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 >
" '쿨'하게 살면 괴로움도 뒤탈도 없어..
여행 온 것처럼 놀다 가시라"
김기현 기자 입력 2020.07.17. 14:31 수정 2020.07.17. 14:43
법상 스님이 지난 14일 부산 수영구 금련사 경내를 걸으면서 멀리 하늘을 보고 명상을 하고 있다. 스님은 생각을 잠시 멈추는 명상은 설거지, 청소, 보행 중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 ‘마음 치유’ 유튜브 스타 법상스님
코로나가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나의 생각이 괴로움으로 인식할 뿐
‘다 같이 한번 겪자’ 자세 필요
깨달음 얻으면 신통력 생긴다? 그냥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죠
내면의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
마음 비우면 집착이 없어지고 자연스레 더 큰힘 발휘하게돼
‘안되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 두려움 사라져 매사 최선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금련사 주지인 법상스님은 유튜브 ‘마음치유’ 분야 스타다. 그가 올린 법문 동영상 410여 개가 최대 32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영상에는 ‘스님 덕분에 행복을 찾았다’ ‘감동이다’ 등 호평 일색의 댓글이 1개당 200여 개까지 달린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더욱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스님의 법문을 통해 많은 위안을 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20년 7월 14일 금련사에서 법상스님을 만나 코로나19 시대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금련사는 상당히 큰 사찰로 곳곳에 아기자기한 꽃이 만발해 있다. 학자풍의 스님은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미성을 지닌 그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명쾌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인기 비결에 대해 “불교는 인간의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소멸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실제 겪는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각종 경전과 역대 고승들의 ‘선어록’ 등 오래된 지혜를 적절히 접목해 괴로움과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위기로 서민, 자영업자 등 국민 전체가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닥친 어려움에 공감하지만 절대 외부적인 조건이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코로나19를 괴로움으로 인식할 뿐이죠. 우리 인생은 파동처럼 즐거움과 괴로움이 연속적으로 오갑니다. 낮·밤과 4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 행복할 수는 없죠. 태어난 사람은 모두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승승장구할수록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잘나갔던 시절이나 상황이 나은 다른 사람과 계속 비교하니 괴로움은 더 커집니다. 그러나 인도, 네팔 등을 가보면 밥 한 끼를 먹지 못해 죽어가는 어린이도 많습니다. 비교·분별하는 마음을 없애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불행보다 받아들이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이 힘든 시기를 다 같이 한번 겪어 주자’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절망과 괴로움이 나중에 더 큰 성공과 성취를 위한 발심(發心)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경에서 ‘번뇌가 곧 보리(菩提·깨달음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결국 마음가짐이 문제인 건가요.
“불교 수행의 핵심은 불이중도(不二中道)입니다. 나와 세상이 모두 하나이고,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어 삼라만상의 우주가 있고, 내 마음속에서 세상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좋다’ ‘나쁘다’ 등 항상 둘로 나누죠. 좋아하는 것이 안 되면 괴롭고, 싫어하는 것을 밀쳐내지 못하면 또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만드는 것 자체가 허상이에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헛된 비교·분별심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비우고 내려놓는 방법은 배울 기회가 없었죠. 자녀가 학교 시험에서 80점을 받아오면 ‘평균이 몇 점인데’ ‘그래서 몇 등인데’라고 묻습니다.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삶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허용하면 됩니다. 이게 바로 깨달음(見性)이죠. 그래서 세계 3대 생불(生佛)로 불렸던 숭산 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일반 중생들은 실천이 잘 안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한 명상법을 알려주십시오.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명상의 핵심은 지(止), 관(觀)이에요. 그냥 묵연히 생각을 잠깐 멈추고 잡념이 일어나더라도 왜곡해서 해석하지 않으면 됩니다. 잡념을 없애려고 싸우면 안 됩니다. 그대로 지켜보고 함께 있어 주면 사라지죠. ‘알아차림’ ‘지켜보기’ ‘마음 챙김’ ‘받아들임’ 등은 모두 같은 말로 분별·망상심의 괴로움을 없애는 요소예요. 모든 것을 멈추고 가만히 있으면 호흡만 남죠. 내가 있는 시간, 공간을 생각하지 말고 이 호흡만 바라봅니다.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 등의 단어 하나만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설거지, 청소, 보행 중에도 할 수 있어요.”
