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 당대에도 극찬…고려 때는 화쟁국사 시호
<사진설명>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 원효는 이곳 분황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여러 저술을 펴냈다.
이번에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화쟁에 대한 이해는 참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화쟁은 서로 다치지 않고 화해롭게 지낸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원효의 화쟁을 규명해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도, 또 어느 정도 규명해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듯 보이는 것도 화쟁이 언어의 문제가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은 자주 다투고, 세상은 평온한 날이 적습니다. 나는 옳은데 당신은 그르다는 시비가 자주 일어나고, 입씨름이 격해지면 주먹이 오가며, 주먹이 대포로 바뀌면 전쟁입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자기의 고집을 꺾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백가(百家)의 서로 다른 논쟁을 어떻게 조화하고 화해시킬 수 있는지는 사람들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7세기 삼국통일 전쟁의 와중에 살았던 원효는 화쟁의 방법을 모색해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라는 명저를 남겼습니다. 원효가 살았던 이 7세기는 우리역사상 가장 험난한 전쟁의 완전한 소용돌이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이 일어나고 낙엽처럼 목숨이 떨어지던 불운한 시대였습니다. 삼국 자체가 소용돌이였고 오늘날 생각하는 민족의식이고 뭐고 그런 거는 찾아볼 수 없는 이전투구의 장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나라와 일본까지 이 싸움에 개입하고 있을 정도로 동아시아 전체가 혼란의 양상을 보이고 있을 때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원효가 이러한 7세기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 이러한 화쟁의 논리를 전개하고 그 방법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원효에게 있어서 화쟁은 세계와 인생의 본래 모습을 의미하는 당위이면서 동시에 그의 학문 방법론이자 실천행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주목받아 왔습니다. 9세기 초의 기록인 ‘서당화상비문(誓幢和上碑文)’에서는 『십문화쟁론』을 원효의 대표적인 저술로 인식하면서 화쟁의 의미를 부각시켰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훗날 화쟁국사(和諍國師)에 추봉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칭송만 했던 것은 아니고 당시에도 반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효의 이 화쟁방법이나 이론에 대해 비판했던 사람도 있었고 학문적인 토론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면 그게 뭐고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세한 글은 아니고 단 몇 줄만 남아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그 시대 대부분은 지성인들은 그 책을 훌륭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화쟁사상은 원효사상의 핵심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은 원효가 “백가의 다른 견해와 쟁론의 극단을 조화함으로써 일대의 지극히 공정한 논법을 이루었다(和百家異諍之端 得一代至公之論)”고 찬양했습니다. 지난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각국사의 이 평가는 주목할 만합니다. 대각국사는 그 이전에 이루어진 모든 학문적 성과를 연구사적으로 검토한 토대 위에서 이런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천단(?∼1259)은 ‘신라시대에 원효공이 우뚝 나타나서 백가의 이쟁(異諍)을 화합하고, 이문(二門)을 합하여 돌아감을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의천과 하천단은 원효를 ‘화백가이쟁(和百家異諍)’한 인물로 평했던 것입니다. 특히 의천은 ‘원효와 의상은 동방의 성인이다. 그러니 이 분들에게 국사의 호를 올리는 게 좋겠다’고 건의합니다. 이에 따라 의천의 형인 숙종은 6년(1101) 8월 계사에 조서를 내려, 원효에게 화쟁국사라는 시호를 추증하기도 했는데, 이는 고려조정에서 원효사상의 특징을 화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구체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부식(1075~1151)은 ‘화쟁국사영찬(和諍國師影贊)’을 지었는데, 이로써 고려시대에 화쟁국사의 진영이 그려지고 시호가 통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명종(1171~1197) 때에는 분황사에 화쟁국사비가 건립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비가 다 깨져 없어지고 비의 받침돌만 남아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도 분황사에 와서 이를 확인하고 ‘차신라화쟁국사지비적(此新羅和諍國師之碑蹟)’이라고 새겨놓았습니다. 예전에 동국대에서 발굴하다 찾아낸 조그마한 비 한 조각만 오늘날 남아있을 뿐이지만 다행히도 탁본은 있습니다. 원효는 『십문화쟁론』 2권을 저술했습니다. 원효의 여러 저술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당나라와 일본에 유포되었고, 당나라에 왔던 진나문도(陳那門徒)에 의해서 멀리 천축에까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고려초기의 균여는 『십문화쟁론』을 몇 차례 인용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2세기 후반에 활동한 곽심(廓心)의 『원종문류집해(圓宗文類集解)』에도 『십문화쟁론』에 대한 언급이 보입니다. 