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사람은 ‘모를 줄 알게’ 된다
10. 깨달음의 상태
깨달음은 추구함 없는 상태, 둘로 나눌 수 없는 불이의 경험
‘모를 줄 안다’고 하는 것은 분별 이전의 실상 느끼는 상태
처음 구도자가 깨달음을 향해 구도의 길을 나서게 되면 묻고 싶은 질문이 참 많게 된다. 특히 깨달음에 대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끝임없이 샘솟는 샘물처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는지, 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 경우도 그랬는데 고등학생 때 처음 구도의 길에 접어든 이후 바른 정견이 명확하게 서 있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지금처럼 수행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스승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지 계속해서 선배 구도자들에게 물어봤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무언가를 해야지만 깨달음이 올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부처님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내 노력의 결과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또한 깨달음을 어떤 경계 체험이라고 생각해서 수행을 하면서 신기하고도 특별한 경험이 오기를 내내 기다리기도 했다. 물론 내가 찾는 깨달음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게 모르면서 무언가를 그냥 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까지 30년이 넘는 구도의 세월이 지나 지천명의 나이가 되다 보니 깨달음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더 이상 없는 상태라는 사실에 밝게 되었다. ‘반야심경’에서 말씀하듯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즉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에 밝은 것이 깨달음이지 무언가를 아직도 얻으려고 추구하고 있다면 깨달음과는 아주 요원한 것이다. 왜냐면 내가 구도의 길을 나서기 이전부터 나는 이미 완벽하게 모든 것이 다 구족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찾았던 지금 여기라는 도착지에 이미 도착해 있으면서 지금 여기 이곳을 떠나 다른 로가야된다고 믿고 바보처럼 그곳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나에게 아주 놀라웠던 사실은 깨달음이라는 말만 있지, 깨달음이라는 어떤 특별한 경험이 따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가끔씩 도반과 수다 떠는 것이 깨달음, 본성의 경험이지 그것 말고 따로 뭐가 없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하는 그 모든 일체가 다 깨달음의 경험인 것이지, 본인 경험 가운데 어떤 특별하고 신기한 경험만이 깨달음이고 일상의 경험은 깨달음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이것 또한 깨달음과는 아주 요원한 것이다. 왜냐면 깨달음, 본성의 경험은 둘로 나눠질 수 없는 불이(不二)의 경험인데 깨달음의 경험과 깨달음이 아닌 경험, 둘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본성을 깨닫게 되면 본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밝아진다. 다른 말로 쉽게 말하면 모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처음 구도의 길을 떠났을 때는 깨달음을 모르면 답답해서 어떤 답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깨달음은 지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른다고 답답해하지 않는다. 왜냐면 머리로는 알 수 없으나 눈앞에 우리 본성은 이렇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이가 본성을 설명해 주려고 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왜냐면 우리가 무언가를 말로 설명을 하게 되면 그 즉시 그것이 대상(object)이 되어 대상과 그 대상을 보는 나로 분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열면 바로 멀어지는 일이다.
예전에 수행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니 나에게 어떤 특별한 신비 체험이 있던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이 깨달음인가 하고 평소 존경하던 큰스님을 찾아 여쭈어보니 내 이야기가 끝이 나기도 전에 “혜민 수좌, 저기 보이는 강물에 머리부터 처박고 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정말로 적절한 가르침이셨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어도 다 틀린 말이었다. 왜냐면 설명하려는 순간, 하나의 실상을 대상과 나로 둘로 나누어 버렸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본성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묻고 싶은 질문이 없어진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눈앞에 무시무종으로 항상 펼쳐져 있는 본성은 이렇게 생생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결코 알 수는 없다. 이 사실이 밝은 사람에겐 무언가를 물어서 이해해 보고 싶은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혹시라도 본인이 본성을 확인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면 아직도 본인 안에 질문이 남아 있는지 아닌지를 솔직하게 보면 된다.
모를 줄 안다는 것은 일체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분별 이전의 실상을 온전히 느끼는 상태이다. 물론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느낄 수 있는 실상이 따로 있는 것은 또 아니다. 그저 그냥 생각이 멈추게 되면 저절로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것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30호 / 2024년 5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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