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비역 대령의 편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조문 논란을 보면서"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입력 2018.12.16. 08:02 수정 2018.12.16. 11:36
[경향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으로 많은 고초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장례식이 지난 11일 끝났지만 뒷말이 계속되고 있다. 주로 현역 군인들이 정권 눈치를 봐 한 사람도 빈소에 조문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열린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안장식에는 현역 준장인 이태명 육군 헌병 실장이 현역 장성 대표로 참석했다. 육군에서는 장성 출신이 사망하면 군 대표로 현역 장군이 돌아가며 조문하는 관행이 있다. 이 준장은 이 전 사령관이 육군 53사단장이었을 때 사단 헌병부대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 시절 부하였던 현직 안보지원사령부 영관 장교도 여러명 조문했다고 한다. 예비역 장성 ㄱ씨는 “이 전 사령관 빈소에 현역 군인들이 정권 눈치를 봐서 조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매도”라며 “만약 정권 눈치를 보고 조문을 기피했다고 핑계를 댔다면 군인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군 정보당국이 조문자가 누구인지를 감시해서 현역들이 조문을 기피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안보지원사는 “누가 (이 전 사령관 빈소에) 조문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며 “안보지원사는 과거 기무사가 하던 음성적 관행을 하는 조직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같은 조문 논란을 보고 최근 김 모 예비역 대령(육사 41기)이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10월 말 전역한 김 전 대령은 이 전 사령관 빈소에 현역 군인이 조문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일부 예비역들에 대해 질타했다. 보수·우익 정권시절 자신들이 현역 시절 했던 모습을 되새겨보라는 취지였다.
김 전 대령은 야전부대 연대장으로 근무하면서 2009년 5월 29일 군 통수권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했던 일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재수 전 사령관의 조문과 관련해 군인의 의리 등을 말하는 보수언론 기사를 보고 기무부대와 많은 악연을 가졌던 당사자로서 자신이 겪은 일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딸에게 보냈던 편지를 소개했다.
·육사생도 신조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
·육사는 세명의 대통령, 수십명의 장관과 총리를 배출
·현대사에서 험난한 길을 걸은 사람들은 육사출신들에 대항하여 목숨걸고 싸우며
투옥되고 죽임을 당한 운동권 사람들
■ 딸에게 보낸 편지
OO야. 아빠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우리 가족에게는 공지된 이 사실이 약간 문제가 되었다. 난,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으로 아빠의 심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국민장이 5월 29일로 결정되었다. 난, 니가 5월 23일 새벽 7시가 좀 못된 시각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한 사람을 데리고 네가 사는 곳에 와서 아빠를 만나려고 했다는 니 꿈 얘기를 듣고 집을 나서서 9시쯤에 부대 일직사령의 전화보고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등산중 추락, 사망 추정... 이 날의 충격은 지금껏 선명하다.
5월 29일 아침에 사무실에 앉아서 대통령의 유해를 운구하는 차량이 봉하마을을 출발하여 서울 경복궁으로 이동하는 것을 시청하다가, 사단 회의에 소집되어 가기 전에 연대 참모중 인사과장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구해다오. 조문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으니 연대장 실에서 참배하겠다. 사진과 향불이면 될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부대에 돌아오니 연대장실에 영정과 촛불, 향이 준비되어 있었고, 작전과장이 나를 수행했다. 작전과장은 당번실 옆에 조그만 빈방이 있으니 그 곳으로 옮겨서 다른 사람들도 참배하고 조문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내가 대답하지 않았다. 난 혼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와 진리를 들고 세상에 나아갔다. 아빠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이 나라에서는 힘이 센 세력과 한 편이 되어야 좀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그렇고, 최근의 현대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힘이 센가, 누가 권력자의 편에 서 있는가? 이것이 판단의 기준이며, 힘이 센 자들이 힘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힘 없는 편에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힘 든 것인가를 깨닫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로 진행된다.