특히 일본에서도 원효의 이 책은 오랜 세월 유통되었던 것 같습니다. 진해(珍海, 1091~1152) 및 응연(凝然, 1240~1321)도 『십문화쟁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14세기 전반까지도 일본에 원효의 『십문화쟁론』이 유통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해인사의 사간장경(寺刊藏經) 중에 『십문화쟁론』 상권의 제9, 제10, 제15, 제16, 제30, 제31장의 목판이 남아오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제30장과 제31장은 마멸이 매우 심한 편입니다. 대개 고려시대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겨우 몇 판만 전합니다. 서당화상비문(誓幢和上碑文)에서도 『십문화쟁론』을 강조해서 서술했습니다. 대개 2000자 정도 되는 비문을 썼는데 『십문화쟁론』에 대해 200자 정도 그러니까 10분의 1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9세기 초에도 이미 『십문화쟁론』에 대한 평가가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문의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십문화쟁론』은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원음(圓音)에 의지하였으나,…(마멸)… 비처럼 흩뿌리고, 부질없는 공론(空論)이 구름처럼 분분하였다. 혹자는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설은 그럴듯하나 타인의 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서, 큰 강물과도 같이 많은 지류를 이루었다.…(마멸)…산을 버리고 골짜기로 돌아간 것과 같고,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비유컨데, 청색과 쪽풀은 본체가 같고 얼음과 물은 근원이 같은데, 거울은 모든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이 수천 갈래로 나누어 지는 것과 같다.…(마멸)…융통하여 서술하고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이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두 좋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훌륭한 논술이라고 찬양했다는 『십문화쟁론』, 이 명저도 세월의 허망한 바람에 흩어지고 지금은 겨우 3판 만이 해인사에 전해오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역시 어떻게 화쟁을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종교와 문화를 떠나 다툼을 화해시키고자 했던 것은 한결 같았지만 그 방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십문화쟁론』이 현재 전해지지 않아 그 전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여기저기 남아있는 원효의 20여 종의 저술을 잘 읽어보면 화쟁의 방법을 이용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구절들이 중간 중간에 보입니다. 이 점에 착안한 연구는 박종홍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습니다. 그는 화쟁의 논리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전체적으로 열어서 보고 통합적으로 보는 ‘개합(開合)’과 총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보는 ‘종요(宗要)’, 긍정과 부정의 ‘입파(立破)’, 주거나 빼앗는 ‘여탈(與奪)’, 무엇이 같고 다른가 하는 ‘동이(同異)’, 있고 없음의 ‘유무(有無)’, 두 극단을 떠나 떠나되 가운데도 아니라는 ‘이변이비중(離邊而非中)’, 한 가지 맛이라는 ‘일미(一味)’와 언어를 뛰어 넘는 ‘절언(絶言)’ 등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얼마 전 정년퇴임을 하신 김형효 선생 또한 원효의 화쟁 논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원효 철학의 의의는 단적으로 상반된 두 세계를 묘합(妙合)하는데 있음이 틀림없고, 이런 사유의 논리를 스스로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즉 원효의 화쟁정신이란 두 가지를 융합하나 하나로 획일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효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토 시게끼라는 일본사람은 원효의 화쟁 논리가 ‘무이이불수일(無二而不守一)’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만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갈 부분은 아니지만 일단 원효가 이런 단어를 즐겨 썼고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은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둘이 아니되 하나 또한 고수 않는 신묘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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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극단 긍정-부정 포함하는 논리 전개 다른 것 똑같이 만드는 획일화는 反화쟁
이번에는 『금강삼매경론』의 한 구절 살펴보고 원효의 화쟁론에 대해 계속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설명>서당화상비편 탁본. 이 비는 신라 애장왕(800~808) 때 원효의 후손인 설중업이 원효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
앞의 두 구는 속제를 녹여 진제로 만들어 평등의 뜻을 나타낸 것이요(前之二句 融俗爲眞 顯平等義)
