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너와 내가 만나 숲이 되는 방법

장백산-1 2017. 6. 10. 22:28

너와 내가 만나 숲이 되는 방법-하


홀로이면서 홀로만 살지 않음으로 숲을 이룬다

2017년 05월 30일 (화) 10:30:50 김용규  happyforest@empas.com


정희성 시인이 ‘숲’이라는 시에서 개탄한 그 인간의 실태,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어도 숲인데, 너와 나는 왜 서로가 만나 숲이 되지 못하는가?’ 지난 편에 이어 이번 글은 이 물음을 화두로 숲을 보겠습니다.


수단·목적 바뀐 삶 본질 놓쳐

제 것 아닌 것 욕망치 않는 숲

견제·균형 질서가 조화 이뤄내

주저없는 나눔은 다음 생 위함


각자로 살면서도 더불어 숲을 이루는 원리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저마다 제 주인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숲을 이루는 생명은 모두 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5월이 눈부시다 하여 3월 추운 시간을 제 주인자리로 삼는 앵초 같은 생명이 5월 따사로운 날의 눈부신 개화를 시샘하지 않습니다. 강줄기 모래나 자갈 자락을 붙들고 살아가는 갈대나 달뿌리풀 같은 생명이 물의 풍요를 누리고 산다 하여 산으로 날아든 억새가 제 험지의 삶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서서 살아가는 생명은 선 채로, 기어가는 생명은 기어가는 삶으로, 날아다니는 생명은 날아다니는 삶으로…. 각자가 저마다 제 각각의 삶으로 숲을 이룰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 것 아닌 것을 욕망하느라 제 주인자리를 놓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 크고 화려하고 편리하고 빠르고 더 강한 것을 누리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相에 일생을 끌려가면서 소중한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아가는 삶의 개체들이 허다합니다. 그들은 수단으로 여겨야 할 것들을 목적의 자리에 놓고 사느라 삶의 본질적 의미와 마주하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더 큰 집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은 집이 ‘사랑하며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기 쉽습니다. 덩그러니 큰 집은 가졌지만 그 공간에 사랑대신 단절과 침묵만 존재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힘 또는 권력이 수단의 지위임을 잊은 자들의 눈 먼 권력욕은 그 힘으로 주변을 복되게 하는 것이 권력의 본래 목적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권력을 수단이 아닌 국정농단의 목적으로 대하고 산 자들의 인간 아닌 모습, 차라리 괴물이 되어버린 행태를 다양하게 목도해 왔습니다. 숲에 사는 생명들 대부분은 제 것 아닌 것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오직 제 것인 것으로 뿌리를 박고 다만 제 순결한 열망을 따라 살아냅니다. 낮은 공간이면 낮은 공간인 대로 높은 공간이면 높은 공간인 대로, 봄날을 사는 존재면 봄날을, 가을날을 사는 존재면 가을날을 살아갑니다.


숲에 사는 생명들은 각자로 살면서도 더불어 숲을 이루는 원리의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바로 숲에 사는 생명 중 누구도 타자를 물들이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숲은 다양성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공간을 채우지도 않습니다. 제 소리가 더 곱고 예쁜 것이라고 꾀꼬리가 멧비둘기더러 탁음을 거두고 청음을 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침범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한 태도를 취합니다. 숲의 생명들은 누군가가 제 영역을 침범하고 억압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않습니다. 숲에 사는 생명 각자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제 영역을 지켜내려 합니다. 각자 제 고유함과 유일함을 가진 존재들이 자기를 침해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 순수한 생의 본능들이 부딪히고 화해하는 지점에서 견제와 균형의 질서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냅니다. 그것이 숲의 경쟁이요 그것이 또한 숲의 평화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주저 없이 나눕니다. 꽃은 제 꽃가루와 꿀을 나누어 열매에 이르고, 열매는 제 소중한 과실을 나누어 씨앗의 발아 가능성을 열어냅니다. 한 생을 살아낸 개체의 전 생애는 제 마지막을 온전히 숲의 흙으로 되돌려 놓으며 자신이 살아냈던 터전을 비옥하게 바꾸어 다음 생들이 들어서고 번영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한 마디로 홀로이면서 홀로만 살지 않는 삶을 통해 숲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눈부신 5월의 숲을 지나며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변화하고 있는 이 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각자 주인으로 깨어있되 기꺼이 연대하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