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가 마음 안에 들어와 있다
11. 괴로움은 어디서 오나
생각으로 나와 남 분별하지만 생각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며
실상은 마음에서 펼쳐 보이는 무상한 그림들과 소리일 뿐
인생을 살다보면 괴롭고 마음 상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가 나에 대해 험담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거나, 시댁이나 처가 식구가 무리한 요구를 반복해서 해 오거나, 나와 분명히 했던 약속을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거짓말을 하는 거래처 사람을 만났을 때 뒤에서 한 방 맞은 듯 충격을 받으면서 마음이 괴롭게 된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핸드폰으로 보내온 피싱 문자와 누르지 말아야 하는 사기성 링크를 봤을 때 짜증이 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신공격의 말들을 온라인상에서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얼굴이 찌푸려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괴로운 일이 나에게 발생할 때마다 그 즉시 반조를 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은 “지금 괴로운 이 일이 어디서 일어나고 있나?”다. 내게 기분을 나쁘게 한 상대가 지금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보면 너무도 당연히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상대가 내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 안에서 보이는 영상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 상대가 내 마음 밖에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 상대를 인지할 수 없게 된다. 왜냐면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을 절대로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한번 확인해 보자. 지금 본인 마음 밖으로 나갈 수가 있는가? 마음 안에 어떤 문이 있어서 그 문을 열고 잠시라도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잠시라도 알 수가 있는가? 당연히 밖으로 나갈 수도 알 수도 없다. 만약에 마음 밖이라고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지 않는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일체의 일들은 다 자기 마음 안에서 떠오른 영상과 소리일 뿐이다.
우리 마음이 괴로울 때를 보면, 나를 힘들게 만드는 상대가 내 마음밖에 따로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렇기에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대를 미워하거나 분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실상을 바라보면 어떤가? 실제로 상대가 내 마음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마음밖에 그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우리 마음이 알 수 없지 않을까? ‘나’를 포함한 눈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과 풍경은 마음이라는 공간 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풍경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내 마음 공간 안의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현대 불교를 중흥하신 경허 스님(1849-1912)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사실이 좀 더 분명해진다. 경허 스님께서는 동학사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을 처사가 “죽어서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이 없는 소가 돼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오도송을 지으셨는데 첫 구절을 보면 “콧구멍이 없다는 그 말을 듣고 삼천대천 세계가 내 집인 줄 깨달았네”다.
즉, 경허 스님은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우리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다는 말로 들으신 것이다. 그 순간 삼천대천 세계 일체가 다 우리 마음 안의 일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생각으로는 나와 남을 나누어서 분별할 수 있지만, 생각 자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첨가한 내용이지 본래 모습이 아니다. 실상은 마음이라는 한판에서 펼쳐 보이는 무상한 그림들과 소리일 뿐이다. 항상 여여하면서도 부동한 주인공은 마음이라는 한 판이지, 그 판 안에서 무상하게 등장했다 이내 사라지는 허망한 모습들이 아닌 것이다.
만약 자신을 몸 안에 갇혀 있는 작은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에겐 위의 글이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몸이라고 한정하고,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마음이라고 또 한정했다. 그러면서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항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입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진리에 목말랐던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묻는다. 주입된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보지 말고, 말을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세상을 봐 보라고. 생각을 첨가하기 이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던 실상을 생각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느껴 보라고 말이다. 살아있지만 절대로 알 수 없는 이 하나가 눈앞에 분명하지 않는가?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32호 / 2024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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