아래의 두 구는 진제를 녹여 속제로 만들어서 차별의 문을 나타낸다.(下之二句 融眞爲俗 顯差別門) 이것을 총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실되다 속되다라고 말하는 것은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그러므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곧 그것은 일심이고 하나를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본체를 들어 둘로 삼아 이와 같이 이름해서 일심이문이라고 한다.(摠而言之 眞俗無二而不守一 由無二故 卽是一心 不守一故 擧體爲二 如是名爲一心二門)불교를 처음 듣는 분들은 이 말이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사실 불교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도 헤매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원효의 논리는 양자택일이나 변증법적인 통일의 논리와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남쪽이냐 북쪽이냐, 흑이냐 백이냐, 찬성하느냐 찬성하지 않느냐를 캐묻습니다만 A가 아니라고 반드시 B인 것은 아닙니다. A가 아니면서 동시에 B도 아닐 수 있는 것이고 A면서 B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양자택일로 가지 않습니다. 또 변증법은 상반된 두 가지 관계를 동시에 보기보다는 정이 있고 반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양자를 모순이나 양립할 수 없다고 간주하고 합을 도출해 냅니다만 불교에서는 양자가 함께 존립할 수도 있다고 보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나타냅니다. 그럼 원효가 자주 사용했던 용어들, 즉 둘을 융합하되 하나는 아니라는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 두 극단을 떠나되 가운데도 아니라는 ‘이변이비중(離邊而非中)’ 돌쩌귀에 들어맞듯 묘하게 계합한다는 ‘묘계환중(妙契環中)’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둘이나 변(邊)이라고 하는 것은 두 극단입니다.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있다거나 없다거나 같다거나 다른 이러한 극단을 변이라고 합니다. 이 두 극단을 떠나는 것 이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그럼 중도는 100센티의 중간인 50센티를 말하는 것이냐 이런 게 아닙니다. 또 앞장서면 사진도 찍히고 회유, 협박을 당하고 또 너무 뒤에 있으며 손가락질 받으니까 적당히 중간 쯤 회색분자로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나서는 게 옳을 때 나서는 것이 중도고 따지는 게 옳을 때 따지는 것이 중도입니다. 여기서 중은 가운데 중이 아니고 적중의 중입니다. 딱 들어맞는 것 그것이 바로 적중입니다. 그런데 적중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화성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려고 한다면 지구도 움직이고 우주선도 움직이고 화성도 움직이는 종합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고도의 분석과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중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데 거기에 딱 들어맞는 것, 마치 게임기에서 돈이 좌르륵 쏟아지는 순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이런 것을 장자에서는 환중(環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환이라고 하면 고리지요. 그 고리에 딱 들어맞듯 또 돌쩌귀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묘하게 계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변이비중(離邊而非中)’이라, 그 극단을 떠났다고 해도 중간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끝일 수도 있고, 중간일 수도 있고, 공중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겁니다. 원효는 있다거나 없다거나(有無), 긍정한다거나 부정한다거나(立破), 전체적으로 열어서 말을 하거나 통합적으로 말하거나(開合), 이론적이거나 사실적이거나(理事), 하나거나 많거나(一多), 같거나 다르거나(同異) 상반된 두 개념을 대립이나 모순으로 파악하기보다 하나도 아니되 둘도 아닌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의 논리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독립된 실체가 없습니다. 노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었지만 불교에서는 어떤 고정된 실체도 없기 때문에, 모두가 움직이기 때문에, 모두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나도 변하고, 사물도 변하고, 날씨도 변하고 다 변한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기본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게 모든 것은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 즉 수없이 많은 것들의 인연으로 얽혀서 되어있고, 거기에 실체란 없으며 그저 무상하고 가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곧 공(空)이라고도 합니다. 무아(無我)와 무상이 곧 공입니다. 그런데 이 공에 집착해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악취공(惡取空)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공병(空病)을 다스리기 위해 공(空)도 공(空)이라고 합니다. 즉 공공(空空)입니다. 이 공공에 다시 집착하는 것을 없애기 위하여 공공 또한 공이라고 부정합니다. 이를 삼공(空相亦空, 空空亦空, 所空亦空)이라고 합니다. 원효도 삼공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그는 또 『열반경종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보신불의 공덕은 모습도 벗어나고 자성에서도 벗어나 있다(報佛功德 離相離性). 자성에서 벗어났기에 상주하는 속성에서 벗어나 지극히 역동적이다(以離性故 離常住性). 지극히 역동적이라 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그래서 상주함이 없다(最極暄動 無所不爲 故說無常).
