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준 중앙일보 전 편집국장 "전혀 기억 없다",
전직 데스크들 "본인이 발굴한 팩트였는데…"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2009년 용산참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기사를 보도했던 전직 중앙일보 기자 페이스북 반성 글에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데스크들은 금시초문 또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해당 글은 본인이 작성한 과거 중앙일보 보도에 감상과 맥락을 설명한 고백 글이다. 페이스북 게시 이후 당시 중앙일보가 팩트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비난 여론이 가열됐다.
2007년 말 중앙일보에 입사했다가 퇴사한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으라는 데스크 지시에 취재가 시작됐다면서 "그 집(노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씨 집)이 그다지 비싼 집이 아니고, 그 자동차가 그렇게 비싼 차가 아니며, 그 골프장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 건 저도 알고 저의 데스크들도 모두 알았지만 어찌됐든 기사는 그렇게 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쓴 것들과 제가 쓰지 않은 것들로 세상의 모든 비난을 들었다"며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진보는 부패의 크기가 아니라, 부패했다는 사실 자체로 무너진다.' 그 말들이 우리를 움직였다. 조직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다른 이념과 지향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저는 너무 많은 피를 손에 묻혔다"고 고백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온 국민의 우상을 제 손으로 무너뜨렸고, 매일 매순간, 그의 죽음을 인식하며 살고 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제 손에 묻은 피를 다 닦아내지 못할 것을 안다"며 "저는 역사의 죄인이며, 그 트라우마를 안고 어떤 방법으로든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진주 전 기자는 2009년 4월10일자 4면 "노건호, 미국 유학 중 월세 3600달러 고급주택가서 살아"라는 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미국 유학 중이던 지난해 봄 실리콘밸리의 고급주택으로 이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노건호씨 주변을 취재해 △노씨가 폴크스바겐 투아렉, 현대 그랜저TG 등차량을 갖고 있었다는 점 △노씨가 다니는 골프장 그린피가120달러 이상이었다는 점 등을 전언으로 보도했다.
이 전 기자는 이 밖에도 "노건호씨 '미국 벤처에 1만 달러 투자했다'"(2009년 4월9일자 1면), "'500만 달러 중 일부 노건호 외삼촌 회사로 들어갔다'"(2009년 4월17일 3면), "'박연차가 선물한 1억짜리 시계 아내가 몰래 보관하다 버렸다'"(2009년 5월14일자 29면) 등기사를 동료 기자들과 함께 보도했다.
이 전 기자 페이스북 글은 온라인에서 큰 파장을 낳았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거짓기사를 쓰도록 조정한 사람들을 수사해주세요"라는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 전 기자는 페이스북에 2009년 용산 참사 보도에 대해서도 "용산의 정보를 받은 것은 한 형사로부터였다"며 "저는 사람의 목숨 값을 돈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게 어느 쪽에서 어떤 목적으로 생산된 정보인지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그때 저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조직은 스트레이트(기사)를 원했다"며 "데스크가 기죽어 있는 게 싫었다. 저를 신뢰하는 그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밝혔다. 이 전 기자는 중앙일보 2009년 3월16일자 4면에 "정부 '용산 유족에 위로금 주겠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그는 '단독 입수한 경찰 문건'을 인용해 용산구청과 경찰이 당시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2억2000만원 위로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 전 기자는 기사에서 "정부는 이번 제안으로 협상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지만 당시 유족은 경찰의 강제진압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중앙일보 보도에 당시 용산 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는 논평을 내어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이며 "문건에 나타난 경찰 측 대응은 전형적인 '내부 갈라치기' 수법"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2008~2009년 편집국장을 지낸 김교준 전 중앙일보 대표이사 겸 발행인은 8일 통화에서 "노건호씨의 자동차나 골프장 이야기는 지금 처음 듣는다"며 "내가 편집국장을 한 것은 맞지만 (이진주씨 보도는) 전혀 기억에 없다. 기억이 나거나 내가 관여한 부분이 있다고 해야 코멘트할 수 있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중앙일보 데스크를 맡았던 기자들은 이 전 기자 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007년 연말 입사한 어린 연차 기자에게 '왜곡 보도'를 취재 지시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된다는 것.
중앙일보 시경캡을 맡은 적 있는 김준술현 JTBC 주말에디터는 "노건호씨나 용산 관련 기사 모두 이진주씨가 직접 발굴한 팩트나 증언들로 보도한 결과물"이라며 "노씨 관련 보도들도 이씨가 직접 취재원을 확보해 보도한 것이지 그가 취재한 결과물을 데스크가 왜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2008년 당시 중앙일보 사회에디터로 활동했던 김종혁 JTBC 보도제작부문 대표도 "이씨페이스북이 보도되면서 중앙일보가 마치 악의적으로 기사를 사주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려보도가 이뤄진 것처럼 비쳐지는 면이 있는데 납득하기 어렵다"며 "1~2년차 기자에게 팩트를 왜곡하라고 데스크가 지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중앙일보 측은 과거 동료였던 이씨에게 법적 대응할지는 고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회사명예가 훼손될 소지가 있지만 법적 대응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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