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6)
나와 너는 완벽히 똑같다, 고로 완전히 다르다
입력 2018.01.11. 21:37
ㆍ똑같아서 존재하는 세상
옛날 옛적 황해도에 옹고집이라는 심술궂고 고약한 부자가 살았다. 옛날이야기의 권선징악 프레임에 따라 옹고집은 천벌을 받게 된다. 옹고집과 똑같이 생긴 가짜 옹고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짜 옹고집을 가짜라며 내쫓았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옹고집은 잘못을 뉘우치고 좋은 사람이 된다. 옹고집전의 백미는 진짜와 가짜를 놓고 벌어지는 소동이다. “형방이 썩 나서며 양(兩)옹을 발가벗기었다. 차돌 같은 대갈통이 같거니와, 가슴·팔뚝·다리·발이 모두 같고 불알마저 흡사하니, 그 진위를 뉘라서 가리리요.” 이처럼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을 수 있을까?
일란성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하나의 DNA에서 시작했겠지만 살면서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이 똑같아도 차이가 생긴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복제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몸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세포가 복제될 때 DNA도 복제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실수가 일어난다. 인간 DNA에는 32억개의 염기서열이 있다. DNA 한 개를 복제하는 것은 전 세계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장부에 옮겨 적는 거랑 비슷하다. 실수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다. 더구나 사람의 몸에는 60조개 내지 100조 정도의 세포가 있고, 각각의 세포마다 DNA가 하나씩 있다. 그러니 DNA도 60조개 내지 100조개가 있다. 결국 쌍둥이조차 세포 수준에서 완전히 똑같을 수 없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100원짜리 동전들도 엄밀히 말해서 똑같지 않다. 공식적으로 5.42g의 질량을 가져야 하지만 1억분의 1g까지 잴 수 있는 정밀저울로 측정하면 차이가 날 것이다. 1억분의 1g까지 질량이 같더라도 두 동전은 다르다. 원자 개수를 세어보면 차이가 있을 테니까. 원자 개수마저 똑같아도 여전히 다르다. 100원 주화는 구리 75%, 니켈 25%로 이루어지는데, 구리와 니켈 원자들의 상대적 배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배치마저 같아도 여전히 다르다. 구리와 니켈에는 동위원소가 있기 때문이다. 동위원소란 화학적 성질은 같지만 질량만 다른 원자다. 결국 우리 주위의 물체에 대해 원자 수준까지 내려가서 비교하면 같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결국 겉모습이 완전히 똑같은 물체라도 원리적으로 서로 구분이 가능하다.
■ 모든 전자는 똑같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사람, 나무, 흙, 공기, 스마트폰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되어 있다. 전자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물질의 최소단위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한 번에 500㎖ 정도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여기에는 대략 아보가드로수의 전자가 들어있다. 아보가드로수란 1 뒤에 0이 23개나 붙은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다. 그런데 이 많은 전자들은 서로 완전히 똑같다. 앞에서 똑같아 보이는 물체들이 사실 다르다고 하더니, 전자는 완전히 똑같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전자는 물질의 최소단위다. 전자는 색도 모양도 없다. 그 내부에 더 작은 세부구조 따위도 없다. 두 개의 전자가 같지 않다면 대체 어디가 달라야 하는 걸까? 그래서 모든 전자는 똑같다. 이게 뭐 대수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수 맞다.
치킨집에서 우리를 언제나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양념과 프라이드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느냐다. 메뉴에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 없다면 동전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보통은 동전 하나를 던지지만 명색이 물리공부 칼럼이니 두 개를 던져보자. 둘 다 같은 면이 나오면 양념, 다른 면이 나오면 프라이드다. 이 경우 확률은 각각 2분의 1이다. 왜냐하면 동전 두 개를 던져 나오는 모든 가능한 경우가 앞앞·앞뒤·뒤앞·뒤뒤로 네 가지인데, 같은 면이 나오는 경우가 앞앞·뒤뒤로 두 가지, 다른 면이 나오는 경우가 앞뒤·뒤앞으로 역시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동전 두 개가 완전히 똑같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에서 누누이 이야기했듯이 보통의 경우 두 동전이 완전히 똑같기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전이 전자같이 완전히 똑같아서 서로 구분 불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이제는 동전을 던져 나오는 모든 가능한 경우를 생각할 때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앞앞·뒤뒤는 괜찮지만 앞뒤·뒤앞에서 문제가 생긴다. 앞뒤란 한 동전이 앞면일 때 다른 동전이 뒷면이라는 말이다. 이 동전이 앞면일 때 저 동전은 뒷면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이 동전, 저 동전 하며 두 동전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두 동전이 구분 불가능하다면 앞뒤·뒤앞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이 두 경우는 같다. 하나의 경우란 말이다.
결국 모든 경우의 수는 세 가지뿐이다. 앞앞, 뒤뒤, 앞뒤(또는 뒤앞). 이 가운데 같은 면이 나오는 경우는 두 가지이므로 양념이 나올 확률은 3분의 2, 프라이드는 3분의 1이 된다. 구분 불가능한 동전을 던지면 양념치킨을 먹게 될 확률이 더 크다. 행여나 길에서 전자를 이용하는 야바위꾼을 만난다면 정말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맨눈으로 전자를 보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 구분 불가능성이 양자역학을 만났을 때
모든 전자는 똑같다. 더구나 전자는 양자역학으로 기술된다.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원자 세상은 우리의 경험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당신은 절대로 서울과 부산에 동시에 있을 수 없지만, 당신 몸을 이루는 전자는 그럴 수 있다. 이제 구분 불가능한 전자들을 양자역학으로 다루면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가 얻어진다. (왜 아니겠나?)