<사진설명>기신론해동소.그리하여 양면긍정이나 양변부정까지를 포함하는 사구(四句)의 논리로 화쟁을 시도합니다. 같고 다름(同異)에 관한 원효의 설명을 『금강삼매경론』에서 살펴보지요. 다음의 이 구절은 여러분들에게 대단히 애매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유가 대단히 단순하기 때문이지 원효에게 문제가 있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같다면 무엇을 가지고 같다고 말하는 것인가, 다르다면 무엇을 가지고 다르다고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 결과적으로 같다,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양 극인데 그게 서로 동전의 양면입니다.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같은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문을 보겠습니다. 같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같으면서 다른 것이고(不能同者 卽同而異),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곧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不能異者 卽異而同也). 同이란 다른 것에서 같은 것을 알아내는 것이요(同者 辨同於異), 異란 같은 것에서 다른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異者 明異於同). 같은 것에서 다른 것을 밝힌다는 것은(明異於同者), 같은 것을 쪼개서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非分同爲異也). 다른 것에서 같은 것을 알아낸다는 것은(辨同於異者), 다른 것들을 녹여서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非銷異爲同也). 실로(良由) 同이란 다른 것들을 녹여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同非銷異故), 그것이 (언제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不可說是同), 異란 같은 것을 쪼개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異非分同故), 그것들이 (언제나)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不可說是異). 다만(但以) 다르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요(不可說異故 可得說是同), 같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不可說同故 可得說是異耳). 말한다든가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둘이 아니고, 별개도 아니다(說與不說 無二無別).원효에 의하면, 같은 것(同)과 다른 것(異)도 서로 바라보고(相望) 있고 서로 비추고(相照) 있는 관계일 뿐 평행선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설명이 되는 거죠. 이게 화엄철학의 기본 아닙니까. 아프리카에 가서 내가 너무 피곤해 앉아서 지나가는 흑인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그 아프리카 사람들은 지나가며 날 구경하고 있습니다. 화엄철학에서는 샹들리에 구슬들이 수천 개 있는데 그 구슬들 하나하나는 모든 것을 받고 반사하고 서로 얽히고설키어 있듯 모든 것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같다(同)고 하는 것도 다른 것(異)을 녹여서 다 똑같이 만든 것이 아니다(辨同於異者 非銷異爲同也).” 원효의 이 말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다 몰아낸 뒤에 같은 견해로 획일화하는 것이 화쟁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가끔 획일화하려고 도모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똑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등이란 학의 다리를 끊어서 오리 다리에 잇는 것도, 산을 무너뜨려 골짜기를 메우는 것도 아니다.” 『직지심체요절』을 쓴 고려 백운(白雲)화상의 이 말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면 많은 시비를 종식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의 화쟁논리가 더욱 가치를 발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인정에도 도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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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기·때 강조…Yes와 No 절묘한 사용 합리적이면서 인간적인 면의 조화 추구
<사진설명>원효를 사랑한 민중들은 그의 이름을 신성시 했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원했다. 북한산 원효봉도 그래서 생긴 이름 중 하나다.
원효가 ‘같다’라고 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을 가마솥에 넣어서 부글부글 끓여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획일화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만약 서로 다른 견해로 다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원효는 이 경우 상대방의 뜻에 맞춰서 예스(Yes)와 노(No)를 하는 ‘순불순설(順不順說)’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예스와 노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면서 예스라는 겁니다. 또 상대방 뜻과 다르게도 말하고 다르지 않게도 말하는 ‘비동비이이설(非同非異而說)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이 잡히지 않으시죠. 그럼 원효의 글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식기방편자(識機方便者)경에서 말한 것과 같이, ‘순불순설 비동비이’하면서 진여에 상응하게 설하는 것이다.(如經順不順說 非同非異 相應如說故順不順說者) 만일 저 사람의 마음에 수순해서 설법하면 잘못된 고집을 움직이지 않고(若直順彼心則 不動邪執) 수순하지 않고 설하면 바른 믿음을 일으키지 않는다(設唯不順說者則 不起正信). 그가 바르게 믿는 마음을 얻고 본래의 사집(邪執)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爲欲令彼得正信心 除本邪執故) 반드시 수순해서 설하거나 혹은 수순하지 않고 설해야 하는 것이다(須或順或不順說). 