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건(一物)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럽다.
한 물건은 일찍이 생긴 것도 아니요 일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름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有一物於此 從來以來 昭昭靈靈(유일물어차 종래이래 소소영영)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相不得(부증생부증멸 명부득상부득)
『선가귀감, 청허 휴정 서산대사』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 이 한 물건이 있어서 이렇게 글도 읽고 글을 쓴다.
이 한 물건이 말도 하고 말 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이 한 물건이 누가 부르면
대답할 줄도 하고 꼬집으면 아픈 줄도 안다. 이 한 물건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을 줄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잘 줄도 안다.
이 한 물건은 정말 밝고 신령스럽다. 이 한 물건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다.
이 한 물건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 한 물건은 넓을 때는 우주를 다 싸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한 물건이 좁아지면 바늘끝 하나도 꽂을 수가 없다. 이 한 물건은 그토록
상대를 죽도록 사랑하다가도 미워할 때는 죽일 것 같이 미워하기도 한다.
이 한 물건은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운다. 이 한 물건은 정말 변화무쌍하다.
이 한 물건은 그렇게 활발발하게 작용하면서도 단 한순간도 쉴 줄을 모른다.
이 한 물건은 영원히 살아있는 진실한 생명체(生命體)다.
이 한 물건에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수많은 이름을 지어 붙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그 이름들은 온전한 표현이 못 된다. 이 한 물건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린다 해도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서산 스님은 이 한 물건을 두고 “이름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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