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4. 있는 그대로 - - 황동규

장백산-1 2022. 2. 21. 21:27

4. 있는 그대로  - - 황동규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그립다
은근슬쩍 쌓이는 성긴 눈 보며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 떠올려
삶 자취, 녹아 없어지는 것 아닌 
‘있는 그대로’ 저장 된다 깨달음


처마에 고드름 주렁주렁 달린 집에서
얼마 전 세상 뜬 친구
선사(禪師)처럼 결가부좌하고
눈 부릅뜨고 앉아 있는 꿈을 꾸다 깼다.
잘려나간 잠, 이어지지 않는다.
거실에 나가 서성댄다.
그에게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서도 풀리지 않을
척진 일 있었던가?
기억 통을 흔들어본다.
무언가 있는 듯 없는 듯,
창밖에선 희끗희끗 눈이 내리고 있다.
아파트의 앙상한 나무들이 두툼한 옷 해 입겠지.
바람이 이따금 옷을 벗겨 다시 속 아리게도 하겠지.
고드름 집 마당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눈앞 식탁에는 새로 등갓 씌운 동그란 불빛
반쯤 식은 허브 차 한 잔.

퍼뜩 정신 차려보니, 아침.
창밖으로 내려다뵈는 아랫동네 아파트 공사판
눈 내리다 마니 더욱 어수선하다.
잠깐 저 크레인들, 젊은 수탉들처럼 목 꼿꼿이 세우고
공사판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네.

가만! 우리도 한때 볏 갓 올린 수탉들처럼
겁 없이 무교동 청진동을 휘젓고 다녔지.
그때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그립다.

있는 그대로?
슬그머니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
꿈 깨기 전 선사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왜 눈 부릅뜨고 있지?
--나는 있는 그대로 죽었어.
--죽은 후엔 바꿀 수 없나?
--잇지 더 있는 그대로로.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문학과지성사, 2020)

황동규 시인의 꿈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나타났다. 죽은 친구는 선사처럼 결가부좌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시인은 잠이 깨어 더 이상 잠들지 못했다. 시인은 생각해본다. ‘죽은 저 친구가 내 꿈에 눈을 부릅뜨고 나타날 정도로 나와 척진 일 있었던가?’

밖에서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눈이 내린다.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성긴 눈’의 이미지를 시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조그만 사랑 노래’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1978])

젊은 시절의 ‘성긴 눈’은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이었는데, 지금은 은근슬쩍 소리 없이 쌓이는 성긴 눈인 듯싶다. 문득 고드름이 유난히 주렁주렁 매달리던 친구의 집을 떠올린다. 그 ‘고드름 집’ 마당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시인은 허브 차 한 잔 마신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날이 밝으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파트 공사판, 수탉들처럼 목 꼿꼿이 세운 크레인들! 시인도 젊은 시절 볏 갓 올린 수탉들처럼 무교동 청진동을 휘젓고 다녔다. 그 시절 그곳에는 김수영 시인도 있었고, 박인환 시인도 있었고, 전봉건 시인도 있었다. 그때 김수영 시인은 황동규 시인을 자주 칭찬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인은 그때 그 시절,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그립다.

‘있는 그대로’란 바로 ‘업식(業識)’이 아닐까? 업(業)은 행위이고, 식(識)은 생각이요 의식이요 마음이다. 어제의 행위와 생각이 오늘에 이어지듯이, 우리가 살았던 자취나 생각들이 죽어서도 ‘있는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 시인은 선사가 된 친구에게 묻는다.

“왜 눈 부릅뜨고 있지?” 선사가 된 친구가 대답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 죽었어.” 라는 말은 아쉬움이 많아 ‘눈 부릅뜨고’ 죽었다는 말일까? ‘눈 부릅뜨고’라는 표현에 선사가 된 친구의 업식(業識)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 시인은 또 묻는다. “죽은 후엔 바꿀 수 없나?” 친구가 대답한다. “있지. 더 ‘있는 그대로’로.”

‘업식(業識)’의 다른 말은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고, ‘있는 그대로’는 그야말로 어김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있는 그대로, 성긴 눈처럼 내리자마자 녹는 것같이 보이지만, 눈의 수분이 증발되었다가도 조건이 맞으면 ‘구름으로’ ‘강물로’ ‘바다로’ 뭉치듯이, 우리의 업식(業識)은 ‘있는 그대로’ 저장된다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닫게 해주는 시이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21호 / 2022년 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