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깨닫지 못하는 이유

장백산-1 2024. 6. 28. 21:55

시작하기도 전에 완성돼 있었다
 
12. 깨닫지 못하는 이유

마음공부는 지식 쌓듯이 않고 기존에 있는 지식  덜어내는 공부
추구심에 탐심으로 접근 말고 부처성품 본래 구족 믿고 쉬어보라

 

 

처음 마음공부에 뜻이 있어 구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어떤 이는 경전이나 법문집, 명상 서적과 같은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살아있는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분들의 가르침대로 수행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들어가기도 한다. 즉, 우리는 구도의 종착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으면서 본인이 찾은 것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깨달음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자꾸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꾸 무언가를 해서 본인이 상상하는 어떤 높은 단계에 도달하려는 그 욕구 때문에 깨달음을 아직 얻지 못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마음공부는 지식을 쌓듯 무언가를 더하는 공부가 아니고, 기존에 있는 것들을 덜어내는 공부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자꾸 하려는 의도를 멈추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면 그 사람 말을 믿겠는가? 이미 종착지에 도착해 있는데 본인이 그 진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 준다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12연기법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로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첫 번째 무명(無明)으로 인해 행(行)이 발생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자기 성품에 스스로가 밝지 못하게 되면 그 무명으로 인해 마음이 멈추어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자꾸 움직이고자 하는 성질이 연기되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부처와는 달리 중생은 지금 이대로 가만히 쉬면서 스스로를 살피지 못하고 자꾸 지금 상태보다 더 좋아 보이는 다른 상태로 움직여(行) 변화하고 싶어한다. 더 쉽게 말하면, 중생의 병은 마음이 가만히 멈추어 있지 못하는 것에 있다.

 

움직여서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다른 말로 ‘추구심’이라고도 하고 ‘탐심’이라고도 한다. 주어진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탐하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불만족인 것이다. 왜냐면 문제는 더 좋은 상태에 도달하지 못해서가 아니고, 도달하려고 노력을 하는 동안 느끼게 되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저항감과 비교에서 오는 결핍감이 번뇌를 일으켜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좋은 상태에 도달하더라도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무명의 관성이 멈추어지지 않는 한 이내 곧 다시 불만족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구도자들이 깨달음에 대한 추구심을 가지고 탐심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추구심이 멈추고 탐심이 사라지는 것이 핵심인데, 움직이려는 마음을 멈추고 돌아보려 하지 않고, 주어진 현재를 떠나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보면 혹자는 이렇게 또 질문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깨닫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까지 할 것이 없다고 내내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말을 못 알아듣고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되지 않을까 묻는 것이다.

 

깨닫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들으면 답답해 질 수 있다. 왜냐면 마음이 평소 관성대로 어디론가 움직여서 가고 싶은데  가는 길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심행처(心行處)를 이처럼 끊어 놓으면, 처음에는 사량분별의 습관 때문에 할 것이 없어 답답해 할 수는 있으나 그 자리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 보면 밝아지는 것이 있다. 모든 중생은 이미 부처 성품을 구족하고 있다는 그 말씀을 믿고 답답한 그 자리에서 쉬어 보자.

생각을 일으키면서 계속 움직이려던 마음이 멈추니 어떠한가? 생각이 완전히 멈추니 어떤 번뇌나 불만족, 이야기나 질문이 남아 있는가? 나 혹은 너라는 분별이 있는가? 텅 빈 이 마음에 어떤 한계가 있는가? 텅 빈 이 마음은 항상 있었나 아니면 새로 생긴 것인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이 마음이 사라질 일이 있겠는가?

경허 스님께서 참구하신 화두가 “나귀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말의 일이 다가왔다(驢事未去 馬事到來)”이다. 깨달음은 그런 것이다. 처음엔 나귀처럼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문득 말이 찾아오듯,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본성이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34호 / 2024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