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이슬이 맺히는 사람 - 정호승

장백산-1 2022. 11. 14. 01:20

동명 스님의 현대시 감상

 

21. 이슬이 맺히는 사람  -  정호승

 

가슴에 맺힌 이슬이 바로 행복

이슬 맺힌다는 건 잘못 볼 때
분노 아닌 연민하게 됐다는 것
모두 상하게 하는 분노보다는
입장 바꿔 생각하는 자세 필요

다행이다
내 가슴에 한이 맺히는 게 아니라
이슬이 맺혀서 다행이다
해가 지고 나면
가슴에 분을 품지 말라는
당신의 말씀을 늘 잊지 않았지만
언제나 해는 지지 않아
가슴에 분을 품은 채 가을이 오고
결국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길을 걸을 때
감사하다
내 가슴에 분이 맺히는 게 아니라
이슬이 맺혀서 감사하다
나는 이슬이 맺히는 사람이다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 창비, 2020)

2022년 10월30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어와 보니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도반스님이 새벽에 지방으로 가다가 보낸 소식인데, ‘핼러윈 인파 압사 참사’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제목만 보고는 외국의 소식이겠거니 했다. 다른 나라가 아닌 서울의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가슴에 분(憤)이 맺힐 뻔했다. 매년 핼러윈 축제에는 특정 장소에 군중이 밀집되었거늘, 미리 예방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러나 수행자는 이런 일에도 ‘분’이 맺힐 것이 아니라 ‘이슬’이 맺혀야 한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이 안타까워 이슬이 맺혀야 하고, 이 사건과 관계되어 악업을 지은 이들이 받아야 할 고통에도 이슬이 맺혀야 한다.

정호승 시인은 어느 날 자신의 가슴에 한(恨)이나 분(憤)이 맺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이 맺히는 것을 알고 스스로 안도한다. 한때는 한이 맺히거나 분이 맺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 당신(붓다일 수도 있고, 내 안의 불성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다)은 시인에게 말했다. “해가 지고 나면 분을 품지 말라.”

그러나 시인은 ‘분’을 끊을 수가 없었다. 시인에게 ‘해가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가 지지 않았다는 것이 청춘이 끝나지 않았음의 은유라면, 청춘 시기에는 도저히 분을 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슴에 분을 품은 채 청춘(여름)을 보내고 가을(장년/노년)이 왔다.

장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든 시인이 어느 날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길을 걷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살포시 내려온 이슬이 코 끝에, 아니 가슴에 맺히는 것이 아닌가? 시인은 그제서야 가슴에 분이 맺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이 맺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슬이 맺힌다는 것은 세상의 잘못된 것을 볼 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憐愍)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실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연민이다. 사람이 분노하면 폭력적이게 되고 때로는 남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스스로는 맥박이 빨라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면서 뇌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며, 뇌세포가 손상되기까지 한다. 분노는 남도 상하게 하고 나도 상하게 한다.

연민은 입장을 바꾸어볼 때 생기는 태도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내가 그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곤란하겠는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면 분노보다는 연민이 앞서게 되고, 그때 시인의 감성을 가진 사람은 가슴에 이슬이 맺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에 분이 맺히는 경우도 있다. 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인 경우도 있고, 그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반대로 내가 그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내가 그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서로가 싫어하고 있는 것이며, 그럴 때 상대를 생각하면 가슴에 분이 맺힌다. 내가 그로 인해 불편한 적도 있었지만, 그도 나로 인해 불편한 일 있었을 것이므로, 그것을 알아차린다면 그도 나도 불쌍해해야 할 대상이지 분노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제 우리도 시인처럼 가슴에 이슬이 맺히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슬이 맺힐 때면, 분이나 한이 아닌 이슬이 맺혀서 참으로 감사하다고 느껴보자.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성공도 멀리 있지 않다. 가슴에 이슬이 맺힌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성공이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56호 / 2022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