무언가 기술하려면 우선 그 무언가에 이름을 주어야 한다. 지금 필자 앞에는 어떤 것이 있다. 이것에 이름을 주지 않고 기술할 수 있을까? 아직 이름을 주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틀렸다. ‘어떤 것’이라고 불렀으니까. 시인 김춘수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호명(呼名)은 대상을 비로소 존재하게 만든다. 물리에서도 두 개의 전자가 있다면 이들에게 각각 이름을 주어야 한다. 철수와 영희, 이런 식으로 말이다. 둘 다 철수라고 부르면 엉망이 된다. 예를 들어 철수의 위치와 영희의 위치를 더하면 그냥 철수의 위치가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모든 전자는 완전히 똑같은데 이렇게 구분하여 불러도 될까? 도대체 우리는 구분 불가능한 입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양자역학은 이 문제에 놀라운 답을 준다. 다시 치킨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두 개의 전자가 하나는 양념, 다른 하나는 프라이드를 먹는다. (전자가 어떻게 치킨을 먹느냐고 딴지 걸지 마시라.) 그렇다면 철수는 양념, 영희는 프라이드를 먹는다고 기술하면 된다. 물론 이것은 틀렸다. 철수니 영희니 하는 것은 전자들에 편의상 붙인 이름일 뿐이다. 이 둘은 완전히 똑같다. 반대로 영희가 양념, 철수가 프라이드를 먹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야 한다. 바로 이게 답이다. ‘철수는 양념, 영희는 프라이드를 먹는 사건’과, 반대로 ‘영희는 양념, 철수가 프라이드를 먹는 사건’이 양자역학에서는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마치 전자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정리해보자. 두 전자에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을 주는 순간 둘은 구분 가능해진다. 하지만 철수가 양념, 영희가 프라이드 또는 철수가 프라이드, 영희가 양념이라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하면 구분이 사라진다. 양자역학은 이렇게 모든 전자가 똑같다는 사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현한다. 이로부터 ‘파울리의 배타(排他)원리’라고 부르는 우주의 중요한 법칙이 얻어진다. 이미 독자들의 인내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테니 그 과정은 설명하지 않겠다. 볼프강 파울리는 이 원리를 발견한 공로로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전자들이 원자 내에서 어떻게 배치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호텔 1인실에는 한 사람, 2인실에는 두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양자역학적 상태에 몇 개의 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해준다. 전자들의 공간적 배치는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당신의 평판을 결정하듯이 다른 원자와의 관계가 원자의 특성을 결정한다. 원자는 중심에 엄청나게 작은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많은 전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다른 원자가 보기에는 주변에 있는 전자들만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전자 배치가 원자의 특성을 결정한다. 전자 배치가 유사한 리튬과 나트륨이 모두 물에 닿으면 격렬히 반응하고, 마찬가지인 불소와 염소가 모두 독(毒)인 이유다. 고체 내의 전자들도 배타원리에 따라 배치된다. 그 구조에 따라 도체, 부도체, 반도체가 된다. 즉 모든 전자들이 똑같다는 사실로부터 세상 모든 물질의 특성과 형태가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모든 전자가 완벽하게 똑같기 때문에 존재한다.
■ 왜 전자는 모두 똑같을까?
전자는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라서 똑같다고 했다. 혹시 여기에 더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아이돌그룹의 댄스는 거의 예술의 경지라 할 만하다. 멤버 10명이 서로의 몸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들었다고 하자. 멤버들이 함께 움직이면 호랑이도 따라 움직일 것이다. 호랑이 자체는 실체가 아니지만, 그 형상만 본다면 실체나 다름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제 아이돌그룹이 아닌 일반 고등학생들이 마찬가지로 똑같이 호랑이 형상을 만들었다. 겉보기에 두 호랑이 형상이 똑같다면 이 둘은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미묘하다. 이제 우리의 대상은 원자같이 물질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물질 위에 덧씌워진 형상일 뿐이다. 형상을 만들려면 재료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핵심이라기보다 부수적인 것이다. 고양이, 레고블록, 사과로도 같은 형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형상은 공간상에 만들어진 수학적 도형에 불과하다. 추상적 기호란 뜻이다. 숫자 ‘1’과 ‘1’은 완벽하게 똑같다. 신문에 인쇄된 두 글자의 모양이 같다는 말이 아니다. ‘1’은 하나가 있다는 추상적인 수학기호이다. 기호라는 관점에서 이 둘은 똑같다. 앞서 만들어진 호랑이 형상도 마찬가지로 일종의 기호, 정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개념이라 똑같다.
우리는 전자가 그 자체로 질량과 전하를 갖는 실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자가 호랑이 형상과 같은 결과물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서로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거다. 이들은 기호라 완전히 똑같기 때문이다. 전자는 무엇의 결과물일까? 물리학자들은 이 ‘무엇’을 ‘전자장(electron field)’이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전자를 기술하는 방법이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다. 오늘날 양자장론은 이론물리학의 중요한 뼈대다.
양자장론이 보는 세상은 이렇다. 전자장에서 전자가 만들어진다. 전자는 실체가 아니라 전자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유하자면, 전자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장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형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든 전자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이 똑같다.
가짜 옹고집은 진짜 옹고집과 똑같을 수 없다. 많은 원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상의 물체들은 똑같이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물체를 이루는 원자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전자 같은 기본입자들은 서로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똑같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보는 물질은 그 자체로 실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장의 일부분, 형상의 결과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때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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