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 8

진정한 자유인

나를 '누구'로 규정하지 마십시오, 그 '규정지어진 누구인 나'로 인해 괴로워질 것입니다.   '나는 어른이야', '나는 성직자야. 나는 스님이야' '나는 돈이 많은 부자야'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 '나는 나이가 많아' '나는 대접받아야 해'  '나는 능력있는 사람이야'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불교신자야 나는 기독교신자야' '나는 지위가 높은 혹은 낮은 사람이야' 등등의 무수히 많은 자아정체성들을 사람들은 나와 동일시(同一視)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진실로 무수히 많은 자아정체성들이 나와 동일한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무수히 많은 자아정체성들 그것들은 내가 그것들과 동일시 해 온 무엇이 아닌가요? 정말로 그것, 나이, 돈, 재산, 성별, 지위, 종교, 외모, 능력 등이 나의 ..

지금 여기 이대로 완전하다.

지금 여기 이대로 완전하다. 현실이라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짜맞추기 위해 애써야 하고, 애쓰지 않으면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행하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일해야만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곧 성공적인 삶이며, 남들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이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실은 그같은 방법과는 반대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해야 할 것은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저절로 되어질 뿐. 애쓰지 않고 내맡긴 채 그저 따라 힘을 빼고 흐르기만 해도 모든 것은 저절로 완전하게 주어진다. 개체적인 자아로써인 '나'가 '할 것'은 아무것..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는 방법이 아닌 방법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는 방법이 아닌 방법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려고 애쓰면 버려질까요? 아마 쉽게 잘 안 될겁니다.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려고 애를 쓰는 것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 유위법(有爲法)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법(佛法)은 무위법(無爲法)에 해당합니다. 무엇을 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뿐인 것이 무위법(無爲法)이자 불법(佛法)입니다.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려 애쓸 것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무언가에 자꾸만 집착을 하는 마음을 늘려가려는 마음의 습관(習慣)을 계속하지 않으면 그것이 불법(佛法)이자 무위법(無爲法)입니다. 그런데 집착을 하던 마음의 습관 때문에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는 그게 잘 안 되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집착을 하던 마음을 버리는..

최고로 존귀하고 온전한 존재

최고로 존귀하고 온전한 존재 - - 혜민스님 사람 누구나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서 최고로 존귀하고 온전한 존재입니다. 이같은 최고로 존귀하고 온전한 존재임을 보지 못하는 까닭은 내가 스스로 내 생각으로 만들어 나에게 부여한 의미, 즉 나라는 고정관념(固定觀念), 즉 가짜 나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내가 옳다고 우기는 고집

내가 옳다고 우기는 고집 / 법륜스님 결혼생활 중에서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은 부부가 서로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고집입니다. 배우자가 “넌 고집이 세다”고 말을 해도 정작 본인은 고집이 센 줄 몰라요.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나는 서로 다름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고집을 전혀 안 부리고 살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고집부리고 있음을 알아차려 보세요. 상대가 “너 고집 피고 있어!”하면, “그래, 내가 고집이 좀 세지.”하고 알아차리고 수용하면 서로간에 소통이 되지만, “나만 고집 세고 너는 안 세냐?”하며 상대를 탓하면 서로간에 소통이 안 되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입습니다. 내 고집을 전부 다 버려야만이 소통이 되는 게 아니에요. 고집부리는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 원만한 소통의 시..

사람들은 왜 고통스러워 하는가?

사람들은 왜 고통스러워 하는가? - - 몽지 사람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텅~빈 바탕자리, '이것', 지금 이 순간의 전체성에서 분리되어 있다고 느낄 때 불편함, 불안함, 두려움, 고통을 느끼게 된다. 불편함, 불안함, 고통, 두려움은 이같은 분리된 느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분리감은 ‘내’가 따로 있다는 한 생각, 한 느낌, 즉 아상(我相), 에고의식에서 기인한다. ‘나’를 의식하고, ‘내’가 어떤 행위를 해야만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믿을 때 분리감이 일어난다. 분리감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라는 전체성에 대한 망각, 불신에서 비롯된다. 개별적 존재자로서의 ‘나’에 대한 확신이 이 망각, 이 불신을 유발하고 강화한다. ‘나’라는 아상에 집착하게 될 때, 평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