에 있었고 2층에 가족들의 침실과 식당 등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과 관저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던 1991년, 1990년 각각 완공됐다. 옛 본관은 장소가 협소해 외국 정상의 수행원들이 머물 공간도 마땅치 않았던데다 일제강점기 총독 관사, 해방 후 미군정 장관의 관사로 사용됐던 ‘전력’도 있어 새 본관을 짓게 됐다. 현재 본관은 경복궁 근정전을 모델로 했는데, 도자기 굽듯이 구워낸 청색 기와가 15만장가량 얹혀 있다. 옛 본관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철거돼 현재는 ‘청와대 구본관’이라는 표식만 남아 있다.

지난 1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난 상춘재는 청와대의 정원인 녹지원 뒤에 들어서 있는 목조건물로, 현재 청와대 건물 가운데 박 대통령의 ‘추억’이 가장 많이 서린 공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좁은 본관 대신 이곳을 오찬·만찬 장소로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1일 티타임에 앞서 “30년 전과 비교하면 청와대도 참 많이 바뀌었지만 녹지원부터 여기까지는 별로 안 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상춘재는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개축한 것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 국정운영 닮은 폐쇄구조 8476㎡ 본관을 대통령만 사용
집무실 입구서 책상까지가 15m 뒷걸음질로 나오다 넘어진 일화도

참모진은 비좁은 건물서 북적  비서동부터 관저까지 500m 거리
MB때 고육지책으로 자전거 배치 “대통령 위치 알 수 없는 구조”

대선 주자들 “청와대 공간 개혁”
대통령 옆방에 참모들 근무하는 미국 웨스트윙처럼 바꿔야
대통령 고립 막는 리모델링 필요

춘추관 · 연풍문 · 서별관…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은 비서동인 위민관 3개동에 나뉘어 근무하고 있다. 비서실장이 근무하는 위민1관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마련돼 있지만, 박 대통령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입기자들은 1990년 9월 지어진 춘추관에 머문다. 예전에는 비서동 안에 기자실과 기자회견장이 있었는데, 장소가 좁아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춘추관을 새로 지었다. 이후에도 김대중 정부까지는 기자들이 비서동에 들어가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으나, 참여정부의 ‘취재 선진화 조처’로 청와대 경내 출입이 전면 차단됐다.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춘추관을 종종 찾아 기자들을 만났고 참모들의 브리핑도 자주 열렸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입구는 관람객들이 이용하는 춘추관 내 출입문과 직원 출입구인 연풍문, 국무위원 등 극소수가 드나드는 정문(이른바 11문) 등이 있다. 정문은 출입이 가장 제한적인 곳인데, 최순실씨 등 ‘보안손님’은 이곳을 통해 청와대 경내를 자유롭게 오간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미르재단 설립 관련 회의가 열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연풍문은 청와대 직원들과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부인이 사용하는 출입구다. 연풍문 건물 2층에 여러 곳의 회의실과 간이 카페가 있어 회의 공간으로 주로 활용된다.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이 ‘밀실 논의’됐다는 이른바 ‘서별관’은 청와대 본관을 마주했을 때 서쪽에 있는 별관을 말한다. 청와대 경내가 아니어서 별도의 검색 절차도 없는 만큼, 관계 기관들이 모여 회의하기 용이한 ‘장점’이 있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은 운동장…뛰어서 15분거리 ‘비서동’ 매우 좁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청와대 내 계신 곳이 집무 장소”라고 말했지만, 역대 대통령이 출퇴근하던 공식 집무실은 본관에 마련돼 있다. 다만 면적이 8476㎡(약 2564평)에 이르는 거대한 본관 건물이 대통령 한명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다 보니 집무실은 ‘비정상적’으로 크고 대통령이 움직이는 동선도 길다. 집무실 입구에서 대통령이 앉아 있는 책상까지의 거리가 15m에 이르고, 방 안에는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취임한 뒤 본관에 도착해 “기수(김기수 수행실장)야, 사무실에 어떻게 가노?”라고 물은 일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뒤 집무실을 처음 보고 “테니스 쳐도 되겠구먼”이라고 말한 것은 본관 내부의 비효율적이고 권위적인 구조를 대변한다. 이 때문에 장관이 집무실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거나, 어떤 장관은 대통령에게 가던 중 너무 긴장해 소변을 지렸다는 등의 일화들이 그럴듯하게 떠돈다.

본관 안에는 집무실과 부속실, 수석비서관회의가 주로 열리는 집현실, 외빈 접견실 등이 배치돼 있고, 본관 서쪽 별채엔 국무회의 등이 열리는 세종실, 동쪽 별채엔 중규모 오찬·만찬이 열리는 충무실이 있다. 

