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
눈 앞에 무언가가 보인다. 보이는 것을 그저 볼 뿐, 보이는 것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으면, 그저 보일 뿐이다.
좋은 것이 보이든, 싫은 것이 보이든, 똥이 보이든 꽃이 보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든 미워하는 사람이 보이든,
바다가 보이든 하늘이 보이든, 볼펜이 보이든 나무가 보이든, 보이는 대상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보이는 대상에 따라 우리는 곧장 그 대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좋은 것은 더 보고 싶고,
싫은 것은 더 이상 보기 싫어 피한다.
그런데, 무엇을 보든, '보이는 것'은 달라지는데, 보이는 와중에도 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보이는 것'은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보는 것', '보고 있음'이라는 이 보고 있다는 존재감, 이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공간에 따라 보이는 대상은 달라지지만, 그 보이는 대상을 보는 것은 하나다. 이 하나는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이 아직 있어도, 금방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눈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은 상관 없이, 보이는 대상들을 '보고 있다'는 이 순수한 존재감, 이 순수한 의식, 있음이 있다.
보는 행위를 통해 보고 '있음'이 확인되지 않는가?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즉 경계를 따라가면 보이는 것은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분별이 된다.
사실은 좋은 것, 싫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서 내 식대로 좋고 싫고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 외부세상의 대상은 좋거나 싫거나 그렇게 나뉠 수 없다. 그저 보일 뿐이지, 좋게 보이거나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좋고 나쁘게 보이는 것은 내 내면세상 내 의식이 만들어낸 환영 허깨비에 불과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해 보라. 좋거나 나쁘게 분별해서 보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해석 없이 보는 연습을 하라.
그것이 곧 위빠사나 명상이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이 곧 정견이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면, 외부세상의 대상은 나를를 괴롭히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면 집착도 만들어내지 않고, 미움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냥 그저 그럴 뿐이다.
외부의 대상이 나타나면 볼 뿐이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보이는 행위를 통해 괴로움에서 해탈한다. 보이는 것이 나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2021.04.27 글쓴이 : 법상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히 깨어있는 사람이 하는 일? (0) | 2023.01.23 |
---|---|
언제나 문제가 있는 바로 그곳에 그 문제에 대한 답도 함께 있다. (0) | 2023.01.22 |
원인의 세계 결과의 세계 (0) | 2023.01.19 |
타타가타 즉, 여래 혹은 여래여거(如來如去) (0) | 2023.01.17 |
선지식(善知識) (0) | 2023.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