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그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장백산-1 2020. 12. 1. 13:11

성인들의 법문, '그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스리랑카에 사는 한 위대한 신비가가 죽음을 맞이하는 임종중이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임박한 임종에  그 사람 집에 모였다. 누워있는 그 신비가가 눈을 떴다. 이제 몇 번만 더 숨을 쉬면 그는 이 세상을 작별하고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싶어 했다. 드디어 그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평생 동안 그대들에게 지복, 황홀경, 명상을 가르쳤다. 이제 나는 내가 왔던 곳으로 간다. 이 세상에 나는 더 이상 살지 못한다. 그대들은 내 가르침을 들어왔는데도, 내 가르침을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내 가르침을 늘 뒤로 미뤄왔다. 하지만 내가 죽는 마당에 이제는 그대들이 내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미루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나와 함께 갈 사람이 있는가?”라고 말하자 모두가 침묵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40년 동안 이 사람의 제자였으니 이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는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방 뒤쪽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래, 적어도 한 명은 용기가 있군.’이라고 신비가는 생각했다.

그런데 손을 든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선 제가 일어난 이유를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손만 든 것입니다. 스승님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 세상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오늘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많습니다. 제 집에 손님이 와 있고, 제 어린 아들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어서, 저는 이런 날에 저 세상으로 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저 세상으로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언젠가 저는 그곳에 가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그 방법을 다시 가르쳐주실 수 있다면... 평생 동안 가르쳐 오신 걸 알지만, 한번만 더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저 세상에 도달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하지만 제가 지금 당장 준비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세요. 저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만약 '그때'가 올 것을 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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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이야기는 불쌍한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아니,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적절한 '그때', 별들이 조합을 이룰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점성가에게 물어보고, 손금을 보고 점을 치러 점술가를 찾아가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아본다.

그러나 '내일'은 오지 않는다. '내일'은 온 적도 없다. '내일'은 단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뒤로 미루는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환상에 불과하다. 모든 일은 항상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현재 오늘 일어난다.

올바를 종교나 올바른 교육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살도록 가르치고,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죽음이 모든 불행을 멈추어줄 때까지 불행해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흥겹게 춤추고  죽음을 기뻐하고 애정 어린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라.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은, 마치 이미 낙원에 살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는 죽음이 그 무엇도 그 사람으로부터 빼앗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곳'이 낙원이며, 다른 곳 다른 때에는 낙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도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사랑이라는 존재가 되는 데에는 어떤 이론 규칙도 필요 없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좀 더 의식이 깨어있고, 좀 더 의식에 주의를 기울이고, 좀 더 의식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진정한 ‘이해’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종교나 교육은 진정한 종교나 교육이 아니다.

 
오쇼의 <바디 마인드 밸런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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