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근혜, 포스코 임원 인사에 예산까지 시시콜콜 개입
김정우 입력 2017.04.06. 04:42
임원들 10~20명 이름 수시 등장
이동할 자리까지 실시간 지시
최순실, 자회사 3곳 대표 자리 요구
청와대가 실제 매개 역할 확인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민기업 포스코는 자신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었다. 비선실세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 지인들을 포스코그룹 자회사 대표이사나 임원으로 심는가 하면, 그룹 임원진 인사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광범위하게 개입했다. 5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39권은 그 동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포스코를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이 모두 사실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최씨가 포스코 자회사 3곳의 대표이사 자리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실제로 청와대가 매개 역할을 했던 것(본보 1월 25일자 1면)으로 확인됐다. 2014년 7월 31일자 메모에는 ‘티타임’이라는 제목과 함께 “POSCO / 포레카 사장(광고대행사) 김영수 / 엔투비 사장 김일환”이라고 적혀 있다. 두 김씨는 모두 최씨의 지인들로, 포스코 내부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권오준 회장의 취임(2014년 3월) 무렵 각각의 회사 대표이사로 영입됐다. 메모 시기가 영입 이후이긴 하지만, 청와대가 이들에게 각별히 신경을 썼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압권은 포스코 임원 인사에 대한 지속적 개입 흔적이다. 안 전 수석이 2015년 상반기에 사용했던 수첩들에는 포스코 임원들 10~20명의 이름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특히 6월 13일자와 6월 18일자, 6월 27일자, 7월 4일자 등의 경우엔 ‘VIP’ 표시까지 돼 있다. 개별 임원들의 당시 직책 옆에는 화살표(→)와 함께 이동할 자리가 적혀 있기까지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포스코 인사와 관련해 거의 전권을 행사하려 한 셈이다. 포스코는 그 이후인 2015년 7월 임원 인사를 단행했는데, 수첩 내용의 상당수는 현실화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안 전 수석, 차은택(48ㆍ구속기소)씨 등이 연루된 이른바 ‘포레카 지분 강탈’ 사건의 진행 상황도 꼼꼼하게 챙겼다. 2015년 1월 24일자와 3월 15일자, 6월 13일자 등의 메모에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뜻하는 ‘VIP’와 함께 ‘포레카 김영수’ 또는 ‘포레카’ 문구가 등장한다. 포레카가 최씨 측이 아닌 다른 업체(컴투게더)에 매각돼 결국 최씨 측의 시도가 물거품이 됐던 2015년 6월 14일자 메모도 “VIP / 포레카 컨소시움 매각”으로 돼 있다. 또, 포스코가 포레카 매각 이후 애초 약속을 뒤집고 컴투게더에 광고 발주를 사실상 끊어 버린 데 청와대가 관여한 흔적도 있다. 2015년 11월 21일~12월 3일 작성된 수첩의 맨 뒷장에 “김영수→컴투게더 물량제한 / 검찰 출신 전현직 17명, 기소, 후속 조치”라고 적힌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측근이자 2012년 대선 캠프 주변에서 활동했던 조원규(60)씨를 포스코 홍보 임원으로 채용하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포스코 홍보예산을 끌어다 쓰려 한 정황도 새로 드러났다. 그는 2015년 5월 16일, 안 전 수석에게 조씨 관련 첫 지시를 내렸는데 6월 5일자 VIP 메모는 “문화융합벨트 예산/ 1,300억 - 700억, 620억 미확정 / POSCO / 1,000억 홍보비”라고 기재돼 있다. 자신의 치적을 남기는 데 민간기업 예산을 ‘강제 동원’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인사ㆍ예산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 정황에 비춰 박 전 대통령은 포스코의 사실상 최고경영자(CEO) 행세를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간기업인 포스코가 이렇게까지 청와대에 휘둘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정확한 배경과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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