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53

승의제와 세속제

승의제와 세속제 석가모니부처 입멸 후 500여 년 경에 나가르주나라는 제2의 석가모니로 칭송된 나가루주나보살이 진리는 말로 설명될 수 없음을 세속제와 승의제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진리라고 말하며, 절에서 말로 가르칠 수 있는 진리는 세속제, 즉 방편의 진리 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즉 진리는 말로 설명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말은 의미가 담긴 언어이고, 사람들은 특정한 말에 자기만의 특정한 의미를 개입시킨다. 보편적인 의미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만의 특정한 의미와 개념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말로 설명하게 되면 그 설명은 어디까지나 진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식한 바의 상대진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불성, 법성, 참나, 마음, 법,..

너무 평범하고 당연해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너무 평범하고 당연해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공기는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숨쉬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특별히 애쓸 필요도 없다. 물은 맛이 너무 맹맹하고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마실 것들에 비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와같이 물이나 공기처럼, 존재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는 방편으로 회자되는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도 비슷하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하기도 하다. '이것'은 공기처럼 물처럼 늘 항상 곁에 있지만, '이것'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아지거나 ..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 등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있음'이다.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 등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있음'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당신이라는 존재가 본래 이미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이다.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 등의 방편상의 이름들은 당신이 본래 이미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임을 확인하는 것을 일러주는 말일 뿐이다. 당신 말고 어디 저 멀리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성품(본성, 근원의 성품)이라는 방편의 다른 이름들인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를 확인하게 되면 당신은 그저 그냥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 뿐이다.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를 확인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계..

개구리 네 마리와 강물과 통나무와 마음

개구리 네 마리와 강물과 통나무와 마음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통나무에 개구리 네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개구리들은 신이 나고 몹시 흥분했다. 통나무를 타고 떠내려가는 그런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얼마쯤 떠내려가다가 첫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이 통나무는 정말 신기하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가. 나는 이런 통나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두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여보게,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린가? 이 통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를 게 없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해. 통나무를 움직이는 것은 강물이야.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면서 우리들 개구리 4마리와 통나무를 떠내려가게 하는 거란 말일세.” 세 번째 개구리가 말했다. “천만에! 통나무도 강물도 움직이지 않네. 움직이..

일체의 분별을 떠나 세상과 하나가 되라.

일체의 분별을 떠나 세상과 하나가 되라. 부처를 높게 보지도 않고 중생을 낮게 보지도 않는다. 내 밖에 산하대지가 있음을 보지도 않고 내 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인식하지도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은 사람이 고요하듯이 좋다 싫다 등의 일체의 분별을 전부 다 버리고서 세상만사 모든 것에 분별이 없어진 다음에야 세상만사와 하나되어도 어긋남이 없게 된다. -벽암록(碧巖錄)에서 부처라는 것과 중생이라는 것, 창조주라는 것과 피조물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지어낸 관념(觀念)상의 어리석은 분별(分別)일 뿐이다. 내 밖의 산하대지도 내 안의 마음도 다 궁국에는 분별없는 ‘한마음’의 나툼일 뿐이다. 나누는 것, 분별되는 것, 구분되는 것은 진리(眞理), 한마음에서 멀어지게 된다. 좋다 삻다, 선 악, ..

누구든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다.

누구든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다. 마음은 끝없이 방황하고 홀로 다니며 형체도 없이 동굴에 숨어 사느니 누구든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다. (법구경) 사람을 평가할 때 대게 그 사람의 겉 모습만을 보고 평가합니다. 평가할 상대의 겉 모습에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그릇됨됨이가 나타나지만 겉 모습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무리입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전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를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이 필요합니다. 당나라 때 중이었던 마조도일 선사(禪師)에게 하루는 분주 무업이라는 학승(學僧)이 찾아 왔습니다. 분주 무업이라는 학승(學僧)은 체격이 아주 장대하고 목소리도 우렁차서 사람들이 그의 앞에 서면 그의..

모든 것에서 이것을 본다.

모든 것에서 이것을 본다. - - 릴라 붓다, 마음, 청전심, 진성, 자성, 불성, 진리, 도, 깨달음, 하나, 불이, 중도, 주인공, 진짜 나, 본래의 나 등등의 ... 이름들은 그냥 이름일뿐 '이것' 이 아니다. 하늘, 땅, 구름, 새, 공기, 바람, 사람, 나무, 동물, 식물, 광물, 흙. 물, 바위, 돌, 모래, 태양, 달, 별, 등등의... 모든 것들이 '이것' 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보통으로 일컫는 붓다는 석가모니로 태어났던 한 인간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붓다이다. 사람만이 붓다가 아니다, 흙, 물, 불, 공기가 붓다이다. 붓다는 물질세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 즉 붓다는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이다. 여기 저기 모든 곳이 붓다이다. 붓다는 기쁨이고 슬픔이고 사랑이다. 불쾌이고 가벼..

한 물건(一物)

한 물건(一物)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럽다. 한 물건은 일찍이 생긴 것도 아니요 일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름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有一物於此 從來以來 昭昭靈靈(유일물어차 종래이래 소소영영)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相不得(부증생부증멸 명부득상부득) 『선가귀감, 청허 휴정 서산대사』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 이 한 물건이 있어서 이렇게 글도 읽고 글을 쓴다. 이 한 물건이 말도 하고 말 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이 한 물건이 누가 부르면 대답할 줄도 하고 꼬집으면 아픈 줄도 안다. 이 한 물건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을 줄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잘 줄도 안다. 이 한 물건은 정말 밝고 신령스럽다. 이 한 물건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다. 이 한 물건은 참으로 불가사의..

진아(眞我), 참나, 본래의 나, 진짜 나, 깨달음, 진심(眞心), 진리, 도(道)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진아(眞我), 참나, 본래의 나, 진짜 나, 깨달음, 진심(眞心), 진리, 도(道)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속하는 뭔가가 있고 그래서 자유를 찾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진실로 진정으로 사람들을 구속하는 뭔가는 없으며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왜 억지로 이름, 개념, 관념을 만들어 내서 그 이름을 추구하고 있는가? 진아(眞我)란 추구해야지만 얻어지는 목표가 아니라 에 대한 제한적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기만 하면 스스로 저절로 드러나는 각성(覺性)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진아(眞我), 참나, 본래의 나, 진짜 나, 깨달음, 진심(眞心), 진리, 도(道)를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으로 어떤 새로운 세상을 얻게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삶의 질(質)이 몰라보..

눈앞의 일이 온 세상의 일이다

눈앞의 일이 온 세상의 일이다 - - 몽지&릴라 지혜의 눈, 법신, 광명이라는 방편의 말은 모두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이 세상 모든 것을 보는 듯하여 지혜의 눈이라는 방편을 쓰고, '이것'이 세상 모든 형상으로 드러나기에 법신(진리의 몸 이라는 방편을 사용하고, '이것'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추는 듯하여 광명(빛)이라는 방편을 사용한다. 지혜의 눈, 진리의 몸(법신), 빛(광명)도 어디까지나 방편상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무언가를 비추는 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라는 형태도 따로 없으며 빛도 아니다. '이것'은 어떤 것이 아니지만 여기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그것이 되며 모든 것이 비친다. '이것'은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소한 것에서 아주 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