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맹목적 안보와 애국, 진급과 출세로 무장한 장군들

장백산-1 2025. 1. 1. 13:25

1988년의 육사가 커서 2024년 내란이 되다

 

맹목적 안보와 애국, 진급과 출세로

무장한 장군들

왼쪽부터 여인형, 이진우, 김용대.

 

30년 넘게 한국의 군사 문제를 관찰해 온

필자이지만 12·3 내란 사태를 보면서

큰 의문이 하나 생겼다.

왜 육사 47~50기 출신들이 이번 내란의

주축인가, 라는 의문이다.

단순히 그 기수들이 군의 고위 장성이어서

내란의 주죽이 되었다는 설명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 절정기였던

1987년 육사에 입교한 47기로부터 그 이후

3개 기수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라야 한다.

이번 내란 사태에서 48기들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다.

이 기수에는 이미 내란 중요 행위 가담자로

지목되어 구속된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뿐만 아니라 방첩사 참모장으로

근무하다 계엄 선포 당일에 육사 교장으로

취임한 소형기 중장,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김용대 드론사령관도 포함되어 있다.

 

육사, 비상계엄 지지 선언까지 검토했다

 

필자가 취재한 바로는 계엄이 선포되던 날

육사에서는 누군가의 지시로 생도들의 계엄 선포

지지 퍼레이드를 조직하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5·16 직후 박정희 쿠테타를 육사 생도들이

지지하는 시가 행진처럼 말이다.

이 외 다수의 단순 가담자를 포괄하는

이 기수는 사실상 냉전 시대의 군정으로

복귀하겠다는 위헌·위법한 계엄 사태에 체질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어야 정상이다.

이런 상식과는 달리 이 기수들이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행태는 권력에 무비판적인 추종과

출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의 민병돈(육사 15기)

특수전사령관은 당시 궁지에 몰린 전두환 대통령의

병력 출동 준비 명령을 거부했다.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계엄을

가정한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에 대해

“위법한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며

버티는 바람에 계엄에 난관이 조성되었다고 밝혔다.

민 사령관은 만일 전두환이 계엄 선포를

강행하면 자신 휘하의 707대대를 청와대에 보내

전두환을 생포하고 과도정부를 선포하여

평화적으로 사태를 마무리한 후 민간에 정부를

이양할 계획까지 짰다고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여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87년에 한국은 명예로운

민주혁명을 이루어냈다.

지금의 육사 48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맹목적 안보와 출세주의로 괴물이 된

육사의 1년생 48기

 

민 사령관은 1988년에 육사 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막상 교장으로 부임한 민 장군은 괴물이 된

육사의 현실에 경악했다.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생도 한 명이

도심의 시위대에 합류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이 생도는 정복 차림으로 최루탄 속에서 시위대와

합류하여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까지 외쳤다.

그 충격으로 육사의 장준익(육사 14기) 교장은

생도들에게 다른 군사 교육을 취소하고 하루에

6시간씩 이념교육을 시켰다.

시위에 합류했던 생도는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어 퇴교시켰다.

육사는 생도들이 오로지 안보와 애국 의식에

종교적 수준으로 집착케 하여 시민의 일반적 의식과

괴리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군에서의 출세와

진급이라는 유혹으로 자극했다.

그 이듬해 부임한 민 교장이 보기에

이제 육사는 괴물이 된 거다.

 

민 교장이 전 생도를 강당에 집합시켰다.

여기서 그는 한 시간 동안 “진급과 출세가 육사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라며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라며 설득을 했다.

그러나 한 번 물욕에 집착하며 괴물이 된

육사는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 강당에서 민 교장의 훈시를 들은

1학년 생도들이 바로 이번 12·3 내란 사태의

육사 48기다.

 

축구부는 전두환파, 럭비부는 노태우파가

구축한 상식 밖 세계

 

1988년 당시의 육사 상황을 지금의

내란 사태와 인과관계로 엮는 데는

논리적 비약이 있다.

뒤틀리는 시대상 속에서도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균형을 추구하며 고뇌하던 생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고위 장성으로 군에 아직 남아있는

그 기수는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다.

생도 시절의 그릇된 가치관 형성,

군에서 치열한 진급과 보직 경쟁을 겪으면서

지난 36년 간 군의 직업 정신이 왜곡된 48기

전후 기수들은 특히 그렇다.

이 기수들은 입학 시절부터 축구부는 전두환파,

럭비부는 노태우파로 분류되어 급식에서도

특혜를 받고, 장교로 임관 후에도

선배들로부터 배려를 받는 것부터 배웠다.

운동부 출신들이 끈끈하게 얽힌다는 점은

1993년의 하나회 척결과 그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육사에서 가르쳐 온 줄 서는 문화, 맹목적인 충성,

극우로 경도된 가치관 등은 이제 괴물이 된 채

40년 가까이 공고화 되었다.

이 점이 바로 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우리가 모르던 세계였다.

 

윤석열 총통 시대 만들려던 장군들의

미꾸라지 같은 행태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정의 결과는 무엇인가.

12·3 내란 사태 전후에 저항한 장군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그나마 내란 사태 이후에 양심 고백하는

사령관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후의 일이다.

더 놀라운 사실도 말씀드릴까?

내란 가담자로 의심받는 48기 전후 기수들에게서

이번 사태에 대해 반성하는 분위기조차 없다.

심지어 그 중 한 인물은 필자가 방송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을 이야기하면서 이름을

잘못 말하더라며 몹시 즐거워했다는 거다.

내란 혐의에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궁리만 하던 중에 필자가 이름을 잘못 이야기하는

것조차 너무나 좋았나 보다.

우리가 기대하던 반성하는 상식형 군인과 달리

“명령하면 복종하는 게 군인”이라며 권력에 대한

극단적 추종을 여전히 정당화하는 여인형과 같은

괴물이 아직 훨씬 많다.

 

민주공화정은 군에 대한

시민적 통제(civil control)를 핵심 규범으로

준수함을 원칙으로 한다.

2024년 3월 삼청동 안가에서 윤석열이

김용현, 신원식, 여인형, 조지호와 만난 자리에서

‘비상 대권’을 최초 언급한 이래 윤석열의

영구집권을 위한 모의가 최소한 7차례 있었다.

비상대권이란 윤석열이 국회를 무력화한 이후

별도 입법기구를 통한 과도적 통치체제를

갖춘다는 의미다.

이번 내란의 진정한 목적은 민주공화정의

문민통제를 전복하는 사실상의 총통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육사 생도 시절부터

지녀온 사상과 이념의 최후적 모습 아닌가.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