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박근혜 구속 '상당한 이유' 있었다

장백산-1 2017. 4. 5. 13:48

주간경향

[포커스] 박근혜 구속 '상당한 이유' 있었다

입력 2017.04.05. 10:34


ㆍ법원, 피의자의 무죄 추정 깨뜨릴 정도로 실제 범죄 개연성 높다고 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올 날은 언제일까. 3월 30일 오전 10시쯤, 박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차를 타고 사저를 나섰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사저로 돌아온 지 18일 만이다. 파면되고 집으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반기는 지지자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법원으로 떠나는 박 전 대통령의 얼굴에선 웃음기를 찾기 어려웠다.

삼성동 사저로 다시 돌아올 날은

박 전 대통령을 볼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소 삼성동 사저 앞에는 10여명의 지지자들이 사저 담벼락을 지키고 있었다. 모인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경찰들도 길 양 옆에 늘어서서 지지자들과 보행객, 기자들이 충돌하지 않게 막는 정도였다.

3월 30일은 달랐다. 아침부터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수백명이 사저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찰병력도 사저 앞 도로를 메울 정도로 충원됐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서기 직전에는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지지자 10여명이 ‘탄핵무효’ 등 구호를 외치며 도로 위에 눕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쯤부터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시작됐다. 심사가 이례적으로 길어지면서 오후 1시와 4시20분쯤 두 차례 휴정되기도 했다. 오후 7시를 넘겨 법원을 빠져나온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사저를 나설 때보다 한층 어두웠다. ‘이게 아닌데’란 마음이 읽히는 얼굴이었다. 법원의 구속 여부 결정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자정을 넘겨 3월 31일 오전 3시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됐다. 대기장소인 서울중앙지검에 머무르던 박 전 대통령은 1시간30분여 준비시간을 가진 뒤 오전 4시30분쯤 서울구치소로 이동했다. 차량 뒷좌석 한가운데에 앉은 박 전 대통령은 몹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사저를 떠나고 18시간30분여 만의 일이었다.


3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기장소인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3월 27일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부터 많은 법률 전문가들은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될 것이라고 봤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공무상 비밀 누설을 중대한 사안이라고 봤다. 또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다수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여러 공범들이 구속된 상황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원은 검찰의 청구 이유를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구속영장 실질심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봤다. 법원의 심사 결과 발표는 판결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이상의 자세한 구속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 실무제요를 통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자세히 유추할 수 있다. 법원 실무제요는 법원행정처가 펴낸 책으로, 법관과 법원공무원이 여러 유형의 재판에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실무 매뉴얼이다.

검찰의 청구 이유 상당 부분 받아들여

2014년판 법원 실무제요 형사편은 형사소송법에 의거한 구속영장 발부 요건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법원 실무제요에 따르면, ‘상당한 이유’란 다음과 같다. 피의자에 대한 검찰 측의 소명자료가 피의자의 무죄 추정을 깨뜨릴 정도여야 한다. 즉, 법원은 검찰과 특검의 수사자료가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추정을 깨뜨릴 정도로 구체적이며, 박 전 대통령이 실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법원 실무제요는 증거인멸의 염려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에 대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입법 취지로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란 물질적인 증거뿐만 아니라 증인을 포함한다. 또한 증거를 인멸할 구체적인 위험성도 있어야 한다는 게 제요의 설명이다. 이어 제요는 ‘증거인멸의 염려’에 대해 고려해야 할 구체적인 요소들을 거론한다. 일단 범죄사실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피의자가 그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 물리적·사회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피의자가 증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압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인멸할 우려가 있는 증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특검 수사와 언론 보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증거물로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통화한 대포폰을 들 수 있다. 특검은 2월 9일 박 전 대통령이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자 다음날 두 사람 사이에 6개월간 570여회 대포폰으로 통화한 사실을 밝혔다. 이 대포폰을 개통한 것은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고, 조달한 것은 이영선 경호관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차명폰의 행방이다. 청와대 경내나 박 전 대통령 사저에 이 대포폰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있었으나 청와대 압수수색이 연거푸 무산되면서 대포폰의 행방은 묘연하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든 이 차명폰은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차명폰에 개입한 윤전추, 이영선 두 사람 역시 향후 재판에서 증언대에 설 수 있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때도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이들이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에도 삼성동 사저를 드나들며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박 전 대통령이 충분히 윤전추, 이영선 두 사람의 증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노인수 변호사는 ‘우선적인 징벌’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판사도 사람인 이상 사회적인 여론이 집중된 사안의 경우 보다 엄중한 잣대로 구속영장을 심사한다는 것이다. 노 변호사는 “우선적인 징벌은 피의자가 저지른 범죄의 무게가 무겁고, 범죄의 질이 나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범죄의 무게가 무거운 경우 ‘우선적 징벌

검찰과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직위를 이용해 삼성그룹으로부터 수백원대의 뇌물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청와대 기밀문건 유출 등 13가지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 측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한 공익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문체부 인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공직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했기에 책임을 물었을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법원이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노 변호사는 저서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형사재판의 비밀>에서 피의자의 수사 협조 여부도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봤다. 노 변호사는 “과거에는 죄가 무거우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경향이 컸지만, 최근에는 수사 진행에 방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따져 영장 발부를 정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4일, 박 전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문에서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라며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 필요하다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정반대였다. 2차 담화문 발표 이후 검찰이 대면조사를 요청하자 박 전 대통령 측은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검찰이 최순실씨 등을 기소하자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30일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기자단과의 신년 만남에서 박 전 대통령은 특검이 자신을 “엮은 것”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특검이 2월 초에 대면조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정규재 TV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정하는 한편, 특검 역시 믿을 수 없다며 대면조사를 피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수차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파면 결정이 내려지는 날까지 재판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헌재가 결정문을 읽으면서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불응한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막은 것도 악재로 작용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막은 점도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했을 수 있다. 3월 24일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산하 사무실 3곳을 압수수색하려 했으나 청와대는 이에 응하지 않고 검찰에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제공했다. 박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던 시절 임명했던 청와대 관계자들이 검찰의 수사를 막은 것이다. 노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과거 청와대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는 데에 방해가 되는 행동 역시 형사소송법 상의 ‘증거인멸’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검찰의 뇌물죄 수사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특검 이전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뇌물죄 적용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2기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구속영장 청구서에 뇌물죄를 적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이재용으로 하여금 두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하도록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204억원의 뇌물을 공여하게 했다”고 적혀 있다.

즉, 삼성그룹이 두 재단에 낸 돈이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성격과 뇌물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 뇌물죄 부분은 4월 7일로 예정된 최순실씨 결심공판과 대통령 선거운동 개시일(4월 17일) 전으로 공개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에 반영될 전망이다.


또한 다른 재벌기업들의 재단 출연금 등에 대해서도 뇌물죄가 적용될지도 관심사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기 직전 최태원 SK그룹 대표,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 등 대기업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했다. SK그룹의 경우 2015년 최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것과 SK그룹의 재단 출연이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스포츠재단에 75억원을 지원했다가 철회한 롯데그룹 역시 롯데면세점 사업권의 대가성을 의심받고 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삼성 외 다른 재벌그룹의 뇌물죄와 연관된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이 뇌물죄를 저질렀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 만큼, SK·롯데뿐만 아니라 다른 재벌기업으로도 뇌물죄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재판 결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가 확정된다면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복귀는 한없이 늦춰질 전망이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1억원 이상 뇌물을 받은 경우 법정형은 10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52년생으로 만 65세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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