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상석에 앉은 신원식, 구석에 앉은 오바마

장백산-1 2024. 1. 12. 13:37

 

상석에 앉은 신원식, 구석에 앉은 오바마

권혁철 기자입력 2024. 1. 12. 09:35수정 2024. 1. 12. 11:15
권혁철의 안보이는 안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일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도서부대의 해상사격훈련을 주관하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점검하고 있다. 신 장관 왼쪽 군복 차림이 김명수 합참의장이다. 국방부 제공

 

 

 

 

북한이 지난 5일 서해 연평도, 백령도 근처 바다에서 해안포 사격을 하자 연평도 등의 해병대도 케이(K)-9 자주포 등을 바다로 쏴 맞대응했다.

 

이날 해병대의 대응 사격을 알리는 국방부 보도자료의 제목은 이랬다.

 

‘국방부장관 주관 하 서북도서부대 해상사격훈련 재개-국방부장관, “적 도발시 ‘즉·강·끝’ 원칙 하 압도적·공세적으로 응징할 것” 지시’

 

국방부는 보도자료와 함께 해병대 전차와 자주포가 해상사격 훈련하는 사진 3장과 신원식 국방장관이 합동참모본부(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이 훈련을 확인·점검하는 사진 1장을 배포했다. 사진을 보면, 신원식 장관은 마이크를 켜고 이야기를 하고 김명수 합참의장은 신 장관 옆에서 받아적고 있다. 신 장관을 중심으로 부각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5일 서해 연평도, 백령도 근처 바다에서 해안포 사격을 하자 연평도 등의 해병대도 케이(K)-9 자주포 등을 바다로 쏴 맞대응했다고 알리는 국방부 보도자료. 앞 대목 주어가 ‘신원식 장관’이다.

 

이 훈련을 왜 합참의장이 아닌 국방장관이 주관했을까.

 

해병대는 이날 북방한계선 남방 해상에 가상표적을 설정해 사격훈련을 했다. 만약 해병대가 북방한계선 남방이 아닌 이북 해상에 포 사격을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번질지 몰라 국방장관이 훈련을 주관할 필요가 있었다.

 

합참은 한반도란 전구(戰區) 작전의 판을 짜는 작전의 최고 본부다. 합참의장은 국군 전체의 작전지휘관이기 때문에 현역 군인 중 유일하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1979년 12·12 당시 반란군은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1979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육군의 군정권(인사 등 일반 지휘권)과 군령권(작전)을 모두 가진 실세였다. ‘서울의 봄’에는 합참의장은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서울 중구 필동에 있던 합참은 전역을 앞둔 아무 권한이 없는 장군들이 모였기 때문에 ‘필동 양로원’으로 불렸다.

 

지난해 12월12일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병2사단 말도초소에서 대비태세를 점검하며, 다양한 적 위협에 대한 전방위 대비태세 확립과 적 도발시 압도적 대응으로 응징·격멸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합참 제공

 

 

1991년 국군조직법이 개정되고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에 환수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합참의장이 국군 서열 1 위이자 국군 전체 작전지휘관이 됐다. 지금은 계엄령이 선포되면 육군참모총장이 아니라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다.

 

그래서 지난 5일 합참 작전통제실에서 합참의장이 해상사격훈련을 주관하지 않고 국방장관의 말을 받아적고 있는 모습은 어색했다. 왜 이런 장면이 나왔을까.

 

지난해 11월 김명수 해군작전사령관(중장) 을 대장으로 진급시킨 뒤 바로 합참의장에 발탁한 것은 1970년 이후 53년 만에 파격이었다. 역대 합참의장은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을 먼저 지낸 뒤 합참의장을 맡았다.

 

주로 해군에서 근무한 김명수 의장이 육해공군 합동작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국군 전체 작전을 총괄 지휘할 수 있느냐는 걱정이 군 안팎에서 나왔다. 이에 국방부 관계자는 “신원식 국방장관이 합참 작전본부장과 합참 차장을 지내 큰 문제가 없다” 고 했다.

 

국방장관만 돋보이는 모습은 불확실한 전장 상황에서 지휘관의 독립된 의사결정을 보장하고 참모들의 창의적 발상을 장려하는 ‘임무형 지휘’ 란 군 지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다. 선진국 군대는 임무형 지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의 역사적 경험에 나왔다. 1806년 10월 5만여 명의 프로이센군은 2만 7000여 명의 프랑스 군대에 참패를 당했다.  프로이센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명령이 없으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지휘관들의 피동적인 지휘와 사고의 경직성을 패전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후 대책으로 ‘임무형 지휘’가 탄생했다.

 

 

지난 2011년 5월1일 밤(미국 동부시간) 미군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인 브래드 웹 공군 준장이 상석에 앉아 있고,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그 옆 작은 의자에 앉아 있고,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도 앉아 있다. 미 백악관 누리집

 

임무형 지휘의 상징적 장면이 2011년 5월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당시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한 주택단지에 숨어있던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을 죽였다. 38분간 벌어진 작전 현장 상황은 위성을 통해 미국 백악관에 실시간 중계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래 500㎡ 규모의 백악관 시츄에이션룸의 대형 모니터로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었는데 모니터가 고장이 나 옆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옮겼다.

 

이 방은 당시 미군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브래드 웹 장군(준장)이 현장 위성 화면을 받아 시츄에이션룸 모니터로 보내는 방이었다. 방은 웹 장군의 이름을 따 ‘웹룸’으로 불렸다. 웹 장군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이라며 사양했다.

 

‘원스타’인 웹 준장이 작전 상황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상석에 앉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옆 작은 의자에 앉았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은 웹 준장 양 옆에 앉았다. 이 모습은 임무형 지휘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 5일 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신원식 장관이 김명수 합참의장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이라며 마이크를 넘겼다면, “명예는 상관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란 지휘 철학이 돋보이지 않았을까.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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