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자의 서글픈 자화상
기자이길 포기했는가. 기자가 되라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11-12)
법조출입 기자들이 돈을 받았다. 촌지다.
검찰총장 김준규가 준 촌지다. 아니라고 펄펄 뛰지만 촌지다.
검찰총장이 저녁을 한 턱 낸다면서 기자들을 초청했다.
좋다. 저녁 한 끼 먹는 거 시비할 생각 없다.
폭탄주 돌리는 것도 좋다. 그러나 좋은 건 여기까지다.
경품 뽑기를 했다. 분위기 살리기라고 하지만 요행수 바라기다.
돈 뽑기라고 해도 맞다.
22명 중에서 8명이 당첨됐다. 봉투를 받았다. 그 안에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격려금이란다. 왜 기자가 격려금을 받는가. 감시견에게 도둑 잘 잡으라고 주는 것인가.
기자가 대검찰청 대변인실로 찾아가 ‘촌지봉투’를 놓고 나왔다. 항의도 했다. 다음날 한 것이다. 받은 그 자리에서가 아니라 다음날이다. 일이 불거지자 나머지 기자들은 그 돈을 봉사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불거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왜 현장에서 돌려주지 않았나. 뭐가 들었는지 궁금한 것은 기자라고 다를 것 없을 것이다. 화장실에 가서라도 살짝 열어 보지 않았을까.
다음 날 돌려주기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했을까. 기자를 뭘로 보느냐고 열 받았을까. 촌지 돌린 검찰총장이라고 크게 써야 된다고 생각했을까. 만에 하나 그냥 입 씻고 조용히 있고 싶은 기자는 없었을까.
좌우간 촌지는 반환되고 한겨레를 필두로 경향과 서울신문이 보도했다. 검찰총장이 사과를 했다. 역시 촌지는 아니라면서.
역시 기자들은 대단하다. 검찰총장한테 밥 대접받고 촌지까지 받으니 말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까짓 50만 원을 가지고 쩨쩨하게 뭘 그래. 몇천만 원, 몇억씩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인데.
요즘 기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 참 많다. 언론고시라고 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기자가 되면 장원급제한 기분일 것이다. 보장된 직장에다 어딜 가서든지 ‘님’자 붙는 대우를 받고 무서운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지 않든가.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넣은 대단한 역할도 했다.
그런 기자다. 비리공무원들 벌벌 떤다. 그런 기자다.
무조건 기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사명을 다 하는 훌륭한 참 기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기자들이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오염되었겠는가. 몹쓸 인간들이 얼마나 더 발호하겠는가. 기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공기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산소와 같은 공기가 아니라 탄산가스 같은 기자가 있다.
이들이 우리를 절망시킨다.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언론이 무엇인가. 기자가 뭐 하는 직업인가. 아니 직업 이전에 생각해야 할 일은 없는가. 기자는 사회의 소금이다. 거울이다. 부정을 제거하는 청소부다. 세상에 썩은 곳을 먹어치우는 ‘하이에나’다.
오늘의 기자들은 자신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어떤 모습으로 그릴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쫓겨나는 기자. 봉하에서 쫓겨나는 기자.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는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게 우리만의 죄냐고. 너희들도 한 번 겪어보라고. 당해 보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별 수 있냐고. 이렇게 좋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그러나 최소한의 양심은 지녀야 한다. 사실보도다. 국민의 외면을 부당하게 생각하는가. 왜 외면당하는지 모르는가. 모른다면 상식점수는 빵점이다.
조중동문 매경 한경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불매운동 때문에 신문이 팔리지 않아 치사하고 추한 판촉을 줄기차게 하는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판촉사원들이 있다. 손에 뭔가 쥐었는데 그게 바로 현금이나 상품권이다. 자기 신문을 구독하면 현금을 준다고 한다. 경품도 준다.
물론 6개월 동안 신문은 공짜다. 조중동 기자들도 판촉사원과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표정이 어땠을까. 보고 싶다.
언론회관 앞에는 날치기 ‘미디어 법’을 규탄하는 단식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언노련의 위원장 최상재다. 기자들이 가입해 있는 조직의 대표다. 1만 배로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이 단식을 한다.
얼굴이 말이 아니다. 하고 싶어 하는가. 언론자유라는 대의를 위해서 몸을 던지는 것이다. 보면서 눈물이 난다.
경찰은 이를 불법시위라며 연행한다. 이를 보면서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며 편안한 마음일까. 이를 보도하고 함께 단식을 해야 하는 것이 기자들의 할 일이 아닌가.
