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이 거대한 사건에서 지금까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마지막 한 페이지를 채우려 한다. 댓글 사건이 세상에 공개된 데는 전직 국정원 직원의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9년 3급 부이사관으로 국정원을 퇴직한 김상욱씨다. <한겨레21>은 그동안 여러 차례 댓글 사건의 전모와 관련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씨는 번번이 거절해왔다. 그러나 국정원이 개혁의 첫발을 내디딘 지금 이 사건의 전체 모습을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한겨레21>의 설득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 사건 재판이 시작된 뒤 김씨가 실명을 공개하고 언론 인터뷰에 직접 응한 것은 처음이다. 인터뷰는 7월12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_편집자
‘국정원 댓글 사건’ 처벌받지 않은 자들
2012년 ‘국정원 댓글 조작’ 제보한 김상욱 전 국가정보원 직원 인터뷰
“‘SNS 장악 보고서’ 청와대에 올리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것”
국정원 후배들에게 들은 ‘인터넷 여론조작’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의 핵심은 국정원이 2012년 12월 제18대 대선 등 여러 선거 국면에서 인터넷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에서 여론 조작 작업이 비밀스럽게 진행된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1997년 제15대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한 안전기획부(현 국정원) 북풍 공작을 외부에 알린 적이 있다. 그때 후배들에게 이야기했다. “조직의 선배로 나를 존경하지 마라. 나는 조직원의 의무를 저버렸다. 하지만 야당 유력 후보를 용공 조작해 빨갱이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외부에 알려) 시민의 의무는 지켰다. 그것만 평가해달라.” 내 퇴직 뒤에도 그 말을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었다. 그런 후배들이 종종 국정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이야기해줬다. 국정원이 보수단체를 지원하거나 (밖으로 알려질 경우) 큰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있었다. 2012년 4월 총선 때 국정원이 인터넷 여론 조작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내부에선 꽤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그해 5월쯤 들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더라. 당시 나는 민주당 당원이라서 당에 제보했다. 결국 2012년 10월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그때라도 멈췄으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 정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런 비난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민주당 당원이었다. 공당의 당원으로서 부정선거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당원이 아니라도 불법행위를 알면 고발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제보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자 <조선일보>와 새누리당 등이 내가 민주당에서 국정원 기조실장 자리나 총선 공천을 약속받았다는 ‘매관매직설’을 퍼트리며 공격했다. 사실무근이었다. 결국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했다. 만약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였다면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내가 직접 기자회견을 하거나 댓글 작업이 벌어진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심리전단 직원의 노트북을 확보해 공을 세우려 했을 것이다. 국정원 감찰실에서 직원을 조사한 경험이 많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불법행위를 했더라도 전직 선배가 같은 (조직에 몸담은) 후배한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내 삶은 파괴됐다”
최근 <세계일보>가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보고서(SNS 장악 문건)를 보도하면서 국정원의 여론 조작 작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보고서가 작성된 것은 10·26 재·보궐 선거 직후인 2011년 11월로 “내년(2012년) 총선·대선(19대 국회의원선거·18대 대통령선거)을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역량을 총동원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장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이 문건이 작성된 직후인 2011년 12월께 국정원 심리전단 인원을 20~30명 증원한 뒤 2012년 2월20일께 증원된 인원을 바탕으로 사이버팀 1개를 증편했다고 나온다. 김상욱씨는 ‘SNS 장악 보고서’에 대해 심리전단 확대를 청와대에서 승인받기 위한 보고서라는 견해를 내놨다.
최근 <세계일보>가 ‘SNS 장악 보고서’를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심리전단이 확대 개편되기 직전인 2011년 11월 작성된 보고서다. 국정원 조직을 확대하려면 청와대 결재가 있어야 한다. 조직 개편을 하려면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리고 대통령의 승인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SNS 장악 보고서’는 대통령에게 심리전단 확대의 필요를 설명하기 위한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본다.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
삶이 파괴됐다. 국정원이 국정원 직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나를 고발했고, 2013년 5월2일 (우리 집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새벽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기자들이 찾아오면서 보금자리가 파괴되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관계도 망가졌다. 국정원 대변인은 언론에 나를 “인간쓰레기” “파렴치범”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나는 국정원 공채 27기인데, 친목 모임인 동기회에서도 제명당했다. 친정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하지만 2016년 12월 대법원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가 확정됐다. 죄를 저지른 건 내가 아니라 국정원이란 사실이 확인됐다. 국정원은 이제라도 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고발했던 것을 사과해주기 바란다.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2015년 1월 갑자기 검찰이 집에 찾아와 나를 체포했다. 약국 실사를 무마해주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인데 황당했다. 2010년쯤 지인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사를 받게 됐는데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나는 절차가 어떤지는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뭘 알아보기도 전에 다음날 연락이 와서 문제가 잘 해결됐다고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더라. 알았다고 했다. 그 뒤 그 친구가 선의로 드리는 거라며 3천만원을 줬다. 워낙 친하게 지낸 터라 내 살림이 어려운 줄 알고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마웠다.
