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장백산-1 2017. 7. 7. 16:15

목건련과 설법 ②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유마거사가 목건련에게 말했다. ‘모든 法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

유마거사, 목건련에 ‘제법부동(諸法不動)’ 설법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변화하는 것 같지만  불변하는 모습·성품 없기에 ‘空
제법이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 주체 없으면 제법의 움직임도 없어


유마거사는 계속해서 목건련을 향해 法을 설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목건련이 말하는 法이란 이 세상 모든 존재(현상, 것)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物質的인 존재이든 精神的인 존재이든 時間的인 존재이든 空間的인 존재이든 이 세상을 이루는 이 존재(法, 것, 현상)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설법(說法)이란 바로 이러한 이 세상 모든 法들이 지닌 本性, 法들의 실상(實相)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를 가리키는 방편상의 말이다.

그런데 유마거사가 설명하는 이 세상 모든 법의 실상, 본성은 보통 사람이 일반적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보는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이 세상을 보고 아는 데서 차이가 나는 다른 것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이세상 모든 法이 부동(不動)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법(것, 현상, 존재)가 전혀 움직임이 없다는 말은 비단 유마거사의 ‘유마경’에서만 등장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움직임이 없다는 이 말은 모든 대승경전 전반에 걸쳐 언급되는 말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도 이 세상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다는 말과 같은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세상 모든 존재(法, 것, 현상)은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시간적인 것이든 공간적인 것이든지 불문하고 쉴 새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 모든 것들의 본성, 실상, 진실에 있어서는 변화하거나 움직임이 없다는 의미이다.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같은 말들이 대승경전 전반에 걸쳐 말해지고 있다. 이 세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법, 존재, 현상)은 한 순간도 쉼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만물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생겨나고 없어지고 나고 죽고를 거듭하며 반복하고 변한다. 虛空에서는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바다에서는 햇빛이 비치고 파도가 치며, 땅에서는 햇빛이 비치고 만물이 자란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이와 같이 찰라도 쉼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데 대승경전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움직임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불경에서의 가르침들도 이 세상 모든 것들, 제법은 움직임이 없다고 말하지만 대승불교 교리의 중요 가르침 중 하나인 제법부동설(諸法不動說)을 이해하려면 불교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연기설(緣起說)을 분명하게 잘 이해해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전부 방편으로서 진리를 가리키는 도구인데 그런 방편 도구 중에서도 緣起說을 바탕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緣起說은 석가모니부처의의 방편상의 가르침에 있어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제법부동이라는 방편의 말은 바로 緣起論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방편이다. 


이 같은 연기설은 불교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연기로 나타난다. 십이연기, 업감연기, 법계연기, 진여연기 등 많은 종류의 연기설이 등장하여 이 세상 모든 것(법, 존재, 현상), 즉 諸法의 實相, 本性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연기설의 종류가 많다 해도 연기의 의미는 서로 다르지 않다. 이 세상 모든 法(존재, 것, 현상)은 그것들이 물리적인든 정신적인든 시간적이든 공간적이든 떠나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어서 독자적으로 독립해서 스스로 일어나거나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직접원인과 다른 조건 즉, 연(緣)이 만날 때만 일어나고(緣起) 생겨난다(緣生)는 것이다.

여기 수박이 한 통 있다. 그 수박은 직접원인 이전 수박의 씨와 緣, 즉 조건이라는 간접원인인 흙, 기온, 수분, 그리고 농부의 일손에 의해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 모든 존재(諸法, 것

존재, 현상)은 스스로 생겨나거나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다른 것들을 의지해서만 생겨나고 일어난다. 이렇게 다른 것들인 조건, 연(緣)을 의지해서만 생겨나고 일어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법, 것, 현상)속에는 그 존재 자체의 모습과 자체 성품이 있을 수 없다. 수박은 다른 조건들에 緣하여 비로소 생겨나고 일어났으므로 그 수박은 수박이라고 할 만한 자체 모습과 자체의 성품을 지니고 있지 않다. 보통 사람이 보기엔 앞에 놓인 수박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수박은 생겨난 적이 없다. 수박이라 할 만한 자체 모습이 없고 자체 성품이 없는데 어떻게 수박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우주만법, 제법, 이 세상 모든 것(法, 존재, 현상)도 수박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만법 속에는 자체 모습이나 자체 성품이 없다. 이깉은 사실을 일러 제법, 一切法이 무자상(無自相)이며 무자성(無自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 세상 모든 것의 無自相(자체 모습이 없음)과 無自性(자체 성품이 없음)을 공(空)이라 이름하여 諸法의 모습, 성품이 空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일체법은 연기법(연기적으로 생겨난 것)이므로 자체의 모습이 없고 자체의 성품이 없기에 空인 것이다. 이제 모든 법의 이치가 이와 같다면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 속에는 법을 법이도록 하는 자체의 모습과 자체의 성품이 없으므로 일체법을 움직이게 하는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 주체가 없다. 이렇게 제법의 움직임의 주체가 없기 때문에 제법의 움직임은 없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이 보고 알고 있는 일체 만법의 움직이는 현상은 움직임이 아닌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不動을 일종의 정지 상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유마거사가 말하는 제법부동(諸法不動)은 제법이 정지 상태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움직이는 삼라만상만물의 모습 있는그대로 부동의 모습, 움직임이 전혀 없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제법부동설(諸法不動說)은 아주 중요한 교설이므로 더 언급할 예정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