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부처가 소리를 듣는다

장백산-1 2022. 5. 13. 12:22

 

[부산 청사포]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 외치다.

부산 청사포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들숨에 건강, 날숨에 재력' 이라는 나무판에

쓰인  글귀를 보고 혼자서 빵~터져~~^^.....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들을 때 습관적으로 '내가 소리를 듣는다'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내가 있어서 내가 내 귀로 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 진짜 확실합니까?
만약 '내가' 내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진짜 맞다면, 귀를 통해 소리가 들릴 때, 내 마음대로 소리를 
안 들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소리를 듣는 내가 있으니까 내 맘대로 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면 소리가 들려올 때, 내 맘대로 그 소리를 안 들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도 저절로 듣게 됩니다. 내가 있어서 '내가'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듣는 주체인 '나'를 내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내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소리를 듣는 것일까요?
소리를 듣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소리가 들려오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듣는 작용을 하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소리를 '듣는 그 놈', '소리를 듣는 작용'을 하는 그놈이 바로 방편(方便)으로 하는 말인 
자성(自性), 불성(佛性), 본래면목(本來面目),주인공(主人公), 근본성품(根本性品), 본성(本性),
진짜 나, 진성(眞性), 부처(佛) 등의 많은 명칭들입니다.

소리를 들을 뿐으로 그 소리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는다면, 소리를 듣는 작용은 청정합니다. 
소리를 듣는 작용은 청정해서 오염되는 일이 없습니다.

소리를 듣자마자 그 소리가 어떤 소리라고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해서 취사간택하지 않으면, 
부처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2019.02.19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