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백봉 김기추 거사 어록 (751~800)

장백산-1 2017. 7. 18. 14:48

백봉 김기추 거사 어록 (751~800)


751. 아픈 것은 妄識(망식)이여 망녕된 알음알이. 아픈 줄 모르는 것은 무기(無記)이고. 아픔을 느끼는 

것은 法性身(虛空身)이나, 법성신 자리는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기에 아픈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자리요.

법성신 자리, 법신 자리는 스스로의 성질도 없도,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상하사방팔방으로 탁 트여서

막힌데가 없어 허허공공해서 없는 곳이 없고 없는 때가 없고, 이 우주삼라만상을 전부 감싸고 있기에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과 세상만사를 다 알고 다 안다.


752. 아프더라도 안 아프다 생각하면 아픈 것이 없다는 가르침은 최선의 가르침이 아니여.

색신(色身, 肉身), 몸이 이렇게 아프구나 하고 느낄 줄 알고 아픔을 지켜보아야 돼. 그러면

그 고통은 스스로 저절로 사라져버립니다.


753. 깨달은 사람들은 아파도 아야아야 하고 웃어. 아픈거는 법성신이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


754. 사람들이 만약 아픈 걸 진짜로 알고 그런 앎에 들어앉아 버리면 그건 참말로 모습놀이 하는 짓이라.


755. 나는 벌써 我相(나) 人相(너)라는 분별하는 생각 마음을 딱 여의었거든, 아상 인상을 여의어 버리면 

나도 너도 없단 말이여, 진짜 나인 법성신 자리를 칼로 난도질을 하기로서니 봄바람 부는 거나 매 한 가지 

아니에요?


756.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因(원인, 업, 행위)이 돼. 因이 심어지면 果가 나타나. 인과의 법칙은

조금도 어김이 없거든. 虛空으로서의 나라는 因을 심으면 그에 대한 果가 나타날 것 아닌가


757. 색, 모습에는 갈등이 있어. 모습에는 크고 작은 분별이 있어. 모습이 하나 생겼다면 꼭 같지를 않아. 

모래알도 제각각 그 모양이 다 달라.


 758. 色, 모습, 모양, 빛깔하고 타협한다는 말은 예를 들어 꽃을 보면 '아 꽃이 좋다'하고 꽃이라는 모양에 

들어앉아버리고, '그 꽃을 보는 법성신'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에요.


759. 色, 모습, 모양, 형체가 있는 산하대지, 몸뚱이 모두 변하는 것이라. 일반 사람들은 변하여 머물 수 

없는 이 가변(可變)들, 무상한 것들에 들어앉아 머물려고 하기 때문에 안달복달하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


760. 대표적인 色, 모습인 산하대지 이거 虛空중에 생겨서 虛空에 의지해 매달려 있다가 소멸하면 허공이 

돼버렸다가 다시 허공중에 생기고 사라지고, 色 모습인 사람의 색신, 肉身도 법성신(허공신)에 의해 생겨서 

법성신, 허공신에 의지하고 있다가 색신, 육신이 죽어 사라지면 법신, 허공으로 변해 버렸다가 다시 색신이 

생기기 때문에 法身이 虛空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761. 이 변하는 몸뚱어리에 들어앉아서 이 육신, 색신을 좀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재주를 부리는 모든 짓은 육신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헛짓이고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762. 그래서 이 몸뚱이(육신)을 움직이는 법신을 공부하라고 하는 거예요. 물론 법신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 이걸 걷어잡기가 힘들지만 지금 보고 듣고 말하는 놈 있잖아요? 이 놈을 왜 무시하냐는 말이요.


763. 보이는 사물, 들리는 소리, 느끼는 감정, 생긴 생각, 분노와 화 등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변화하면서 흘러가는 파동하는 에너지일 뿐 영원한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

습니까? 영원히 변하지 않으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화내며 분노하는 根本體-法身을 왜 잊어버리느냐 

말이에요.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근본체-법신을 단 한 순간도 잊지말고 항상 생각을 해야 합니다


764. 실상, 근본체-법신이 없으면 산하대지 육신(色身)이라는 이 幻想 幻影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은 전부 산하대지 육신이라는 이 환상 환영에 들어앉아 있거든. 

모양이 있는 산 강 대지 육신, 색신 이 幻身을 바탕으로 하는 공부는 환신 환영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공부이니, 그런 공부는 헛것이고  아무 소용이 없으니 실상, 근본체, 법신을 바탕으로 하는 진짜 공부를 

하라는 말이에요.


