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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물질과 운동의 양태-모두가 하나의 원 안에

장백산-1 2010. 3. 26. 22:39

 

 

가장 미세한 정신과 가장 거친 물질의 차이는
오직 단계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온 우주는 정신으로 불릴 수도 있고 물질로 불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정신을 정제된 물질로 부를 수도 있고,
육체를 응결된 정신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물질주의와 영성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오는 모든 문제는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원 안에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원 안에서 움직입니다. 곧은 직선도 무한으로 확장되면 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혼의 영원한 타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은 원을 완성하여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힘은 순환을 완성하도록 작용합니다.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힘은 무한한 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시 신에게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현대 사상의 도처에서 이러한 경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과학이 의미하는 바는, 사물들이 자신의 본성으로만 설명되며, 우주에 존재하는 물상을 설명하기 위한 어떤 외부적 존재나 실체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화학자들은 화학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나 유령 따위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물리학자들 역시 그들이 말고 있는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존재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종교에 적용하고자 하는, 과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이런 자기 충족적 설명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에 와서 종교가 붕괴하는 원인입니다.
모든 과학은 내부로부터 현상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기존 종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현상과 내면의 본성은 둘로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본성은 모든 것이 존재하는 방식, 모든 것이 운행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물질과 정신 사이에 거대한 간극을 만듭니다. 우리는 정신이 물질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하나의 본성입니다. 그 중 반은 지속적으로 다른 반쪽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다양한 감각의 형태로 정신에 밀려듭니다. 감각은 단지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에 불과합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힘은 내면의 힘을 불러냅니다. 내면의 힘은 외부의 힘에 반응하거나 벗어나려는 의지로서, 우리는 이것을 생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물질과 정신은 실제로 힘(에너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분석해 보면 당신은 그들의 뿌리가 하나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힘이 내면의 힘을 불러낼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은, 그들이 어딘가에서 서로 만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외부의 힘 또한 의식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외부의 힘과 내면의 힘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당신이 사물의 뿌리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단순하고 보편적인 본성을 드러냅니다. 동일한 힘이 물질로 나타나기도 하고, 정신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물질과 정신을 다르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신은 물질로 변화하며 물질은 정신으로 변화합니다. 생각의 힘은 신경의 힘, 근육의 힘이 됩니다. 근육의 힘, 신경의 힘은 생각의 힘이 됩니다. 물질로 표현되든, 정신으로 표현되든 자연은 모두 이 힘입니다.
가장 미세한 정신과 가장 거친 물질의 차이는 오직 단계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온 우주는 정신으로 불릴 수도 있고 물질로 불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불리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정신을 정제된 물질로 부를 수도 있고, 육체를 응결된 정신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물질주의와 영성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오는 모든 문제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화학이나 물리학, 천문학이나 생물학과 같이 가장 물질적인 과학을 하나 취하여 그것을 공부하며 연구를 심화해 나가십시오. 그러면 거친 형태들이 녹기 시작하여 점점 더 미세해집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물질적인 것들을 비물질적인 것들로 엄청나게 비약시킬 수밖에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거친 입자는 미세한 입자로 녹아 들고, 인식의 모든 분야에서, 물리학은 형이상학으로 변하게 됩니다.


어떤 사물의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마침내 그 사물은 우리 이성으로는 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사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집어 듭니다. 우리는 그것이 유한한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이성의 한계를 넘어갑니다. 우리는 그것의 모든 특질, 가능성, 능력, 관계성의 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한이 되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꽃 한 송이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것은 유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꽃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구라도 그 꽃 한 송이에 대한 지식의 끝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한으로 시작한 그 꽃은 무한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꽃에 대해, 모래 알갱이에 대해, 물리적 세계에 대해, 그리고 모든 생각에 대해 사실이라면, 복잡 미묘한 인간인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백 배도 넘는 진실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유한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존재라는 딜레마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대양에 출렁이는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는 대양이지만 또한 대양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것은 대양이다.”라고 말할 때 거기 포함되지 않는 어떤 파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양’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하나의 파도에 적용됩니다.
그리고 대양의 다른 모든 파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파도는 대양과 구별됩니다. 이 무한한 존재의 바다에서 우리 역시 파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를 원할 때, 우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우리는 무한이 되었습니다.


밤낮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활동하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1초 동안만 멈춘다 해도, 우주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우주 전체에 한 순간도 그 에너지가 작동하지 않는 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전체 에너지 안에는 분해(소멸)를 포함하는 순환의 법칙이 있습니다.
‘창조’에 해당하는 개념을 산스크리트 단어로 적절히 번역하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투사’입니다. ‘창조’라는 단어는, 실재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 단어가 아닙니다. ‘창조’란 어떤 것이 무로부터 출현되어 나온다는,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실재가 생성된다는, 비존재가 존재가 된다는, 가장 생경한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투사’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더 미세해지면 함몰합니다. 그리고 휴식 기간이 지나면 그 전처럼 전체 우주가 다시 앞으로 투사됩니다. 그리고 동일한 조합, 동일한 진화, 동일한 표출이 진행되면서 전처럼 활동을 유지합니다. 그러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분해 되고 점점 더 미세해지고 마침내 전체가 함몰하지만, 언젠가 또다시 나타납니다.
이렇듯 우주는 파도의 움직임처럼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다시 나타나기를 영원히 반복합니다. 시간, 공간, 인과율은 모두 이 법칙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에 태초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시작이나 끝에 관하여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전 어느 곳에서 ‘태초’와 ‘종말’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특정한 사이클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씨앗은 나무에서 온 것입니다. 그것은 즉각 나무가 되지는 않으며, 휴지기 혹은 섬세한 잠재 활동기를 갖습니다. 씨앗은 언젠가 토양 아래서 발아해야 합니다. 땅에 묻힌 씨앗은 분해되고 퇴화합니다. 그리고 그 퇴화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태초에 이 우주 전체는 씨앗의 미세한 활동기간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게 활동하며 드러나지 않게 움직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혼돈이라 불렀습니다. 그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투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연속되는 생명의 진화를 생각해 봅시다. 한 쪽 끈에는 원형질이, 다른 쪽 끝에는 완전한 인간의 형상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전체 시리즈가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 끝에서 우리는 완전한 인간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태초의 원형질 안에도 완전한 인간이 들어 있습니다. 원형질은 가장 높은 지성의 퇴축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퇴축된 지성은 자신을 풀어내어 마침내 가장 완전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애초에 어떤 기계에 무언가를 집어넣지 않는 한 당신은 그 기계로부터 어떤 것도 생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 마인드스테이
글쓴이 : 행변(行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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