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3. 코로나바이러스와 웨살리의 교훈 - 하

장백산-1 2022. 2. 19. 01:20

 

3. 코로나바이러스와 웨살리의 교훈 - 하

욕망 절제와 자비심이 전염병 확산 근본 해결책

과도한 소비는 탐욕을 부추기고 인간 스스로와 자연을 파괴
코로나19는 너무 많은 욕심과 너무 적은 자비가 초래한 재앙
욕망 다스리는 절제의 가르침은 현대 병폐에 대한 종합처방

 

                   인도 웨살리 마하바나(대립정사). 사진=남수연 기자

 

웨살리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을 계발하는 사람은 세상을 부유하게 만들고, 세상을 부유하게 만드는 사람은 큰 공덕을 짓는다”라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넷띠빠까라나(Nettippakaraṇa)’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응수한다. “그들은(감각적 욕망을 계발하는 사람과 세상을 부유하게 만드는 사람) 병든 사람들만 많게 만들며, 종기 생긴 사람들만 많게 만들며, 몸에 가시 돋은 사람들만 많게 만든다.” 이처럼 과도한 소비는 탐욕의 구속을 부추기고 무지의 방해를 즐기면서 인간 자신과 자연 대상을 파괴한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지구공동체의 경제적 연결망이 얼마나 좁은지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얼마나 허술하게 조직되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국경이 봉쇄되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모든 교류가 중단되었다. 세계적인 재난은 전쟁이나 지진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라는, 내부적 요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감각적 쾌락에 토대를 둔 웨살리의 에토스(ethos)는 붓다가 가르친 다르마와 어긋났다. 세속적인 풍요로움을 갈구하던 대도시 웨살리는 ‘절대적 진리의 도덕’을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자본주의는 지구적 차원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윤리적 배려와 거버넌스를 외면한 채 자국의 경제적 번영만 추구함으로써 지구공동체 전반의 고통을 악화시키고 있다. 저자는 다시 ‘넷띠빠까라나’의 한 구절을 소환한다. “감각적 쾌락의 탐닉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이렇게 병든 사람들에게는 적정(寂靜)과 통찰력(洞察力)이 치료제이다.” 금욕주의적 관념들은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의 현재 상태와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더 나아가 ‘주의 깊은 삼감’을 통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안내할 수 있다. 욕망의 다스림은 “행위와 정신의 두 측면이 동시에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헌신하는, 특별한 삶의 방식이자 훈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보배경’ 15구는 승가의 금욕주의적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전 것도 다했고 새로운 것 안 생기네. 나중의 생에 대해 집착마음 없다네. 종자도 다했고 원함도 끊어졌네. 등불이 꺼지듯이 현자들은 적정하네. 승가의 이러한 보배로움 수승하니 이러한 진실로 행복하기를!” 승가의 구성원들에게 ‘성장의 욕망(the desire of growth)’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절제의 도덕은 비단 출가 비구나 비구니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일반 재가신자들에게도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다. 성장의 욕망에서 비롯된 질병은 성장의 욕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종합처방세트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웨살리의 이야기는 “왕관의 확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어떻게 나쁜 운명이 도래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방해받지 않는 경제적 번영에 집착한 국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국민과 소통하면서 마스크 쓰기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철저하게 시행한 국가들은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최악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였다. 당시 트럼프행정부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왕관의 확장에 골몰한 나머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웨살리의 사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자 극단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의사당을 점거하려고 했다. 저자는 마치 웨살리에 등장했던 야차들의 유령을 보는 것 같았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가 계속되었다면 세계경제는 그야말로 종말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도덕한 정치권력은 의심의 대상이지만 불·법·승 삼보의 세 가지 보배는 영원한 진리의 표상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정치사회적 질서가 가지고 있는 더 큰 문제들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코로나바이러스는 ‘너무 많은 욕심’과 ‘너무 적은 자비’가 초래한 ‘자연환경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밤낮없이 돌아가는 공장처럼 일한다.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은 오직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할 뿐 욕망의 절제와 같은 붓다의 가르침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거기에는 어떤 자기절제도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성장의 욕망이 빚은 문명사적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붓다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럴 때일수록 욕망의 제어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를 깊이 인식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성장의 욕망을 줄이고 이전보다 더 정직한 삶의 방식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웨살리 사람들은 단맛만 쫓다가 화분(花粉) 속의 꿀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빨아먹은 꿀벌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벌이 꿀을 수집하는 방식을 바꾸어 꽃과 함께 살아야 하듯이 우리도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전환하여 자연과의 공존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다.

저자는 ‘보배경’의 주석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위제비크라마의 경고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넘쳐났고 고열이 덮쳤으며 피로감이 몰려왔다.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고통이 엄습했다. 어느 곳에서도 이슬 한 방울조차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라졌지만 거대 도시는 무지 속에 잠겨 있었다.” 3년째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고 있는 인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저렇게 작금의 상황을 그림 보듯 그대로 예견하고 있을까 싶다. 무분별한 욕망은 웨살리의 재난과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다. 논문의 저자인 알렉산더 맥킨리 교수는 성장의 욕망을 다스리는 절제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자비심이야말로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 관한 그의 불교윤리적 입장은 대부분의 불교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덕론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20호 / 2022년 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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