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비움의 지혜 - 법상스님
[오대산 적멸보궁이 올려다 보이는 겨울숲에서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겨울숲의 또다른 아름다움이 내 안으로 포근히 들어와 안깁니다.]
한여름 짙은 녹음으로 화사한 꽃과 열매를 틔우던 산속 숲도
단풍으로 막바지 제 몫을 해내고는 후두둑 후두둑 다 떨어져버렸다.
산속 숲은 또 다시 침묵의 시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껏 피어오르던 숲은 이제 모든 집착과 욕망을 다 떨쳐버리고
적막하고 무거운 침묵으로 내적인 자기 수련의 길을 걷는다.
한겨울 숲의 침묵이 없다면 봄이 오더라도 새로운 꽃을 피워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삶의 여정에서 한참 물이 오르며 꽃망울을 틔우고 훨훨 날갯짓할 때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따금씩 침묵으로 내면을 비추는 내적인 자기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창 잘 나갈 때가 있으면 그것을 끝까지 몰아갈 것이 아니라
한번쯤 돌이켜 멈출 줄도,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삶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그래야 안으로 비추는 깊은 침잠을 통해
또 다시 봄이 오면 새로운 생명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지혜는 전진과 소유보다는 멈춤과 비움을 통해서 안으로부터 움트는 것이다.
고요한 겨울 숲의 침묵을 보면서 한 스님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오랜 선방 스님께서 어떻게 인연이 되어 도심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아 살다가
세속적인 시선에서 보면 한창 잘 나가고 명성을 드날릴 때 홀연히 다 놓아버리고
눈 내리는 겨울 숲속으로 걸망 하나 걸머지고 떠나시던 모습이다.
그 스님의 뒷모습은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의 모습이었다.
그 스님의 삶에도 한겨울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고(무상/無常),
인연 따라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무아/無我)데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앞만 보고 뛰어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때때로 멈추고 비우며,
안으로 묵묵히 침잠할 수 있는 겨울 숲의 침묵과 지혜를 배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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