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놀이 / 김춘남
아이야, 내 속에도 쥐불을 놓거라,
더러운 쥐들이 살고 있으니.
논둑 밭둑의 마른 풀 같은 내 속에
쥐불을 놓거라.
어둠과 부조리의, 혼돈과 무질서의 악취나는
죄의 쥐들 잡을 수 있는 고양이 불을 놓거라.
대낮에도 어두운 곳이면 어디나 헤집고 들어가
들쑤시고, 갉아대고, 쏠아대며 못 쓰게 만들고,
의식의 천장을 누비고 다니며
잠마저 쑥밭으로 만드는
교활하고 잔꾀 밝은 쥐를 잡거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병원체에 휩싸여 공포에 전염되지 않도록
아이야 내 속에 쥐불을 놓거라.
죽은 쥐약으로는 쥐를 잡을 수 없거니,
살아 움직이는 고양이 불을 놓아라.
정월 대보름, 귀밝이술이며 이 부럼에
소원성취 달맞이, 액막이 연날리기도 다 좋지만
보름달 눈뜨고 내 속에 들어와
쥐불놀이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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