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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동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이다...

장백산-1 2010. 4. 7. 00:12

MT

위대한 성공은 파동이 부른다

[창업칼럼]역사 속에서 배우는 승자의 언어

                                                                                 정보철 창업 칼럼니스트|2009.12.01 11:35

 

                                 '우주와 나' 마치 하나인듯....

                                 물질이든 의식이든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근본은 하나
                                         

 

'저승세계'의 법칙은 죽은 산자가 만날 수 없다. 그 이전에 산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인 카론의 강을 넘을 수조차 없다. 단 한번도 깨어지지 않던 저승의 법칙이다. 그러나 엄격한 이 법칙도 죽은 연인을 찾아가는 오르페우스 앞에서는 한갓 모래성일 뿐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르페우스는 초인적인 음악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카론의 뱃사공은 오르페우스를 저승세계로 데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연주소리에 순간적으로 방심했다. 죽음의 신 앞에 선 오르페우스는 또 한번 애절한 사랑의 노래를 연주한다. 그 순간 사랑했던 에우리디케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산자인 오르페우스가 죽은 자인 에우리디케를 품에 안은 것이다. 이로써 저승세계의 제1법칙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저승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스신화는 차분히 적고 있다. 문제는 남는다. 그토록 견고하던 저승세계의 법칙이 어떻게 해서 깨진 것인가.

그것은 파동이다. 사람을 포함 모든 물체는 고유의 파동을 갖고 있다. 파동이 같으면 증폭된다. 파동이 일치하는 것을 공명(共鳴)이라 한다. 진폭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파동공명을 일으켜 일시에 죽음의 법칙을 무너뜨린 것이다.

신화속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1831년 영국 멘체스터 근교 브로스턴다리가 갑자기 무너졌다. 무거운 물체가 지나가거나 강한 태풍이 부는 등 어떤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리가 녹슬거나 낙후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하자면 영국 캘버리부대가 행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대원의 행진 박자가 다리 고유의 파동과 일치했던 게 원인이었다. 공명에 의한 다리붕괴로 기록돼 있다.

공명의 힘은 신화의 세계나 현실의 세계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공명이 주는 힘은 무한하다. 연인(戀人), 도반(道伴), 동료(同僚), 동업자(同業者)간에 파동이 일치하면 못할 일이 없다. 비즈니스 세계를 들여다보자.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히는 혼다그룹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에게는 후지사와 타케오라는 파트너가 있었다. ‘기술의 혼다’와 ‘영업의 후지사와’가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두사람이 일궈낸 파동공명을 일으켜 엄청난 성과를 일궈냈다. 늦게 출발한 자동차업체인 혼다를 단기간에 세계적인 유력 업체로 떠오르게 했다.
                               
HP의 휴렛과 패커드, 맥도널드의 레이 크록과 해리 손번, 디즈니의 이브이워크스와 디즈니,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와 모리스 클라크 그리고 헨리 플래글러 등 이인삼각의 사례는 비즈니스 세계 곳곳에 있다. 공명 이끈 위대한 성공사례다. 흔히들 동업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되는데 이는 공명의 힘을 모르는 소치다.

공명은 자신과 파을 맞추는 것이다. 파장을 맞추면 증폭된다. 1+1=2가 아니라 1+1=3이나 그 이상이 되는 것이 공명이다. 두사람의 힘을 합친 것 이상이다. 공명에 의해 운영되는 기업은 경쟁력은 커지고 피해는 최소화된다. 실패는 줄어들고 위험은 분산된다. 성공의 속도는 가속화된다. 산술적 증가가 아니라 기하학적 증가를 넘어 기하급수적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칼 융'이 주장한 '동시성현상' 이라는 것도 공명의 한부문이다. 동시성은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 내부와 외부에서 사건에 작용하는 힘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동시성현상은 주의 깊게 보면 우리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단 절실히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한해서다. 갈망이 필요조건이다.

국내 최고의 축제로 인정받는 함평 나비축제도 동시성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전남 함평에만 있는 나비가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더욱이 더 남쪽나라인 제주도 등지에 더 많은 종이 더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석형 함평군수에게 유채꽃이 필연처럼 다가왔다. 어느 날 개천가에 핀 유채꽃을 보면서 순식간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나비다.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나비다."

새로운 축제생각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 군수의 갈망이 외부에서 나비를 불러 온 것이다.
함평나비축제는 '칼 융의 풍뎅이'로 회자되는 '동시성현상'에 못지않은 대발견이다. 동시성현상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인과의 법칙'이 확고한 서양과학으로서는 놀랄만한 방향 전환이었다.