언론이 권력의 맛을 들인지 이미 오래다. 정권을 만들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자신과 오만에 차 있는 언론. 자신에게 이로우면 검은 것이 흰 것이 되고 불리하면 백조가 까마귀로 변한다. 보이는 것이 없다. 아니 권력만은 보인다.
노무현은 재임 때에도 증오했다. 왜일까.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분고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사롭게 지나치는 것이 없었다.
어디 견뎌 봐라. 노무현이 퇴임했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캔다고 난리를 쳤다.
기자들은 때를 만난 듯 마구 써 갈겼다. 조선은 봉하 마을에 짓는 노무현 사저가 아방궁이라고 했다. 그 기자는 현장을 보았는가.
보고도 그런 기사를 썼다면 눈 뜬 장님이다. 청맹과니다.
아니면 기자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테러리스트다.
이것을 정론이이라고 자신하는 기자는 손들고 나와 보라.
전직 대통령이 자살했다. 국민은 검찰과 언론이 노무현을 죽게 했다고 믿고 있다.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양심이 비명을 지르지 않는가.
검찰은 전직 대통령의 사돈의 팔촌까지 깡그리 뒤졌고 언론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검찰 빨대가 흘리는 대로 중계를 했다. 얼마나 충실한 언론인가. 얼마나 충직한 권력의 충견인가.
아무리 게을러터진 기자라도 자신이 쓴 기사는 볼 것이다.
아내도 보고 자식들도 볼 것이다. 친구들도 볼 것이다.
칭찬을 들을까. 사실대로 공정하게 썼다고 말 할 자신이 있는가.
길에서 마주치는 기자가 왜 얼굴이 벌개 지면서 죄송하다는 소리를 하는가. 벼룩이 간 만큼의 양심이 남아 있어서인가. 기자들에게 주는 촌지의 역사는 유구하다.
자유당 시절과 박정희 시절에도 촌지는 있었다. 촌지를 받으면서도 당당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촌지봉투를 찢어 헤어본 다음 흔들며 “겨우 요거야”했다는 경탄할 용기의 소유자다. 지방에 어느 기자는 퇴근 때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퇴근한다. 건설현장에 간다. 이유는 다 알 것이다.
이번 검찰총장 촌지사건에 대해서 기자협회가 한 마디 했다.
“앞으로 검찰 출입기자들이 불미스런 일에 대해 뼈를 깎는 자성을 요구하며 이를 계기로 한국기자협회 및 소속 회원사의 윤리행동강령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언제는 성명서 발표하지 않았나. 자성하지 않았나.
문제는 기자들의 의식이다. 죄의식이 없는 것이다.
누가 우리한테 떠드느냐다. 안하무인 독불장군이다.
이 땅에 언론자유는 없었다. 잡혀가 매 맞고 주리 틀리고 불구되고 감옥 가는 자유는 있었다.
‘보도지침’이 기사를 쓰는 등대였다. 등대만 보고 쓰지 않으면 파멸이다. 그러다가 언론자유를 쟁취했다. 참 많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들은 전설로 남고 사라졌다. 그런 선배들이 그립지 않은가.
지금 기자들은 어떤가. 선배들이 피로서 쟁취한 언론자유를 지키고 있는가. 동아투위를 모르는가. 조선투위를 모르는가. 동아사태를 모르는가. 90년 언론민주화 투쟁을 아는가. 그 선배들의 땀과 피로 얼룩진 언론민주화였다. 그게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제 언론은 권력의 충직한 청지기다. 그게 편하다. 떠들어 봤자 얻는 게 없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손해나는 장사를 왜 하는가.
오뉴월 복날에 개 패듯 참여정부를 두들겼다. 그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민주정부이기 때문에 만만했는가. 90년 언론민주화 투쟁 때 용기는 휴가 보냈나. 5.18민주항쟁 때도 매를 맞았다.
6.10 항쟁 때도 기자들은 매를 맞았다. 맞으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기자란 신분도 밝히지 못했다. 가슴 속으로만 통곡을 했나. 지금이 바로 통곡할 때가 아닌가.
'국경 없는 기자회'라는 게 있다. 해마다 '세계 언론자유 지수'라는 것을 발표한다.
지금 한국의 언론지수는 몇 점인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 지난해 47위에서 69위로 떨어졌다.
무려 22등급이나 폭락했다. 아프리카 나라들보다도 못한 지위로 강등됐다. 이럴 때 언론이 뭘 해야 하는가. 명예가 걸렸는데 왜 입을 봉하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 때 10등급만 떨어져도 대통령과 연관시켜 질타를 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다. 서슬 퍼런 기자들이다.
