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3·1운동 100돌, 여전히 절실한 민주주의와 평화

장백산-1 2019. 3. 3. 14:33

[사설] 3·1운동 100돌, 여전히 절실한 민주주의와 평화

입력 2019.03.01. 18:56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2월 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1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정부 기념식을 비롯해 전국에서 각계의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미래 100년의 큰 밑그림을 담은 ‘신한반도체제’의 구상을 제시했다. 그 핵심인 ‘평화협력공동체’와 ‘경제협력공동체’는 큰 방향에서 3·1운동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라 평가할 만하다.

100년 전 3·1운동은 당시 한반도 인구의 10%인 200여만명이 참가한, 규모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7500여명이 살해되고 1만6000여명이 다쳤으며, 4만6000여명이 체포·구금됐다. 그러나 3·1운동을 진정 빛나게 하는 것은 그 감연한 희생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독립을 넘어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의 가치 실현을 선언한 인류 정신사의 일대 사건이라는 데 있다. 그 정신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 전문뿐 아니라 지금의 헌법 전문 첫 문장에도 뚜렷이 새겨져 있다.

‘독립선언서’에는 오늘날 읽더라도 놀라울 만큼 근대의 정신적 이상과 가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일본 제국주의나 조선의 군주가 아닌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시하고 있고, 민족 독립의 의미를 동양을 넘어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이룰 발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에 의해 쓰였지만, 3·1운동의 실질적 주역인 민중들은 그 정신을 각자의 다양한 생각과 동기에 담아 “대한 독립 만세”로 표현했다. 운동의 전개와 확산 과정도 민주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그 정신을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그저 거리 만세운동을 형식적으로 재현하는 정도에 그쳐온 게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정신적 뿌리를 스스로 박제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식민지 민중의 저항운동을 기리는 날 거리에서 미국 국기를 흔드는 기이한 풍경이 반복해서 연출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다고만 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많은 중대 과제들도 3·1운동 정신을 되새기도록 요구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망언을 쏟아내는 등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나 난민과 소수자를 혐오하는 행위는 3·1운동 정신에 정확히 반한다. 무엇보다 분단체제와 이에 따른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 불안은 식민지 피지배자로서 세계 평화를 염원했던 100년 전 선조들의 높은 이상과 의지를 숙연하게 떠올리도록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미래지향적인 친일 잔재 청산”을 중요하게 강조했다. 주요 국면마다 우리 현대사를 퇴행시키고, 3·1운동 정신을 미완의 상태에 머물게 한 장본인이 친일 잔재 세력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언급이다. ‘신한반도체제’의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가려면 친일 잔재 청산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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