왜,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는가? 자식들을 힘 센자의 편에 세워야만 그 자식들이 밥먹고 할말을 하고 살게 된다는 것을 수백년간 역사에서 보았고 수 십년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 뻔한 상식과 경험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스스로 그 문제해결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육사에서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관생도 신조를 가르친다. 그런데 현대사에서 험난한 길을 걸은 사람들은 육사출신들에 대항하여 목숨걸고 싸우며 투옥되고 죽임을 당한 운동권 사람들이다. 세명의 대통령, 수십명의 장관과 총리를 배출하고, 장군의 대부분을 탄생시킨 육사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현실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비현실이며, 그 가치는 완전하게 전도되고 조롱당해왔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한명은 죽었고 두명은 감옥에 갔다. 그 들은 육사가 만든 이상이며 모두가 추구하는 모범 자체였다. 난, 그들의 불행한 삶이 군인들에게 어떤 자극을 주고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군인들은 힘 센자의 편에 서려는 의지로 가득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그 열망이 남보다 더한 사람들이라는 내 생각이다.
노무현의 존재를 보고서, 이제껏 힘센자들이 느낀 심정은 이질감이면서 불편함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모욕이었다. 군의 장군들이 전역하여 만드는 성우회는 집단적으로 노무현을 무시하고 대들었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당신들이 고작 했던 일이 남의 나라의 지휘를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것이냐며 ‘부끄러운 줄 알라’는 호통을 들었다.
실상, 우리 역사에서 국방비를 가장 많이 투입한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이다. 그가 국방비를 줄이면서, 자주 국방을 주장했다면 안보의 속성을 무시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는 독립국가의 안보에는 감당해야 할 부담이 명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방향으로 군인들이 책임감을 가질 것을 명령한 군 통수권자였으며 국가 예산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런 그를 존경하는 아빠는 그가 죽은 순간, 그를 애도하고 그에게 미안하고 그가 짊어졌던 그 무게를 덜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울었다.
국민장이 진행되던 날, 조기를 게양하라는 단순한 지시를 받았고 아빠 혼자서 그에게 절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나는 아빠처럼 그를 추모하고 싶은 부하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아빠 사무실의 영정과 촛불을 당번실 옆으로 옮기고 조문하고자 하는 군인들에게 자율적인 참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공지토록 했다.
6월 5일 오후에 사단장의 전화를 받았다. 사단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오후 4시 10분쯤 사단장실에서 만나 나눈 대화는 대략 이런 것이다.
사단장은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정치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이고···. 난, 노무현 대통령을 아주 존경하고 좋아하며 국민장을 치루는 날 그를 조문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사단장은 정치적 행위를 하려거든 군복을 벗고 하라고 했고···. 난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판단은 따져볼 것들이 있으며, 이런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더 이상 서로 할 말이 없었고···. 아빠의 행위는 육해공을 통틀어서 단 한군데만 일어난 일이며 청와대에도 보고 되었다고 한다.
OO야. 이 나라에는 노무현이 수 천명이 더 필요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때 현역 장성 조문 없어
·군인이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 게 문제
·보수 · 우익에 충성하는 게 정치 중립 아니다
■보수정권에서의 조문 댓가
김 전 대령은 노 전 대통령 조문 이후 군 생활은 불이익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특전사령부에도 근무했고, 미 중부사령부 파견근무도 했던 그는 해외파병 부대장 지원에서는 명백한 이유도 없이 탈락했다. 이후 보직도 받지 못하고 대기근무만 1년 가량 하다가 급기야 부대 회식자리에서 육사 후배이기도 한 기무부대장(중령)으로부터 “넌 사상이 불순하다”며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관 폭행에다 군기문란에 해당하는 중대 사안이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 기무부대장을 군 수사기관에 고발했고, 이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보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현역 장군들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단 한명도 조문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때는 왜 보수언론이 침묵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군인이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게 문제지, 보수·우익에 충성하는 게 정치중립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도 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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