765. 어리석은 중생은 변하여 사라져버릴 이 색신, 환신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부류이고, 

불보살은 이 영원불변하는 실상인 법신, 근본체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성류(聖類)들이라

고 분별하여 중생과 다른 것으로 보지만 영원불변하는 근본바탕, 실상, 근본체, 법신 자리에는 중생과 불

보살이라는 분별 차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요.

 

766. 영원불변하는 근본바탕, 법신, 실상, 근본체를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지요.

 근본바탕을 알고 살면 세상, 삶, 인생살이가 평안하고 모르고 살면 불안한 것의 차이일 뿐이지요.


 767. 비상(非相)을 실상(實相)으로 삼아야 해요. 모습 아닌 것을 진짜 모습으로 삼으라는 말이에요.


768. 사실 부처가 되는 것도 마음, 악마가 되는 것도 마음, 여자가 되는 것도 마음, 남자가 되는 것도 

마음, 좋은 일 하는 것도 마음, 나쁜 일 하는 것도 마음, 축생의 몸을 받는 것도 마음, 마음 아닌 것이 

이 세상 어디 있나요?


769. 본마음, 실상, 근본바탕, 법신, 근본체라는 자리에는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 즉 我相이 

본래 없어요, 그러니까 본래마음, 근본바탕, 진짜 모습, 법신, 근본체에서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본마음, 실상, 근본바탕, 법신, 근본체를 무한한 가능성의

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본래마음에다가 '나다'라는 도장을 찍어버리기 때문에 '나'만 될 수 있고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거에요. 


770. 마음은 바꿀 수 있어요. 마음은 자체성(自性, 자체의 성질))이 없기에 내가 쓰기 나름 아니에요? 

어렵게 말해서 체(體)와 용(用)이라.


771. 소승(小乘)은 '나다'라는 我相을 바탕으로 간탐심(인색하고 탐욕을 부리는 마음))을 가지고 모습놀이 

하는 것이고, 大乘은 이 세상 모든 것이 空이고 실체가 없는 헛것임을 알면서 萬法을 세우고 굴리는 것이며,

最上乘은 '인생살이 모습놀이가 헛것임을 알고 모습놀이 인생살이를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는 차이일 

뿐임을 알기 때문에, 더럽다 깨끗하다, 선이다 악이다, 바르다 삿되다 分別하는데 구애(拘碍)를 안 받고 

사는 것이에요.


772. 대승은 '나쁜 것 버리자 좋은 일 하자'고 하지만, 최상승은 分別하지 않아요 절대자유에요. 

불보살의 지위에요.


773. 이 세상 자체가 실답지 않다. 실상이 아니다. 이걸 알아서 그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죽 나가면 

버릇이 돼요. 이 버릇을 기르는 게 진짜 공부예요. 물론 이 공부로 버릇이 어느 정도 되면 그 버릇마저 

또 버려야 돼요.


774. 공부를 지어갈 때 색신인 산하대지를 환(幻)으로 봐 버려. 내 몸, 肉身도 幻으로 봐 버려. 

내 생각 내 마음을 허망한 생각 마음 妄念 妄心으로 봐 버려. 허깨비, 꼭두각시, 幻으로 봐 버려.


775. 희로애락 생로병사 부귀빈천이 전부 因果關係거든. 내가 法身자리에 턱 앉아서 法을 굴리면 

죄업이 붙을 자리가 전혀 없어요. 인과관계는 색신, 모습에서 따라오는 거예요.


776. 청정한 자성 자리, 텅~빈 허공에 앉아 있으면 인과관계가 붙을 자리가 없으니 필연적으로 

선세죄업(先世罪業, 모든 전생에 지은 생각 마음, 말, 행동이라는 三業)이 소멸될 건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요?


777. 청청백백(淸淸白白)해서 해말쑥한 나를 가지고 있으면 그 본래 나의 자리에 뭣이 붙겠나요? 

그 자리에는 선도 악도 공덕도 복덕도 안 붙어요. 몬든 분별이 붙을래야 결코 붙을 수가 없어요.


778. 암만 따져봐도 色身인 이 肉身 내가 아닌데 이걸 나로 본단 말이지. 그렇게 보면 인과가 

들어붙어. 죄업이 들러붙어.