융은 사실 이 동시성원리 발표를 주저했다. 동시성현상은 전통과학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양의 시각에서는 이는 어렵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禪)용어로 ‘줄탁동시'啄同時

에서 찾을 수 있다.


줄탁동시는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 어미닭이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줄과 탁이 동시에 이뤄져야 닭의 알이 부화가 가능하다는 비유다. 줄탁의 시기를 잘못 그르치면 생명이 계승되지 않는다.

 

 

                              이 전기 신호는 근육세포 사이에 빠른 확산을 보이며 몸 전체에 리듬 있는

                                     진동을 완성한다. 같은 리듬으로 진동하다가 증폭되어 하나로 작동하는 것을

                                     공명(resonance)이라 한다. 이러한 공명으로 뉴런들은 거리를 초월해 의사소통

                                     을 하며 뇌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줄탁동시든 동시성현상이든 이는 공명의 한 현상이다. 공명은 한편으로는 창조에너지로 또 한편으로는 행동에너지로 변환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위대한 일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공명을 통해 이뤄졌다. 공명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정신과 육체, 신과 인간 등 모든 영역을 넘나든다.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우주의 원리이다.

앞서 사람을 포함, 모든 물체는 고유의 파동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동을 직접 맨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아니다. 물체의 파동은 기계로 측정이 가능하다지만 사람의 파동은 차원이 다르다.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등지에서 이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려오고 있다.

허나 방향을 전환하면 인간의 파동은 의외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의 파동이 정신영역이라는 점에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와 우선가치를 찾아보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시대에 걸맞게 소유에 대한 태도를 우선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에 굶주린 사람들과 존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파동은 확연히 다르다. 다수의 사람들은 물질에 굶주려 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여기 적절한 일화가 있다.

"아이에게 수박을 주려했거든."

냉장고를 청소하면서 다소 늙은 아주머니가 말을 건넸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젊은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몸이 드러나는 작은 옷을 입은 아이는 연신 냉장고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수박이 썩어 문드러지고 말았네."

막상 수박이 썩고 보니 썩기 전에 수박을 아이에게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난 모양이다.

이것은 결코 우화가 아니다. 매일 이런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파악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공명의 의미를 알 리 없을 것이다.

손을 내미는 범위도 그 사람의 파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혼자 혹은 가족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어울림 속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쾌락에 대한 태도, 기쁨과 재미에 대한 인식, 먼저 주는 것과 받는 것의 차이 등에서도 파동진폭색채는 확연히 다르다.

파동은 직업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사업가의 파동, 정치가의 파동, 공무원의 파동, 예술가의 파동, 종교인의 파동, 운동선수의 파동이 각기 다르다. 삶의 가치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파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맞다. 파동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게 그들 직업의 세계다.

파동이 맞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유능해도 불요불급한 일이 될 것이다. 공명이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불요불급한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지한 것이 그 하나요, 이해관계에 얽매인 것이 그 둘이다. 특히 이해관계에 얽매여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파트너로 삼는 사람들을 보면 그 끝이 보인다. 허망한 끝을 말하는 것이다.

파동은 운명과 같은 것은 아니다.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파동이 달라진다. 파동이 달라지면 역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결과치도 다를 것이다.

파동에 대한 또 다른 이해는 주파수이다. 라디오를 들을 때 주파수가 잡히지 않으면 잡음이 인다. 주파수에서 멀어질수록 잡음이 거세진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 나오더라도 짜증이 난다. 거슬리는 마음에 자꾸 라디오를 쳐다보게 된다. 이리저리 채널을 맞춰본다. 그런데도 여전히 깨끗하지 못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디오가 ‘철전지 원수’가 된다.

반면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면 우리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 자리에 누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듣다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라디오를 잊는다. 우리가 공기를 잊듯이.

주파수가 같은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행복이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고양된다. 날씨가 좋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위대한 일들이 쏟아질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들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다.

 

                                              인연緣...........



그러나 주파수가 같은 즉 파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용어가 있다. 일백년에 한번 물위에 떠오른 눈먼 거북이가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 어려운 것을 비유한 말이다. 허나 어렵기 때문에 더욱 만나야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오르페우스처럼 저승세계를 찾아갈 필요는 없다. 현실 세계에서 만나야 한다. 각자의 만남에 대해서는 행운을 빈다. 반드시 만나서 승자의 종을 울려라. 여럿이서 울리는 공명 승자언어요, 혼자만의 파동 패자의 언어다.

 

출처 : 생활 · 운동 자연치유 연구소
글쓴이 : 이현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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