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30년]
박종철 이후 촛불까지…
"민주주의 새롭게 밝혀야"
박종철 사망 이후 30년…"민주주의 발전은 제자리 걸음"
"6월 항쟁은 '미완의 혁명'…이번만큼은 승리해야"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7-01-14 07:00 송고
2015년 5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담당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대법관 후보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News1 |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이었던 박종철군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끝내 사망했다.
경찰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지만 진실은 밝혀졌고 분노한 시민사회는 민주화를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당시 혁명이 이룩한 승리였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현재, 시민들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외치며 광장을 찾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산화한지 3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간은 당시에서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종철 사망 이후 30년…"민주주의 발전은 제자리 걸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서울대 안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1987년 1월14일 박종철군이 사망하자 서울대 안에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학생들은 동기이자 선배, 후배인 박종철군의 영정사진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당시 교수로 갓 재임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그 시절 학생들은 탄압에 개의치 않고 분향소를 찾았다"며 "교수들은 연구실에서 저녁 때 일부러 불을 끄는 상징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사회 곳곳에서 꿈틀대는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고 국력을 낭비하는 개헌 논의를 지양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화 요구를 걷어찬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한 상황에서 5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 축소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시민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광장으로 향했다. 이른바 6월 항쟁의 시작이다.
시간은 흘러 30년이 지났다. 2017년 1월14일 시민들은 또 다시 광장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지난 7일 11차까지 이어져 누적 참가 인원이 1000만명이 넘었다. 6월 항쟁 당시 참가한 시민 100만명의 10배에 달한다.
시민들은 정권을 규탄하며 '국가와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87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87년 항쟁으로 민주화라는 외형의 틀은 갖췄지만 민주주의의 정교한 발전에 있어선 그동안 제자리 걸음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송주명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한신대 교수)은 "군부독재의 억압적인 제도, 반민권적인 상황은 민주화를 통해 많이 개선되긴 했다"며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부분인데 그 안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발전 등 세밀한 부분에 있어선 제대로 된 고민이 없었고 마땅한 방안도 세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틀만 갖춘 불안한 민주주의는 국정농단 사태에 직면해 문제가 폭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6월 항쟁 이후 좋은 세상이 올 거란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민주주의는 조금씩 발전되는 양상을 보였다"며 "하지만 박근혜 정부 4년 간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불안한 민주주의에 내재된 시민들의 분노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만나 확 터져나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벌어진 정원스님 분신 사건을 두고도 30년 전의 상황과 기시감을 느끼는 시각도 상당하다. 정원스님은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 7일 오후 10시30분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공원인 열린마당 인근에서 "박근혜는 내란사범"이란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결국 이틀만에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6월 항쟁 정국에서는 연세대 앞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화를 외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희생과 비극이 이어진 셈이다. 안진걸 처장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 나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비극은 이미 끝난 시기라고 봤다"며 "하지만 이번 정원스님의 분신으로 비극이 또다시 발생하고 말았다. 스님이 남긴 유언에 비극적인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고 밝혔다.
10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정원스님의 빈소가 마련돼 있 다. 앞서 정원스님은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 7일 경복궁 앞 공원인 열린마당 인 근에서 "박근혜는 내란사범"이란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으며 9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2017.1.10/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
◇"6월 항쟁은 '미완의 혁명'…이번만큼은 승리해야"
전문가들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이 '미완의 혁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시민혁명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선 당시에 미뤄둔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혁명 역사 전문가인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지만 피상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하는데 머물렀던 것이 현실"이라며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뭔지를 이번 혁명에서는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이어 "박정희 체제의 적폐 청산과 우리 사회, 재벌과 정계, 관료 등의 부조리를 뜯어내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며 "특히 부당한 재벌 권력에 대한 경제 민주화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87년 체제 이후 새롭게 나타난 모순점들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송주명 의장은 "97년 IMF 체제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고 비정규직 문제와 안전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며 "민주화 이후 그동안 우리 사회에 있었던 모순들을 함께 풀어놔야 한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 또 제자리 걸음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송 의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교수, 연구자들이 모인 전국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에서 '2017 새민주공화국'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87년 민주화체제와 97년 IMF와 신자유주의의 한계 등을 넘어 민주, 평등, 공공성을 기초로 한 새로운 민주공화국체제를 정치권 등에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12차 촛불집회'에서는 박종철 열사 30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다. 촛불집회를 주도해온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3시40분부터 '미완의 혁명, 촛불로 승리하자'라는 이름의 추모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30년 전 박종철 열사로 인해 촉발된 시민혁명은 현재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시민혁명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안진걸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은 "민주화를 위해 스러진 열사들에게 현 상황에 대한 죄송스러움이 있을 뿐"이라며 "이번 혁명에서 반드시 시민이 승리해야 할 이유"라고 밝혔다.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000일, 박근혜 즉각퇴진!을 위한 11차 촛불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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