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에서의 명상 / 몽지님
아침이 되어 눈을 뜹니다. 자아의식과 더불어 내 주변 세계에 대한 감각이 동시에 자각됩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오늘 해야 할 업무들이 떠오릅니다. 그 업무들에 관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연속적으로 불편한 감정, 부담감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확인하듯, 문득 일어난 업무에 관한 생각과 불편한 감정, 부담감 또한 또 다른 나의 모습 가운데 하나임을 자각합니다. 무의식적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자아에게서 생각과 감정을 분리해서, 타자화, 대상화함으로써 업무에 관한 생각, 불편한 감정, 부담감 그것들을 자아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 갈등, 괴로움으로 만듦을 자각합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눈을 감고 졸거나,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신문이나 책을 보면서 거의 필사적으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회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불현듯 며칠 전 가족들 간에 있었던 사소한 갈등이 떠오릅니다. 그에 따라 다시 불편한 감정이 일어남을 자각합니다. 과거의 이미지에 끌려가려는 자아의 움직임을 자각합니다. 지하철 금속 손잡이의 차가움으로 의식을 돌립니다.
감각의 내용, 생각의 내용, 감정의 내용은 단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면서 흘러갑니다. 감각, 생각, 감정에 의식이 쏠릴 때 감각, 생각, 감정은 마치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객관적 존재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감각, 생각, 감정 그것은 마음이 그려낸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환영(幻影), 환상(幻想)입니다.
나는 언제나 영원히 무시무종으로 불생불멸로 가고 옮이 없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전체로서 자각하며 존재할 뿐입니다.
업무를 시작합니다. 생각과 달리 매 순간순간 처리되어야 할 일은 제 때 제 순서대로 처리됩니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오가며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 같지만, 실제 업무는 별 생각 없이 행동하는 순간순간에 처리되는 것입니다.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에서 가끔식 문제와 갈등이 생기지만 문제와 갈등의 밑바탕엔 서로가 자신의 억측이나 판단, 자아상에 대한 집착(아집 我執)이 있음을 자각합니다.
어김없이 퇴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업무와 대인관계에 집중되어 있던 의식이 자유로워지자, 소소한 행복감,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자유와 행복인데 의식이 다른 대상에 가 있을 때는 자유와 행복감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면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지친 몸과 마음, 자아의 늘 그런 푸념에도 잠시 귀를 기울여 줍니다. 수고했다고 다독여 줍니다
뭔가 소진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 뭔가를 채워야 할 것 같은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오락거리를 찾는 마음의 움직임을 자각합니다. 별 의미 없는 수다와 공감을 통한 관계 맺기 속에서 위로를 받으려는 자아의 미숙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물론 자기 자신의 무자비한 비판에 안절부절하는 자아를 한 없는 연민으로 안아줍니다. 그래 그래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 .
집에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냅니다. 별 일이 없음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닫는 또 다른 하루였습니다. 후회할 일도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는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사라져간 지금 이 자리지만, 결국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일 뿐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담담하고 평범한 살아있음, 존재의 감각만이 실재(實在)입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듭니다. 지나간 일에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에도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의식은 오늘 아침 일어나 깨어난 그곳으로 서서히 돌아갑니다. 사람들 제각각의 삶이란 어떤 면에서 의식이 만든 꿈, 환상, 환영과 같습니다. 꿈의 주인공도, 꿈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꿈의 세계도 모두 꿈일 뿐입니다. 의식의 주체도, 의식의 객체도 모두 의식일 뿐입니다. 어떤 일도 없고, 아무 일도 없는 곳,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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