―깨달음에 대해 설명할 때 꿈에 비유한다고 들었습니다.
“꿈속에서도 내가 있고, 상대방이 있고 온갖 희로애락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깨고 보면 아무것도 없죠. 등장 인물까지 다 내가 만든 것입니다. 생시도 각자가 꾸는 꿈과 같습니다. 자기만의 필터, 색안경으로 걸러서 내가 해석한 이미지로만 세상을 보게 됩니다. 같이 사는 남편, 아내도 서로의 이미지만으로 해석해 평생을 살기도 하죠. 과거, 미래도 모두 꿈처럼 생각 속에만 있는 것입니다. 실제는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뿐입니다.”
―깨달으면 어떻게 됩니까.
“신통력이 일부 생긴다든지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냥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게 되죠. 내면의 괴로움이 사라져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견성은 고행을 거쳐야 하는 고승들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도 평상심과 일상생활이 도(道)라고 했습니다. 내가 만든 망상을 없애면 ‘그냥 일없는 한가한 도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베풀고, 없으면 쉬는 사람이에요. 생각은 필요할 때 잠깐씩만 적절하게 쓰고 본연의 ‘참나’ ‘불성(佛性)’대로 살게 됩니다.”
―삶의 자세가 성공과 성취와는 관계없이 너무 소극적인 건 아닌가 싶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마음을 비우면 더 큰 열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집착의 사사로움이 없어지고 삶의 심각함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일을 가볍게 할 수 있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오히려 생각 너머의 ‘직관’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위대한 발견은 연구할 때가 아니라 얕은 잠을 잘 때나 명상, 산책 중에 나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부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학자들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일을 한 인물로 부처님을 꼽습니다. 부처님은 그 넓은 인도 땅을 걸어 다니면서 당시 16개 나라의 왕에게 설법했고, 그 가르침대로 나라가 발전했습니다.”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집착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란 명구가 있습니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죠. 여기서 ‘머무는 바’란 집착과 분별심을 뜻합니다. 집착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일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가 아니라 집착 없이 원해야 이뤄집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되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요즘 말로 ‘쿨’하게 살면 괴로움도 없고, 뒤탈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겉으로 봐도 멋있고 실제 이룬 것도 훨씬 많습니다.”
―요즘 한국 정치·사회는 보수·진보 갈등이 심합니다. 이것도 집착 때문일까요.
“똑같은 인물과 정책을 두고 너무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나만이 절대 옳다’는 관념과 진영논리에 집착합니다. 이러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균형 감각이 사라집니다. 요즘 정보가 너무 많고 SNS의 범람도 문제예요. 인터넷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서 보니 아집이 더 강해집니다.”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요.
“화가 나서 폭발하면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쳐 더 큰 갈등이 시작되고, 삭여서 내 속에서 계속 키우면 화병 걸려 죽습니다. 두 가지 다 피해가 너무 크죠. 화가 나면 화를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잠시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죠. 실천하는 방법으로 화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병원에서 환자의 통증을 없애는 방법으로 통증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 세게 하고 관찰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 좋은 예죠.”
―불교를 통해 인생을 사는 지혜를 알려주십시오.
“일진법계(一眞法界), 촉목보리(觸目菩提), 입처개진(立處皆眞), 유희삼매(遊戱三昧)라고 했습니다. 삶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전하고 내 삶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로서 옵니다. 필요한 일만이 진리로서 그때에 그만큼의 크기로 찾아옵니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가 나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옵니다. 이 세상은 그냥 주어진 삶에 따라 여행 온 것처럼 놀다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법신불이에요. 가볍게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부산 = 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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