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自然界)의 의도
차라투스트라는 매우 명쾌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2천5백 년 전에, 육체가 육체 자체의 지혜를 갖고 있다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대는 매 순간 육체의 지혜를 경험하지만, 과거로 부터 세되되어온 낡은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고 깊어서 육체의 지혜를 알아볼 수 없다.
예를 들면, 그대의 눈은 끊임없이 깜빡거린다. 눈은 항상 열려있는 귀처럼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의 육체는 지혜, 즉 깊은 지성을 갖고 너무나 민감한 눈을 지속적으로 세척을 한다. 그리고 육체의 지혜는 눈꺼풀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때마다 눈을 스스로를 정화한다.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나오는 눈물샘이 있다. 그대가 울거나 흐느낄 때 눈물이 나오지만, 그대의 눈꺼풀이 깜빡거릴 때마다 동일한 눈물이 나와서 육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눈에 쌓인 노폐물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낸다.
눈은 인간의 영혼의 창문과 같다. 육체의 지혜는 눈을 극진하게 보호하고 보살핀다. 눈울 보호하고 보살피는 육체의 지혜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육체가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한 일들은 그대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그대는 그다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대’란 그대의 분별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호흡은 그대의 분별하는 마음이 관장하는 일이 아니다. 분별하는 마음은 너무나 부주의하기 때문에 그대의 분별하는 마음에게 호흡하는 일을 맡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마음이 호흡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대는 죽게 된다. 그대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숨을 쉬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마음은 깊은 잠에 빠지지만, 육체는 계속해서 호흡을 한다.
그대의 분별하는 마음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해도 그대의 삶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9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한 여인을 보았지만, 그녀는 완벽하리만치 호흡을 잘 유지했다. 심장박동, 음식의 소화, 소화된 음식의 영양분을 육체의 각 부분으로 분배하는 일은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비타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비타민이 육체의 어느 부분으로 가야 하는지를 육체는 잘 알고 있고, 그 수요를 정확히 충족시켜준다. 각종 비타민을 육체의 곳곳으로 보내는 일은 그대가 하는 일이 아니다. 두뇌에 필요한 비타민이 있다. 두뇌에 필요한 비타민만이 혈액을 타고 두뇌(뇌세포)로 이동한다.
혈액에는 백혈구와 적혈구라는 두 종류의 세포가 있다. 육체에 상처가 나면 그대의 분별하는 마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육체의 지혜는 즉각적으로 상처난 상황을 접수한다. 우선 백혈구가 상처가 난 곳으로 즉각 달려간다. 백혈구가 상처에 모여들어서 적혈구가 육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너무나 신비롭고 대단한 일이다. 백혈구는 보호막이 된다.
육체는 스스로 알아서 스스스로를 치료한다. 이제서야 현대의학계는 의사, 의약품, 모든 의료행위가 육체가 스스로 알아서 스스로를 치료하는 치료과정을 도울 뿐이며, 기본적인 치료는 육체 스스로가 담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의사,의약품, 의료행위는 단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육체가 스스로를 치료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이런 도움은 무용지물이 된다.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의 일들을 기계가 해야만 한다면, 육체 하나 속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거대한 공장이 필요할 것이다. 육체가 그토록 조용하고 작은 공간에서 하고 있는 모든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공장이 필요할 것이다.
육체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재생한다. 그대는 잘 모르지만, 육체는 7년마다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7년전의 육체를 구성했던 60조개 내지 100조개의 세포는 7년마다 하나도 남지 않고 새로운 세포들로 모두 대체된다. 그 세포들이 너무 늙어 파괴적인 성질의 세포로 변질되기 전에 완전히 제거하서 새로운 세포로 갈아주는 것이다. 혈액은 죽은 세포들을 계속해서 체외로 내보내고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체외로 배출한다. 이산화탄소가 몸에 축적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체외로 배출하는 대신에 생명을 유지해주는 산소를 흡수한다. 이 과정은 아주 조용하게 이루어지며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종교가 육체를 죄악의 원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육체는 삶의 원천이다. 육체가 그대를 만든 것이므로, 그대는 육체에게 달려있다. 그대는 죄인이 될 수도 있고 성자가 될 수도 있다. 육체는 그대가 죄인이 되도록 유혹하지도 않고 성자가 되라고 부추기지도 않는다.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되건 그건 그대의 분별하는 마음이 하는 것이다. 그대가 죄인이나 성자, 혹은 그 무엇이 되든지 간에 육체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육체가 하는 일은 너무나 방대해서 육체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육체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표현한다. 육체는 그대라는 존재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육체로부터 존재로 옮겨간다.
그러나 이미 수백 년 동안 그리 해왔던 것처럼 육체를 비난하고, 포기하고, 고문한다면 그대는 자신의 존재로 옮겨갈 수 없다. 육체와의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릴 것이다. 육체와의 이러한 적대관계에서 그대의 모든 에너지가 헛되게 소모될 것이다. 사랑 감사 고마움으로 그대의 육체를 보살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육체는 나라는 존재의 진리를 향해 나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계가 의도하는 의지이다.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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