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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珍島)의 '나절로' 선생

장백산-1 2017. 11. 27. 19:50

[조용헌 살롱] [1119]  진도(珍島)의 '나절로' 선생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 입력 2017.11.27. 03:14 수정 2017.11.27. 16:10




나절로 선생은 진도 임회면의 소재 여귀산(女貴山·457m) 아래 산다. '山不在高 有仙則名(산부재고 유선즉명)'이라 했다. '산이 높다고 좋은 산이 아니라 그 산에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란 뜻이다. 여자의 유방처럼 유두도 달려 있는 형상인 여귀산 자락에 사는 나절로 선생은 '한국의 소로우(Thoreau)'다. 미국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었던 소로우는 45세에 죽었지만, 나절로 선생은 60대 중반에 여전히 건강하다는 점이 다르다.

소로우는 월든 오두막집에서 몇 년 살다가 도시로 나갔지만, 나절로는 평생 여귀산 아래의 연못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살고 있다.

나절로는 이름이 아닌 호(號)다. 나절로 선생의 본명은 이상은(李常銀)이다. '내 방에는 시계가 없소. 내 방에는 거울이 없소. 내 방에는 달력이 없소. 시계가 없어 초조함을 모르오. 거울이 없어 늙어가는 줄 모르오. 달력이 없어 세월 가는 줄 모르오. 아 - 내사. 절로 절로 살고 싶소.' 이 시를 19세 때 썼다. 당시 소설가 이병주가 우연히 이 시를 읽고 "정말 자네가 쓴 게 맞나? 앞으로 자네 호는 '나절로'라고 하게."라고 해서 나절로가 되었다. "다른 호는 없습니까?" " '대충'과 '시시'가 있어요." "뭔 뜻이죠?" "대충 살고 시시하게 살자는 의미입니다."

나절로의 고향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이다. 20대 때 먹고살기 위해 도시에 나가 한 3년 살았지만 도시에서 사는 게 감옥같이 느껴져 다시 고향 산천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도시에 나가지 않고 진도에서만 살았다. 40세 때 임회면의 폐교를 구입하여 여기에다 연못을 파고, 상록수도 심고, 그림 전시하는 미술관으로도 사용한다. 여귀산 자락의 물이 관을 타고 집안의 연못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왠지 부자 된 느낌이 든다. "낚시광이었던 아버지가 진도군 목섬에서 낚시를 즐겼어요. 10대 시절 심부름 가면서 난대림과인 동백나무, 후박나무, 돈나무, 다정금, 생달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통과하곤 했어요. 5월에 꽃이 피면 그 녹색의 나뭇잎 냄새와 꽃향기가 코를 찌르고, 그 열매들을 따 먹으면서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맛보았던 것 같아요. 그 행복했던 기억이 저를 진도의 상록수 나무숲에서 살도록 한 것 같습니다."

연재조용헌 살롱ⓒ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