본관은 위압적인 크기에 비해 방 개수는 적고 각각의 면적은 넓어 “회의장이 아니라 발표장”(청와대 관계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참모들이 일하는 위민관은 2004년 지어진 1관을 제외하면 각각 1969년(2관), 1972년(3관) 준공된 노후 건물인데다 인원 대비 면적이 좁아 업무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통합건물 지으라”는 2015년 국회 권고 거부…“박 대통령에게 최적화한 구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참모들과의 거리다. 대통령이 근무하는 본관과 참모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은 직선거리로 500m 떨어져 있다. 본관에서 대통령이 참모를 부르면 자동차로 5분, 뛰어가면 15분이 걸린다. 수석비서관급 이상은 전용 차량이 있고 비서관들도 급할 땐 배차를 요청하지만, 대부분은 두 다리에 의지하며 ‘체력 소모’를 감당한다. 

이에 이명박 정부 시절 고육지책으로 청와대 안에 전기자전거 수십대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고 한다. 게다가 본관·관저까지는 오르막길이어서 “(자전거의) 모터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구조는 대통령이 부르지 않는 이상, 참모들과 마주칠 일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김기춘 전 실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는데, 너무 당연한 얘기다. 세월호 참사 때뿐 아니라 평시에도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한나라당 의원은 “누구든지 청와대에서 처음 일하게 되면 청와대 건물 배치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고, 한번쯤은 이 공간을 개·보수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취임 초 청와대 집무실 이전이나 리모델링, 건물 신축 등을 고민했다. 

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무실을 정부세종로청사로 옮기려 했지만 경호 문제와 시민 불편 등을 이유로 포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초 본관에 참모진을 입주시키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기술적 어려움과 경제성이 낮다는 판단에 따라 본관 가까이에 비서동을 새로 짓고 여기에 대통령의 간이 집무실을 마련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청와대 본관에 주요 참모들을 입주시킬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지만, 광우병 촛불집회의 여파로 계획을 접었다. 이명박 정부 초반인 2008년 안전등급 D등급을 받은 비서동을 보수하겠다며 예산을 요청했지만, 국회는 “청와대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이한구 당시 국회 운영위원장)며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와 인수위원회 시절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방안을 검토했지만 출범 뒤 ‘없던 일’이 됐다. 다만 이전 정권과 다른 점은 ‘공수’가 바뀌어 국회가 예산 배정을 제안하고 청와대가 이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2015년 10월 국회 운영위원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불통 문제를 우려하며 집무실과 비서실을 하나로 통합한 비서동을 지으라고 권고했다. 이를 위한 설계용역 예산을 주겠다고 했지만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명인 이재만 당시 총무비서관은 “대통령과 직원 간 소통에는 지금도 문제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시 운영위원이었던 한 전직 의원은 “지금 청와대 구조가 박 대통령에겐 최적화된 공간인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소통은 거리에 반비례한다”…문재인은 광화문, 남경필·안희정은 세종시로

청와대의 폐쇄적인 구조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대선 주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상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집권할 경우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청와대는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때도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한 바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수도 이전을 통해 청와대·국회를 아예 세종시로 옮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안에 새로 건물을 짓거나 비서동을 리모델링해 참모들과 대통령 집무실을 한곳에 두는 방안도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과 참모진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인터폰을 누르면 10초 이내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문제의식에서다.

19대 국회에서 ‘대통령 집무실 재배치’를 꾸준히 주장했던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대통령이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요 국가들의 대통령 또는 총리 집무실은 참모들의 업무공간과 한곳에 모여 있다. 

미국 백악관 내 대통령의 집무공간인 웨스트윙에는 집무실을 기준으로 부통령실, 선임고문실, 비서실장실, 국토안보보좌관실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영국의 총리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는 건물 주소 자체가 총리실을 상징한다. 이 건물 3층에 총리 관저가 있고, 2층에는 국무회의장이 있다. 비서실장도 이 건물에 근무한다. 바로 옆 건물인 11번지에 재무장관의 집무실과 관저가 있고, 이 두 건물은 서로 연결돼 있다. 

일본 역시 총리 관저에 비서실장 구실을 하는 관방장관실, 관방 부장관실, 비서관실을 함께 배치했고, 인근에는 각 부처가 밀집해 있다.

현재 청와대에 근무하거나 근무 경험이 있는 이들은 정권 초반이 청와대 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한다면 공사 기간이 2~3년 걸리는데, 이를 임기 중후반에 추진할 경우 후임 정권에 ‘공사판’을 넘기게 되는 부담이 있다”며 “취임 직후가 유일하고 바람직한 시기”라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본관은 외국 정상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공간으로 개조하거나 역대 대통령 기념관 등을 만들어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이상일 전 의원은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소통은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말이 더 맞다고 본다. 참모들과 가까워야 국민과도 가까워지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제왕적·권위적 공간인 본관을 나와 참모들과 부대끼며 일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고민해볼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