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法도 없고, 法을 설한 자도 없고, 法을 증득한 자도 없다

장백산-1 2017. 7. 13. 23:33

法도 없고, 法을 설한 자도 없고, 法을 증득한 자도 없다

방편을 써서 설한 진리 또 다른 방편에 불과


원문 : 인류 역사상 이 세상에 출현한 석가모니여래가 깨우친 이 우주 이 세상, 만물의 생성소멸, 성주괴공, 생노병사, 생주이멸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 法, 眞理로부터 그의 제자 가섭에게 그 깨달음, 法, 진리가 전해진 이래, 깨달음, 法, 진리를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 전했는데, 이는 석가모니의 마음과 가섭의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다는 말이다.


虛空에 도장을 찍어봐야 어떤 무늬도 생기지 않는다. 물에 어떤 패턴을 새겨봐야 어떤 패턴도 생기지 않는다. 이와 마

찬가지로 텅~빈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물건에 이건 내 거야 하고 내 도장을 찍는다고 해도 내 도장은 찍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 새기나니, 석가모니의 마음과 가섭의 마음이 다르지 아니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이 절대로 다르지 않다. 직접 나의 도장을 찍는 것과 나의 도장이 찍히는 것이 하나로 일치 하기가 어려워 심인(心印)을 새기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그러니 마음을 곧 마음이라고 할 수 없음이고 단지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요, 얻음도 곧 얻음이 아니러 단지 그이름이 얻음일 뿐이다

 

부처(佛), 깨우침, 法, 진리 에게는 三身이 있다. 즉 법신, 보신 화신(응신)의 삼신인데 法身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스

스로의 성품, 즉 자성(自性) 자체의 모양이 없고 자체의 성질이 없는 虛虛空空인 물질적 정신적인 현상인 이 세상 모든 것들, 法을 설함이요, 보신은 일체 청정법을 설함이요, 화신은 6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돌고 도는윤회 만행법을 설한다. 법신의 설법은 인간의 언어ㆍ음성ㆍ형상, 문자로서 찾지도 못하고 구할 수도 없으며, 법을 설한 바 없이 법을 설하고, 법을 증득한 바 없이 법을 증득해 자성이 허허공공 허통할 뿐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 ‘설할 법조차 없는 법을 일컬어 설법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보신과 화신은 인간 각자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감응해 이세상 현상세계로 나타나므로 설법도 현상에 따르며, 사람 마다의 근기에 감응하기 때문에 모두 참다운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報身과 化身(應身)은 참 부처(眞佛, 법신)이 아니고, 또한 法, 깨달음, 진리를 설한 자가 아니다’라고 말씀 하셨다. 


보신 · 화신 · 법신  三身一體  법신이 있기에 보신 화신도 가능

우주만법 누구나 본래 근본성품 구족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방편으로 방편상의 진리를 말해 


해설 :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 하지만 전함에는 어떤 형체가 있어서 전하는 것도 아니요, 받는 자도 어떤 형체를 받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마음’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 ‘마음’이라는 단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전한다고 해도 전한 것이 없음이요, 얻었다고 해도 얻은 것이 없다.     


삼신설에도 다양한 사상과 내용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을 말한다. 법신은 진리[법]를 인격화한 진리의 부처, 개념상의 부처이다. 대승불교 사상에서는 우주에 충만해 있는 법(진리, 부처)을 인격화하고, 진리 부처 법의 체현자(體現者)로서의 이상향적인 진리의 당처 불신(佛身)을 法身이라 칭한다. 이 법신은 수행의 결과로서 실현되는 부처가 아니라 아득히 먼 옛 날로 부터 본래 존재하는 나라는 본질의 의미이다. 


報身, 즉 생각/분별심, 말, 행동을 통한 여섯 가지 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었거나 그것을 실천한 결과로 이룬 원만한 부처(圓滿報身)을 뜻한다. 신 구 의 세 가지 행위(생각/마음, 말, 행동), 즉 보신불의 상징으로는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이나 약사여래불 등을 든다. 化身은 응신(應身)으로 말하는데, 법, 진리, 깨달음을 너리 펼 사람에 따라 제각각에 맞게 상응(相應, 서로 응해서)해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나타난다. 화신은 곧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생에 따라 출현하는 현실 세상의 존재들로서 깨달았다는 인간 석가모니 부처로서 32 모양과 80종의 명칭을 갖춘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한다. 법신ㆍ보신ㆍ화신, 삼신이 일체이지 삼신은 각각 존재할 수 없다. 법신이 있기 때문에 보신과 화신이 존재할 수 있음이요, 보신과 화신을 통해 一切의 根源處인 法身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法身이란 어떤 형상, 모양, 문자, 말로써 法身이라는 法을 구할 수도 없으며 설명을 할 수도 없으며, 법도 없고, 법을 설했다는 사람도 없고, 법을 들었다는 사람도 없다. 즉 법도 없고, 법을 말한 사람도 없고, 법을 들은 사람도 없는 텅~빈 바탕 자리, 아무 것도 없는 空한 淸淨 본연의 참된 본성을 인간의 생각으로 개념으로 말하는 것이 법신이다. 황벽은 설할 것조차 없는 법을 설법이라고 말했다. 도교에서도 ‘道(부처, 마음, 깨달음)이가 언어(말)로써 표현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道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하였다.   


‘금강경’ 7품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의 내용이다. 법을설한 자도 없고, 법을 들은 자도 없고, 법도 없으니 당연히 무엇, 법을 증득했다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능가경’에서는 ‘내가 어느날 밤 최정각(무상정등정각)을 깨닫고 나서 그 후 반열반(죽음도 없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그 중간에 한 자도 법을 설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전에 법을 말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설할 법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8만4천 법, 말씀이 존재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중생이 탐욕심에 가득 차 있고, 성을 잘 내고, 어리석기 때문에 진리, 깨달음, 법을 방편인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방편으로 설해진 진리는 또ㅓ 다른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므로 깨달음, 진리, 법을 깨우쳤다면 그 방편조차 버려야 하는 것이다. ‘열반경’에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진리, 법, 깨달음)을 보라’고 하였고 ‘금강경’에서는 ‘뗏목을 이용해 강을 건넌 뒤에는 그 뗏목을 버리라’라고 하였다. 선사들도 한결같이 ‘선사들이 한 말을 적지 말라’는 말씀을 남겼다. 


황벽의 설법으로 돌아와 정리하면 모든 중생(우주삼라만상만물, 정신적 물리적인 현상 세계인)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구족되어 있는 청정한 법신(텅~빈 空身)은 인류 역사상의 석가모니 붓다의 출현여부(出現與否)와 상관없이 시방삼세 법계(전체 우주)에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충만하게 존재한다. 무엇이나 누구나 청정 법신의 성품, 空性을 완전하게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의 상불경(常不輕)보살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느 누구를 만나든 간에 예의를 갖추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대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