그 뒤 돈이 더 필요해 500만원을 빌렸다.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인이 실사 대상이던 약국의 약사에게서 5500만원을 받은 뒤 일부를 나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선의로 생각하고 돈 받은 것 자체는 부주의했지만 대가성은 없었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를 다툴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보석으로 나온 상태라 항소심에서 실형을 받고 다시 구속되면 도저히 가정을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보복 수사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약사에게서 직접 돈을 받은 지인은 불구속 수사를 받고 나는 구속 수사를 받았다. 게다가 이 사건을 일반 형사부가 아니라 인천지검 특수부에서 수사했다. 여러 의심이 들지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겠나. 진실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다.
퇴직 때 손에 쥔 건 작은 쇼핑백 하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김성호 국정원장이 부임한 뒤 인천지부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전 정부와 너무 가까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정원장이 원세훈으로 바뀐 2009년에는 일주일간 감찰조사를 받았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 내가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명목이었다. 감찰조사 결과 살생부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소용없었다. 또다시 대구지부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인천에 간 지 10개월 만이었다. 인사 규정에 따르면 부서 이동은 1년이 지나야 할 수 있다. ‘찍어내기’ 앞에서 규정 따위는 휴지 조각일 뿐이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려 했지만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2009년 5월29일 연화장에서 화장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생중계됐다. 텔레비전을 보던 직원들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고인을 폄훼하는 말과 욕설을 퍼부었다. 마치 나 들으라는 식이었다. ‘구정물’을 뒤집어쓴 듯했다. 같은 해 6월30일 21년간 몸담았던 국정원을 떠났다.
퇴직 때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천지부로 좌천된 2008년 이후 김씨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본부에 다시 발을 들이지 못했다. 젊은 시절을 통째로 바친 그곳에서 퇴직할 때는 후배들의 박수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부장에게만 인사하고 조용히 나와야 했다. 환송하는 동료는 없었다. 그날 그가 손에 쥔 것은 꽃다발이 아닌 작은 쇼핑백 하나뿐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은 참여정부 때와 달랐나.
굉장히 달라졌다.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내부 비판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고 소통도 나름 잘됐다. 이명박 정부에선 직원들이 서로 음해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마치 모든 직원이 서로 사상검증을 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제주 4·3항쟁에서 정부의 잘못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베테랑 수사국 간부가 징계위에 회부되는 일도 있었다. 특히 ‘비선’으로 어떤 직원이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고 감찰과 징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국정원 조직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뭐라고 보나.
(지난 과오에 대해) 처벌받지 않아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직원들 간의 진술 맞추기 등 증언 조작을 주도한 직원 2명이 승진해 여전히 현직에 있는 것으로 안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들도 좋은 보직에 있다. 반면 나와 친했던 직원들은 국정원 댓글 사건 공개 과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음에도 파면당하거나 지방으로 좌천됐다. 이들은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범죄에 관여한 이들은 승진했고, 아무 죄 없는 이들은 온갖 수모를 견뎌야 했다. 이래서는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 지금이라도 범죄에 관련된 직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 규정이 문제가 아니다. 처벌 규정은 있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비롯해 문제가 된 사건을 명백하게 밝혀내 전원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 현직 직원들에게는 서운한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처벌해야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 의식 변화가 있어야 국정원이 정치 관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밝고 유능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제 좀 자유롭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고통을 많이 받았다. 이번 정부에선 억울한 고통을 받지 않을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최근 국정원 개혁 작업은 어떻게 보나.
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의지가 무척 강해 보인다. 잘될 것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개혁의 핵심은 대통령이 나쁘더라도 국정원을 악용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는 국정원이 큰 문제 없이 운영됐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퇴행하고 말았다. 문 대통령 때는 국정원이 잘 운영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다음, 그리고 그다음 대통령 때에도 잘 운영되려면 뼈를 깎는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조기 극복하는 데 국정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치하한 적이 있다. 그때는 국정원이란 조직에 몸담은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지금 국정원은 음습한 정치공작을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로 굳어버렸다. 빨리 (예전 같은) 밝고 유능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국정원 직원들은 현 위기를 극복할 충분한 저력이 있다. 정보기관원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자랑스럽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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