779. 단 십분 설법 들어도 영원불변의 근본바탕, 근본체, 법신, 본래마음, 진짜 모습(실상)을 아는 

도리가 있고, 십년동안 설법 들어도 이것을 전혀 모르는 도리가 있거든.


780. 내가 있다고 보는 데에서 인과관계에서 오는 모든 죄업이 다 들러붙어. 

내가 없다고 보는 데에서는 인과관계에서 오는 모든 죄업이 다 녹아내린다는 말이죠.


781. 이 肉身, 色身 이거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거는 제멋대로 변하는 것이거든요. 

지멋대로 변하기 때문에 병들지 마라 해도 병 들고 늙지 마라 해도 늙어. 제멋대로 변하기 때문에.


782. 아상,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 나라고 하는 그 관념을 없애 버려라. 참말로 

진정한 나를 찾아서 진정한 나를 믿어야 된다는 말이 아상(我相)을 없애버려라 이 말입니다.


783. 색신, 형체, 모습을 진짜인 것으로 아는 알음알이(識), 이거 業 중에서도 가장 큰 業입니다.


784. 실은 법신(法身) 자리에서 볼 때는 전생(先世)도 없고 來生(後世)도 없는 거예요.


785. 금강경은 무아인관(無我人觀, 나도 없고 너도 없다는 무분별))을 바탕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786.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말 할 줄 알고, 생각할 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미워할 줄도 알고, 존경할 

줄도 알고, 울 줄도 아는 것 이거 전부 다 청정한 法身의 장난이거든. 그런데 법신 이 법성신을 무시해 

버리니까 망각해버리니까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이에요.


787. 경계(警戒)하고 타협해서 일어나는 그 마음은 환심(幻心, 도깨비 같은 마음, 허깨비 같은 마음)이거든. 

꼭두각시 마음이거든. 망심(妄心, 진실이 아닌 망령된 가짜 마음)이거든. 이걸 眞心으로 아는 게 죄업이라.


788. 나는 빛깔(色)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청정한 空한 법신, 법성신 자리다. 이 진실 이걸 

놓치지 않고 한 일 년 그대로 가지고 가 보세요. 뜬금없는 지혜가 생겨 본래의 소식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789. 유아인관(有我人觀,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분별심)에 딱 들어앉아서 내세를 준비한다 말이여. 

그게 될 턱이 있나요?


790. 인생살이 놀이 모습놀이에 치우치고 집착하기 때문에 인생 문제가 해결이 안 돼. 

이 모습 이 色身 이 몸뚱아리(肉身)을 나라고 생각하니까 헤맬 수밖에. 사실이 아니니까.

이 몸은 내가 아니니까.


791. 즐거워서 크게 웃는 것보다 싱긋이 웃는 것이 진짜입니다. 즐겁다 괴롭다는 분별을 떠난 자리

그 자리가 진짜입니다.


793. 불교의 가장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야? 安心, 편안한 마음의 도리를 터득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만 편안해. 청정한 空한 법성신 법신의 자리에는 즐거움도 없고 싫어함도 없어.

그 자리는 모든 분별 차별 구별 구분 분리를 떠난 자리여. 너와 나라는 분리 분별을 떠난 자리.


794. 이제부터 그만 놓는 거라. 방하착하는 거(본래 자리, 근본바탕 자리, 법신 자리, 근본체, 본마음,

실상 자리에 드는 것)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따지지 않는 거라. 거기엔 아무 법이 없어.


795. 달마대사가 양나라 무제에게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모른다' '불식(不識)'이라 했어요.


796. 여러분이 본래부터 나쁜 생각 딱 가지고 있다면 좋은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요?


797. 소나 말이나 사람이나 나무나 풀이나 돌이나 모래나 대지나 공기나 물이나 전부 다 슬기 자리, 

밝은 지혜의 자리, 본래 자리, 근본바탕 자리, 법신 자리, 근본체, 본마음 자리가 있어요.


798. 소도 소의 탈을 써서 그렇지 소도 배고프면 먹고 주인이 일을 시키면 밭 갈고 하니, 

그거 부처자리, 본마음 자리, 근본체, 법신 자리 아니고 뭣이여?


799. 성품을 알려면 虛空을 걷어잡아야 돼. 텅~빈 자리.


800. 왜 분별 망상 번뇌를 일으키느냐? 이걸, 色身, 肉身을 나로 잘못 알기 때문이거든. 

잘못 아는 이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여. 사실 진짜 나, 법신은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기 때문에

분별 망상 번뇌가 붙을 자리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