이들 신문은 69위 강등을 단신으로도 쓰지 않았다. 차마 부끄러워 쓰지 못한 것일까. 자신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에 차라리 입 다물고 있자고 했는가.
69위가 얼마나 창피한 자린지 알기나 하는가. 창피하지만 한 번 살펴보자. 우리보다 언론자유가 낫다고 평가받는 나라를 대충 살펴보자.
가나 27위, 나미비아 36위, 루마니아 50위, 아이티 58위, 대만 59위, 보츠와나 62위,
탄자니아 66위, 토고 67위, 불가리아 68위, 한국 69위.
오호 애재라 통재라. 눈물이 난다. 기자들도 눈물 좀 흘려라.
편파 왜곡 과장. 조중동문이 잘 알 것이다. 전문이니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가 무참하게 당했다.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 공동대책위원장인 안병훈이 술회했다.
"나도 언론계 40년 했는데 절실하게 반성합니다. 막판에는 우리도 언론들을 모두 다 포기했어야 했어요. 다 저쪽 편인 것 같으니까."
안병훈이 누군가. 바로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이제 알았나.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 보면 기자들은 당당하다.
비록 관은 안 썼어도 제왕이니 무엇이 겁나겠는가.
조중동이 정치인 하나 쯤 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래서 어깨를 펴고 산다. 그들 앞에서 공무원이던 군인이던 재벌이던 얌전하다. 공손하다.
기자에게 묻자. 그들과 인터뷰 끝내고 나올 때 뒤통수가 간지럽지 않던가. 간지럽겠지. 그게 기본이다. 아니라면 기자 아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냥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훌륭한 스승이다.
2차대전 중에 나치에게 아부하고 협력한 프랑스 언론이 있었다.
히틀러는 찬양하고 레지스탕스는 테러리스트였다.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는 민족에 반역했던 자들을 단호하게 처단했다.
반역 언론은 모두 발행금지 시켰다. 몰수했다. 간판 내린 것이다.
“우리의 땅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독일인”이라고 아부한 ‘오주르뒤’의 편집인 ‘조르주 쉬아레스’ 와 신문협회 회장으로 역시 나치독일에 아부했던 ‘누보 탕’의 편집인 ‘장 뤼세르’는 총살됐다.
그 밖에 반민족 부역자들은 언론계에서 추방됐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의 언론은 어떤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됐다. 조선과 동아의 사주였던 방응모와 김성수가 포함됐다. 당연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거품을 문다.
옳은가. 아니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을 크게 보도해야 언론이다. 과거를 씻는 길이다. 잘못을 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강변을 하고 협박을 해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기자들은 5공청문회를 기억할 것이다. 조선의 방우영, 동아의 김상만 등 언론인이 청문회에 섰다. 그들이 어떻게 독재에 아부, 아첨 했는지 낱낱이 들어났다. 정론지라면 신문 전면을 털어 대국민 사과를 했어야 한다.
독재에 아첨한 언론인이 벼슬을 했다. 언론인이라고 공직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시종으로서 충성한 대가라는데 문제가 있다.
오늘의 언론, 오늘의 기자가 왜 문제인가. 사실 보도는 언론의 기본이다. 기자들은 사실에 충실하고 있는가. 기자도 사람이다.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의도적 사실왜곡이고 의도적 과장이며 의도적 허위보도다.
4대강 문제. 세종시 문제.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와 헌재판결, 이를 제대로 보도한 언론이 몇이나 되는가. 이래서는 어디 가서 기자라고 명함 내 놓을 수 없다.
언론을 감시견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놈이 나쁜 짓을 하는지 감시하는 개라는 말이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두 눈 크게 뜨고 짖고 감시해야 하는 것이 감시견의 역할이다.
도둑이 들었는데 짖지 않는다. 주인이 야단을 친다. 짖지 않은 개가 오히려 주인을 문다. 감시견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권력이 타락하고 부패하는 데도 모르쇠다.
이런 감시견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된장 발라야 한다.
어떤가. 오늘의 한국 기자는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있는가. 정치권력과 사주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던져 주는 먹이를 받아먹기에 급급하다. 아니라고 펄펄 뛸 것인가.
법원은 오늘 정연주 전 KBS사장 해임취소 판결을 내렸다. 정치권력은 자기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번 판결에 대해서 장탄식을 할 것이다. 이게 역사다.
이번 판결에 대해서 기자들은 뭐라고 쓸 것인가.
기자노릇 제대로 하기 바란다.
2009년 11월 12일
(cL) 이기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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