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체험 이후의 공부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통해서든 직접 법회에 참석해서든, 법문을 꾸준히 듣다가 발심을 하게 되고, 발심을 한 뒤에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눈만 뜨면 저절로 법문을 듣게 되고, 스님이 말하는 법(法)이 뭘까 하는 궁금함이 저절로 화두가 들리듯 돈발되어, 늘 이 하나의 진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이거네'하고 설법에서 가리키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는 때가 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자각은 어떻게 공부했느냐에 따라 큰 체험을 동반하며 오기도 하고, 그저 '아! 이거 말이야?'하고 문득 확인되는 경험처럼 가볍게 오기도 하지만, 어떻게 자각이 되든 상관 없습니다.
이 한 번의 체험 이후에는 법문이 달리 들리게 됩니다. 설법하는 내용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훤히 알아지고, 경전이나 어록의 말씀도 스스로 소화가 되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삶이 가벼워지고, 예전 같으면 크게 여겼을 법한 고민이나 문제들이 가볍게 넘어가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하던 나쁜 습관들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나도 모르게 조금씩 저절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 때에도 여전히 '긴가민가 하는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내가 확인한 것이 정말 이것이 맞을까? 고작 이게 다일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을거야. 나는 옛날 스님들처럼 부처가 되었거나, 확철대오 해서 뭐든 다 아는 것도 아닌데? 등등의 생각들이 계속해서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고, 계속해서 법문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 때는 법문을 통해 뭔가를 배운다기 보다는, 하나의 진실을 점차 확신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이것 밖에 없지 이게 전부네 정말 그렇네' 하면서 법문을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자기 공부가 자리를 잡게되며, 점차 이 공부가 세밀해지고, 철저해집니다. 법문을 듣지 않을 때에도, 하루 하루의 삶이 곧 수행이 되어, 늘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됩니다. 생각에 휩쓸리는 것은 여전하더라도 그것이 훨씬 잘 보이고 자각이 되며, 쉽게 지금 여기 이 자리로 되돌아 옵니다.
생각에 수만 번 휩쓸리더라도 이제는 예전과는 다릅니다. 다시 돌아올 자리, 고향과도 같은 지금 여기 이 자리를 확보했기 때문에, 생각에 휘둘리는 것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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