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神聖)한 존재의 순수(純粹)한 지성(知性)
생각은 모두가 외부에서 빌린 것이다. 모든 생각은 타인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생각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진정으로 자기 것이라고 여겨지는 생각이나 독자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생각을 찾을 수 있는가? 생각 모두가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다. 생각들의 근원(根源)이 어디인지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들 모두가 타인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마음은 컴퓨터처럼 작용을 한다. 컴퓨터가 해답을 내놓으려면 그 전에 컴퓨터에 해당 자료를 입력해야 한다.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야 비로소 컴퓨터는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이같은 기능이 마음의 기능이다.
컴퓨터는 기계인 반면 마음은 바이오컴퓨터(biocomputer, 살아서 생명이 있는 컴퓨터)다. 마음은 온갖 자료, 온갖 지식, 온갖 정보를 수집한다. 어떤 의문이 떠오르면 마음은 이미 수집된 내용, 즉 자료, 지식, 정보를 토대로 해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마음이 내놓는 해답은 진정한 해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내놓는 해답은 이미 사라져버린 과거로부터 나온 환상(幻想)과 같은 내용물에 불과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해(理解)란 무엇인가? 이해는 순수(純粹)한 지성(知性)이다. 이 순수한 지성은 본래부터 그대의 것이다. 사람들마다 누구나 이런 순수한 지성(知性)을 갖고 태어났다. 아무도 그대에게 순수한 지성(知性)을 줄 수는 없다. 누구나 누구에게 지식(知識)은 줄 수 있지만 순수한 지성(知性)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純粹)한 지성(知性)은 그대의 고유한 예리함이다.
명상가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예리하고 분명하게 만든다. 명상가는 명상을 통해 남에게서 빌려온 지식(知識)들을 버리고 자신의 존재인 순수(純粹)한 지성(知性)을 회복한다. 존재의 본래면목, 존재의 진면목, 존재의 순진무구함, 존재의 신성(神聖)함, 존재의 순수(純粹)한 지성(知性)이 명상을 통해 회복된다.
사람들이 신성(神聖)한 존재의 순수(純粹)한 지성(知性)을 통해 행동할 때 그 행동은 순수(純粹)한 지성(知性)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때 전적으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라는 궁극의 자리에 대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라는 궁극의 자리에 대응하는 것은 상황의 도전에서 기인한 것이지, 과거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 오쇼의 <떠도는 자의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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