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취어상 여여부동 (不取於相 如如不動) / 춘식스님 법문
금강경 사구게 중에 "불취어상 여여부동 (不取於相 如如不動)이라는 말이 있는데
즉 바깥의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느니라" 했거든.
바깥 세상이 꿈인데 꿈에 왜 집착을 해? 그것이 불취어상(不取於相)이야.
세상이 꿈이니까 자연히 꿈을 놓아버리지. 그것이 여여부동( 如如不動)이야.
꿈에 집착하지 않고 꿈을 놓아버려서 꿈인 세상이 어디갔어?
지금 여기 있잖아, 놓을 데가 따로 없어....
옛날에 양엄존자가 조주스님을 찾아와서
"한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라고 물었거든
"놓아버려라" 라고 조주스님이 대답하니까
"한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 하십니까?" 다시 물었거든
"놓지 않으려거든 가져가거라" 라고 조주스님이 대답했어.
여기 문답에서 '놓아버려라' 하는 방편의 말에 속아넘어가 빠지면 않돼.
놓아도 '나'고 놓지 않아도 '나'야. 이 사실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짊어질 수도 없고 놓아버릴 수도 없는 거야. 그 '나'가 자기(自己)야.
짊어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놓아버릴 수도 없는 '나', 볼래야 볼 수가 없고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나', 자기(自己), 그걸 깨달아야지만 다시 매(昧)하지도 않고
다시 증득(證得)할 필요도 없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방편(方便)으로 말씀 하신 팔만사천 가지의 법문(法門)이 전부 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 한 사람의 성불, 본래 부처인 자기(自己)을 확인하기 위한 가르침이라는 것,
다른 누구의 성불(成佛), 다른 누구의 깨달음도 참된 성불(成佛), 즉 참된 깨달음이 아니라 오직 '나',
본래 이미 부처(佛), 본래 이미 깨달은 자인 '나'를 확인할 때가 참 부처, 자기(自己)가 드러나는 것이오,
불교가 성립되는 이야기를 이른바 '밥 먹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내가 직접 밥을 먹어보기 전에는 결코 밥을 먹어보았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법문 정리 by 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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