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7찰나설의 현대 뇌과학적 이해
‘주의맹’은 17찰나설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
주의맹, 짧은 순간 연속된 이미지를 인식 못하는 현상
어떤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뇌의 작동원리에서 기인
대상 인식하는데 최소 0.23초 걸린단 ‘17찰나설’ 입증
지난 연재에서 인식과정의 17찰나설을 소개했다. 테라와다(Theravada) 남방불교 상좌부의 교학 체계인 아비담마(abhidhamma) 교설이다. ‘매우 큰 인식대상’을 한 번 인식하는 데 17 심찰나(心刹那)가 걸린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하나 일어나고 소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심찰나’라고 한다. ‘매우 큰 인식대상’이 감각기관에 앞에 나타나면 17번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대상을 인식한다. 하나의 심찰나가 현대의 시간으로 얼마나 긴 시간인지 정확하게 정의되지는 않았다.
북방상좌부 설일체유부의 핵심 논서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찰나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는데(지난 연재 참조),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1찰나는 1/75초(=0.013333초)다. 1초가 75찰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아비달마구사론’의 1찰나(1/75초)를 아비담마의 1심찰나와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매우 큰 감각대상’을 인식하는 데 0.23초(1/75초·찰나 x 17찰나) 걸린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 번의 인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주의맹(注意盲, attention blink)이라는 현상이 있다. 주의맹을 설명하는 유튜브 동영상 ‘Brain Games - Attentional Blink (https://youtu.be/kVvzpviOB7o)’에 설명과 실험을 보여준다. 피험자의 컴퓨터 화면에 알파벳을 무작위로 빠르게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피험자의 과제는 ‘W’ 다음에 보여주는 알파벳을 알아맞히는 것이다. 천천히 보여주면 누구나 알아맞히지만 빠른 속도로 보여주면 대다수는 ‘W’ 다음의 알파벳을 인식하지 못한다. 통계에 의하면 첫 번째 이미지를 보여준 후 0.18~0.27초 후에 보여주는 두 번째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를 주의맹이라 한다.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는 뜻이다. 피험자는 첫 번째 알파벳 ‘W’는 주의를 기울여 쉽게 인식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차로 나타나는 다음의 알파벳은 인식하지 못한다.
왜 주의맹 현상이 생길까? 첫 번째 ‘W’에 대한 인식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찰나설은 하나의 인식과정이 끝나야 다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주의맹은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이다. 주의맹 현상은 한 번의 인식이 일어나는 데 대략 0.2초가 걸림을 보여준다. 이 시간은 17찰나(0.23초)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주의맹 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뇌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쉽게 생각하면 뇌가 어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일은 동시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 자원의 한계 때문이다. 사람의 경우 대뇌피질에만 15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그 가운데 1차 시각피질에는 10억 개 정도가 있으니, 2차, 3차, 4차 시각피질 등 시각 분석에 관여하는 전체 신경세포의 수는 수십억 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신경세포들이 만드는 연접의 수는 6조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원이 무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단순한 대상을 인식하는 경우에도 대부분의 자원이 동원된다. 예로서 ‘+’라는 단순한 형상을 인식하는 경우를 보자. ‘+’를 보면 망막에 ‘+’ 상이 맺힌다. 망막은 어느 지점이 밝고 어느 지점은 어두우며, 어느 지점은 어떤 색을 띠는지와 같은 점의 명암과 색깔을 분석하여 시상으로 보내고, 시상은 이 정보를 1차 시각피질에 전달한다.
시야에 아무리 복잡한 형태가 있더라도 망막에 상이 맺히면 그것은 점들의 집합이다. ‘+’는 가운데 수평 및 수직으로 검은 점들이 나열되어 있고, 나머지 부위들은 전부 밝은 점으로 채워져 있다. 망막은 이 모든 점들에 대한 정보를 뇌로 보낸다. ‘+’와 같은 단순한 형상을 분석하는 데도 전체가 동원된다. 따라서 하나의 인식과정이 끝나야 다음 인식과정에 동원될 수 있다. 주의맹은 하나의 인식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현대시간으로 약 0.2초 걸림을 보여준다. 아비담마의 시간으로 17심찰나이다.
한 번의 인식이 일어나는데 17찰나, 즉 0.23초가 걸린다는 것은 지난 연재에서 원숭이가 바나나를 보고 잡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도 살펴보았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원숭이의 눈앞에 보이는 ‘바나나’는 ‘매우 큰 인식대상’이다. 바나나를 보는 순간 원숭이는 잡으려고 할 것이다. 실험에 의하면 원숭이가 바나나가 있음을 알고 잡아야겠다고 판단한 후 팔근육을 움직이는 데까지 약 0.25초 걸린다. 바나나가 있음을 인식하는 데까지는 대략 0.2초 걸렸다. 바나나를 인식하는데 17찰나, 즉 0.23초 걸렸다는 뜻이다. 테라와다 스님들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투수와 타자와의 관계를 보자. 시속 144km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도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0.4초, 152km짜리 공은 0.375초, 161km(100마일)의 공은 0.35초 만에 타석에 도착한다. 타자는 공이 도달하기 전에 스윙을 시작해야 한다. 대략 0.2초 만에 구질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스윙을 시작했을 것이다. 인식과정이 그만큼 짧다는 뜻이다. 외야수들이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날아오는 궤도를 인식하여 순간순간 달리는 속도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달리는 속도와 방향에 대한 편차가 되먹임된다.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잡기 위해 빠른 속도로 인식의 반복이 일어나야 한다.
운전은 어떠한가. 갑자기 물체가 나타나면 우리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돌린다. 이것은 뜨거운 물체에 손이 닿았을 때 손을 떼는 단순반사운동이 아니다. 단순반사는 대뇌가 관여하지 않는, 즉 의식적 인식이 필요 없는, 척수 수준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하지만 운전 중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위기탈출 행동은 대뇌의 판단이 개입하는 의식적 인식과정이다. 아마도 17찰나의 시간이 걸려서 위기상황을 인지,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매우 큰 인식대상’을 인식하는 17개의 연속되는 마음들은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앞선 심찰나의 마음들은 대상과 부딪힌다. 그러면 수동의 마음[바왕가(bhavaṅga)]이 끊어지고 능동적 인식과정의 마음이 뒤따른다. 이 마음들은 대상에 대한 상(image, 像)을 맺고 받아들여 음미한다. 음미가 끝나면 수동의 마음 바왕가로 돌아간다. 이러한 인식과정은 하나의 통로를 지나는 것과 같다. ‘매우 큰 인식대상’이라야 이 ‘인식통로(vīthi-cittas)’를 온전히 지나간다. ‘작은 대상’은 지나다 말고 바왕가로 되돌아간다. ‘매우 작은 인식대상’이라면 바왕가가 흔들리다 만다. 감각기관이 어떻게 모든 인식대상을 인식하랴. 관심이 없는 작은 대상들은 그냥 흘려보낸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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