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이 세상)은 허공에 핀 꽃과 같다
보고 듣는 대상은 환영이고 눈병이 생긴 눈에 보이는 헛것이며, 삼계(이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공에 핀 헛꽃과 같나니 듣고 깨달아 헛것의 뿌리인 눈병이 사라지면 번뇌는 소멸하고 깨달음만 원만하고 깨끗하다. 깨달음의 깨끗함이 지극하면 광명이 사무쳐 통하고 고요하게 비추어 허공을 통채로 품을 때 다시 돌아와 세간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치 꿈속의 일과 같구나.
見聞如幻翳 三界若空花 聞復翳根除 塵銷覺圓淨
견문여환예 삼계약공화 문복예근제 진소각원정
淨極光通達 寂照含虛空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정극광통달 적조함허공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능엄경』
『능엄경』 6권에 있는 글이다. 『능엄경』의 제 1게라 할 만큼 뜻이 깊고 유명한 게송이다. 깨달은 사람들의 삶이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든, 삶은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감촉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사실들을 알고 또 거기에 따라 필요한 반응과 작용을 하는 일 그 자체를 말한다.
불교는 사람들의 안목에 따라 보고 듣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서 말한다. 첫째, 보통 사람들, 즉 범부의 안목은 보이고 들리는 현상을 그대로 집착(執着)해서 보이고 들리는 현상이 실재(實在)한다고 본다. 둘째, 성문(聲聞)은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에 의존하여, 보이고 들리는 현상들이 공(空)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안다. 셋째, 연각(緣覺)은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모든 현상은 인연(因緣)에 의해 결합된 가유(假有, 가짜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현상(존재, 것, 法, 대상, 경계)가 공(空)한 것임을 안다. 교리적으로는 필경공(畢竟空), 또는 분석공(分析空)의 견해이다. 넷째, 보살(菩薩)은 모든 현상이 현상 그 자체 그대로 공(空)한 것임을, 즉 당체즉공(當體卽空)의 이치를 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空)의 이치를 말한다. 어떤 공(空)을 말하든지 들은 대로 짐작하여 사량(思量) 분별(分別)해서 말하면 성문(聲聞)이 이해한 공(空)을 말함이며, 필경공이나 분석공을 말하면 연각(緣覺)이 이해한 공(空)을 말함이며, 현상 그 자체 당체 그대로가 공(空)한 것임을 말하면 보살이 이해한 공(空)을 말함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나 조사님들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공(空)을 얘기하는 경우가 대분분이다. 하지만 석가모니나 조사의 깨달음의 극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때에는 앞에서 열거한 어떤 공(空)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살림살이, 삶은 공(空)만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영산회상에서 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인 것이 붓다의 살림살이, 삶이다. 중국 오대산에서 무착 문희(無着文喜) 선사가 부엌에서 죽을 끓이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죽 끓이는 솥 위에 나타나자 주걱으로 문수보살을 후려친 것이 무착 선사의 살림살이, 삶이다. 임제(臨濟) 스님이 스승인 황벽(黃蘗)스님에게 불법의 대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황벽스님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팬 것이 황벽선사의 살림살이, 삶이다. 할하며 소리치는 거나, 몽둥이로 두둘겨패는 거나, 손가락하나를 세워 보이는 거 등등의 법(法)을 거량해 보이는 일이 곧 그들의 살림살이, 삶이며 설법(법문)이다. 이와같이 하는 설법(說法)이 선사(禪師)들이 하는 법문(法門)이다. 선사들이 하는 설법은 성문 연각 보살이 하는 설법과는 다르다.
보이는 모양, 들리는 소리, 맡아지는 냄새, 보아지는 맛, 느껴지는 감촉, 일어나는 생각은 모두가 환영(幻影)이며 삼계(이 세상, 욕계 색계 무색계)는 실재하지 않는 허공(虛空)에 핀 꽃과 같으니, 분별 망상 번뇌가 소멸된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다고 하는 『능엄경』의 가르침은 보살의 안목으로 볼 때 모든 존재(현상, 것, 法, 대상, 경계)가 그대로 공(空)하다는 당체즉공(當體卽空)을 말하는 것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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