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만물은 결코 스스로 성립되는 적이 없다
이제 여러분은 <우주 삼라만상이 오직 '마음일'뿐(만법유식, 萬法唯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냈습니다. 만법유식(萬法唯識) 이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 입니다. 의식이 이 경지에 이르면, 이른바 '진여본체'(眞如本體)라는 말도 한갓 방편(方便)으로 써먹은 '텅~빈 말'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산하대지 삼라만상은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을 껴앉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허공(虛空)도, 또 찰칵 찰칵 냉정하게 흘러만 가는 '시간'도, 이 모두가 몽땅 '마음' 하나 가운데로 녹아사라집니다.
기신론소(起信論疎)에 『온갖 법은 결코 법이 스스로 성립되는 적이 없고, 오직 '마음'만으로 굴려질 뿐이다. 이 말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 인하여 성립되는 줄 알겠거늘, '법'이 어찌 '마음'이 아니겠는가.』라고 했어요.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입니까? '한 생각'으로 마음에서 우주를 능히 펼쳐내는가 하면, '한 생각'으로 마음에서 우주를 몽땅 거두어들여서 무(無)로 공(空)으로 돌리기도 하고, 이것이 바로 <마음(心), 즉 부처(佛)'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진실(眞實)은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라는 말 그대로 절대(絶對)한 '개념의 감옥'에 철저히 갇혀서 살아가는 범부들에게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 아닙니까?
범부의 안목에서 보면 차라리「'물질(物質)'만이 유일한 실재(實在)요, 물질만이 확실하게 믿고 의지할 만한 존재이며, '마음'이란 이 물질세계에서 가물거리며 항상 요사스럽게 죽끓듯히 변덕부리고 변하는 전혀 믿지 못할 존재다」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자들의 말이 훨씬 친숙하겠지요. 그러나 조금만 잘 생각해 보면, 이들 유물론자들의 그와 같은 주장도 결국엔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궁리해낸 주장이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유물론자들의 주장대로, 그들이 주장하는 '유물론'이라는 논리도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그들 자신이 목청 높여 강조하고 있는 셈이니, 참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20세기 초엽에 들어서면서 현대과학은 '물질'에 대한 철저한 구명(究明) 끝에 '물질'이 바로 다름 아닌, 사람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순전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불자들은 '부처(佛)'라는 방편(方便)의 이름에 습관적으로 따라붙는 미신적인 선입견을 철저히 불식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건 비단 불자들만의 일이 아닙니다만, ― '부처(佛)'란 결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선 분명히 깨우쳐야만합니다 ― '부처(佛)'란 산스크리트어로는 '붓다'(Buddha), 우리말로는 '깨달음의 본체'(覺體), '신령한 깨달음의 성품'(영각성, 靈覺性)으로 새깁니다.
'신령한 깨달음의 성품'(영각성, 靈覺性)이 '마음의 성품'(心性)이예요. 따라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마음'이 있는 생령(生靈)이면 누구나 무엇이나 다 '부처(佛)'입니다. 따라서 '부처(佛)'는 불자들이 믿고 받들어야 할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바로 '부처(佛)'입니다. 이 몸을 '나'라고 알고, 또 이렇게 알음알이를 굴리면서 생각하는 이것을 '마음'이라고 알고, 더우면 덥다고 알고, 추우면 춥다고 아는, '앎의 성품(知性)'이 바로 '부처(佛)'입니다. 그러니까 '마음(心)'이 곧 그대로 '부처(佛)'고, '마음'의 지각작용이 '불사'(佛事), 즉 '부처(佛)가'하는 일인 거예요.
어느 것 하나인들 마음(心), 즉 부처(佛)가 아닌 예외가 있겠어요? 마음(心), 즉 부처(佛)는 때로는 어리석기도 하고, 때로는 지혜롭기도 하고, 때로는 거칠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럽기도 하고, 때로는 성인의 모습으로 나투는가 하면, 때로는 범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산과 강과 대지와 같은 색각이 없는 사물의 모습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꼬물꼬물하는 미물에서부터 인간(人間)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있는 온갖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또 이것들을 하나 하나 따로따로 나타내기도 하고, 한꺼번에 나투기도 하고, 마음(心), 즉 부처(佛)는 다만 이렇게 시절(時節)과 인연(因緣)을 따르면서 <무수히 많은 요술 같은 허깨비 같은 몸인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나타내지만, 막상 마음(心), 즉 부처(佛) 그 자체는 도무지 '정해진 성품'도 없고, '정해진 작용'도 없는 '이것'이 바로 마음(心), 즉'부처(佛)'입니다.
그래서 '붓다'는「'부처(佛)의 법'(佛法)은 정한 법(法)이 없다」고 말한 겁니다. 화엄경에서 마음(心), 부처(佛), 중생(衆生) 이 셋은 차별이 없이 같다(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고 말한 겁니다. '마음(心)' 즉 부처(佛)는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사물'을 관찰하고 지각(知覺)하는 것인 줄로만 철석같이 잘못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음(心), 부처(佛), 중생(衆生) 이 셋은 차별이 없이 같다는 말은 실로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나 사실은 '마음'이 능히 일체 모든 것을 지어낸다」(一切唯心造)고 한 이 말이 꿈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실상(實相 : 진실한 실제의 모습)이라고 철석같이 잘못믿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꿈이고 허깨비인 겁니다.
그러므로 「'꿈'과 같다」는 말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이 지어낸 꿈, 허깨비임을 알지 못하고>, 저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인 줄로 오인해서 중생들이 꿈, 허깨비인 이 세상 모든 것에 집착을 일으킬까봐 하는 말이지, 결코 꿈, 허깨비인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털어버리라는 말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인들 마음(心), 즉 부처(佛)가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고, 이 세상 어느 것 하나인들 마음(心), 즉 부처(佛) 아니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공(誌公) 화상은 다음과 같이 노래를 했습니다.
'무한하고 광활한 도(道), 마음(心), 부처(佛), 진리, 법(法), 깨달음은 항상 눈앞, 목전,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건만 비록 도(道), 마음(心), 부처(佛), 진리, 법(法), 깨달음이 눈앞에 있다 해도 그것을 보기가 어렵구나. 도(道), 마음(心), 부처(佛), 진리, 법(法), 깨달음의 진정한 '본체'(本體)를 깨닫고자 한다면 '빛깔', '소리', '말'을 없애려 애쓰지 말라. '말'이 그대로 바로 '무한한 도(道), 마음(心), 부처(佛), 진리, 법(法), 깨달음이니 굳이 분별 망상 번뇌를 없애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분별 망상 번뇌가 본래 텅~비고 고요한 무한한 도(道), 마음(心), 부처(佛), 진리, 법(法), 깨달음인데 다만 '허망한 생각들'이 서로서로 얽힐 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메아리 같은 것이기에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쁜지를 나는 알지 못하노라.
- 대우거사의 <그 곳엔 부처도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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