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무심(無心)

장백산-1 2017. 8. 27. 15:01

무심(無心)


무심을 일러 도라고 하지 말라.

무심도 아지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


莫道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막도무심운시도   무심유격일중관


- 십현시-


선가(禪家)에 ‘오직 無心으로 으뜸을 삼는다.’는 말이 있다. 無心이란 일체의 분별 번뇌 망상이 없다는 

의미의 말이다. 분별 번뇌 망상은 선한 마음의 반대인 악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심 악심 둘 다

일컫는 말이다. 無心은 그렇다고 무정물인 木石과는 또한 엄연히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무엇이라고 한 

가지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공적(空寂, 텅~비어 고요함)하여 텅~빈 상태의 마음이 사람 마음의 본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마음의 바탕이 꽉~차 있지 않고 텅~비어 있으므로 그 텅~빈 바탕 마음에서 어떤 

마음이든지 일으킬 수 있고, 일으켜서 텅~빈 바탕 마음을 채울 수도 있다. 이미 어떤 마음으로 꽉 차 

있으면 다른 마음이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렵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어야 한다. 일체를 

부정한 자리가 無心이다. 그래서 禪家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 無心을 귀중하게 여기고 높이 숭상한다. 


그러나 無心에서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음이란 텅~비어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마음의 본 모습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 텅~빈 바탕에서 신령스럽게 보고 듣고 감지하는 

능력이 작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과 악을 사량 분별하고 이해타산을 하는 그런 사량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사량 분별이 여읜 상태에서 신령스럽게 보고 듣고 감지하는 작용이다. 그것을 ‘공적한 

데서 신령스럽게 안다.’ 하여 공적영지(空寂靈知)라 말하고, ‘신비하게 감지한다.’ 하여 신해(神解)라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유하자면, 거울은 사량 분별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물이 가까이 오면 

사물의 생긴 모습 그대로 사심 없이 사량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몽땅 다 비춰 준다. 사물이나 사람의 

종류에 따라 차별적으로 흔적이 남는 법도 없다. 거울 처럼 텅~비어 空寂하면서도 아무 사심 없이 사량

분별 없이 신령스럽게 작용하는 것이 사람 마음의 본령이다. 흔히 말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도 그러한 

뜻이다. 그런데 無心하기도 대단히 어렵지만, 無心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아직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

고 할 수 있다.


산빛노을(원광) 산빛노을(원광) http://cafe.daum.net/okryunam/RgHH/142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