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그네정권의 방송통신 장악음모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 조혜정

장백산-1 2017. 10. 15. 20:31


[한겨레 프리즘]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 조혜정

입력 2017.10.15. 18:26 수정 2017.10.15. 19:16


                                                       조혜정 대중문화팀장

“젊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좀 생각해야지. 회사가 그런다고 똑같이 하면 쓰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 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던 2007년 5월10일 아침이었다. 출마 기자회견은 서울 염창동에 있던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미리 이 전 대통령과 캠프 분위기를 좀 살펴보려고 안국동에 있던 그의 사무실 ‘안국포럼’에 들른 길이었다. 이 전 대통령 일행이 엘리베이터를 타길래 얼른 따라 탔다. 마침이랄까, 하필이랄까, 기자가 나 혼자였다. 출마 선언의 메시지로 뭘 준비했는지 물으려는데 이 전 대통령이 선수를 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당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규칙을 둘러싼 이명박 전 대통령 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 쪽의 싸움으로 당 안팎이 매우 시끄러웠다. <한겨레>도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곤 했었다. 그걸 이 전 대통령은 ‘부정적인 생각’이라 여겼던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발언에 당황해서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대통령 되면 우리 회사 문 닫게 할 기세’라는 느낌이 강하게 남았다.

느낌이 어느 정도 맞았다고 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는 <한겨레21> 편집장을 불법사찰하고 <한겨레>에 정부부처 광고 집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정도로 회사가 문을 닫진 않았다. 뜻밖의 폭탄을 맞은 건 방송사들이었다. ‘방통대군’으로 불렸던 최시중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방송사 ‘길들이기’와 ‘찍어내기’가 착착 진행됐다. 사장 ‘낙하산’이 떨어졌고,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와 피디들이 쫓겨났다. 정부에 편향됐거나 받아쓰기 보도,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를 보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안 보게 됐고,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아들이 커서 엄마가 공영방송 기자라는 걸 알고, 그때 왜 그러셨냐고 할까 봐 무섭고 부끄럽다’며 회사를 관뒀다. 문을 닫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방송사들이 엉망진창이 된 거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지만 공부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언론이 입법 · 행정 · 사법부에 이어 제4부라는 말이 늘 이상했다. 공익에 복무할 사람을 가리는 공적인 절차를 통과하거나 자격증을 얻은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기자가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명박 전 정부를 겪고 박근혜 전 정부를 견디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폭주하는 권력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국민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언론을 통제하는 것임을. 언론을 제4부로 부르든 말든,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고 자임하든 말든, 언론이 본연의 기능인 사실 확인과 검증, 권력 감시와 비판을 하지 못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것을.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며 두 공영방송 직원들이 파업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하지만 싸움은 쉽게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이라고 억지를 쓴다. 그 탓에,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초점은 대부분 파업 해결책과 방송 정상화 해법이 아니라 ‘여야 공방’이었다. 공영방송 파괴를 시작했던 이 전 대통령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합니다”라고 썼다.

이 전 대통령이 나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연세도 있으신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자유한국당이 그런다고 똑같이 그러시면 되나요.”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