또 다시 도리에만 수순하여 설하면 바른 믿음을 일으키지 못하는데(又腹直順理說 不起正信), 그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이다(乖彼意故). 도리에 수순하지 않고 설한다면 어찌 바른 이해를 낳게 하겠는가?(不順理說 豈生正解)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違道理故) 바른 믿음과 이해를 얻으려면 수순하거나 수순하지 않으면서 설한다.(爲得信解故 順不順說也) 만약 모든 이견으로 쟁론이 일어날 때(若諸異見諍論興時), 유견(有見)에 동조해서 말한다면 공견(空見)과 다르고(若同有見而說則異空見), 공집(空執)에 동조해서 말한다면 유집(有執)과 달라진다(若同空執而說則異有執). 같다거나 다르다고 하는 것이 점점 다툼이 성할 것이고(所同所異彌興其諍), 또 다시 저 두 견해에 동조한다면 스스로 모순되고(又復兩同彼二則自內相諍), 만약 저 둘과 다르게 하면 둘과 서로 다툴 것이다(若異彼二則與二相諍). 그러므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게 설한다(是故非同非異而說). 같지 않다는 것은 말과 같이 취해서 모두 인정하지 않는 때문이고(非同者 如言而取 皆不許故). 다르지 않음이란 뜻을 얻어 말함에 허락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非異者 得意而言 無不許故). 다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저 사람의 정에 어긋나지 않고(由非異故 不違彼情), 같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서(由非同故 不違道理), 정에도 도리에도 서로 바라보며 어긋나지 않는다(於情於理 相望不違). 여기에 따르면 원효는 때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의를 할 때도 그렇죠. 듣는 분들이 밥은 먹었는지, 휴식시간은 지났는지, 내가 무엇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효과적인지 등등.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임기를 그만두고 하야해야하는지도 때를 잘 알아야겠죠. 사실 불교에서는 때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반야심경의 첫 시작도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로 시작됩니다. 사실 때를 안다는 것이 바로 역사의식인 것입니다. 이와 함께 상대방의 근기도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 어떤 분들이 계신지, 연령대는 어떤지, 어떤 직업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등등을 잘 알아서 말을 해야 효과적인 강의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불교계에도 친일파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데 한 스님이 친일파의 거두였는데 현재 독립유공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셔서 “그 분 독립운동 했지. 참 대단한 분이야.” 저는 대답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 분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훗날 크게 변절을 했거든요. 그런데 또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다섯 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그 분에 대해 조사를 해봤는데 이러저러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제서야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시더군요. 그럼 만약 처음부터 내가 “선생님 그거 아닙니다”’라고 강경하게 말한다면 당연히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대화도 되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거고. 그럼 반대로 그 분 비위를 맞추려고 고개만 끄덕이며 “예,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물론 이것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원효는 일단 상대방 기분에 맞춰 ‘예스’라고 대답하라는 거지요. 그게 바로 순설(順說)하라는 것입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그렇게 수긍한 뒤에 “자네 말도 일리도 있지만 이런 문제도 있지 않는가”라고 동시에 두 가지를 얘기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눈여겨봐야 할 게 있는데 마지막 ‘정에도 도리에도 서로 바라보며 어긋나지 않는다’는 구절입니다. 살다보면 인정과 도리의 문제로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주 합리적이라는 말로 재단하려 하지만, 인정 없는 세상은 분명 삭막합니다. 근대 이후 우리가 배워온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합리’입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합리적으로 말하고 늘 합리 합리였습니다. 합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리(理)’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만 강조하면 어떤 문제가 생겨나느냐하면 재미가 없고 인정이 없게 됩니다. ‘리’라는 것은 자연의 이법이거든요. 인생은 자연의 이법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정이에요. 우리 한국사회는 학벌도 따지고 지연도 따지고 문제가 많지요. 그러나 대신 따뜻한 정이 있잖아요. 무작정 나쁘다고 할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종교라는 것은 정이 굉장히 강한 것입니다. 자비이고 사랑이거든요. 고대에도 소도(蘇塗)라는 신성시되는 지역에는 범죄자가 들어와도 붙잡아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명동성당이나 조계사 같은데 가서 데모하잖아요.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종교고 인정이거든요.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 우리아이가 범법을 했다고 해봐요. 그러면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멱살 딱 잡고 우리 아이 파출소로 데려다줘야 합니다. 잘못했으니까요. 그러면 그런 부모가 잘했다고 말해야 합니까? 부모이기 때문에 숨기고 감싸고 달래고 하면서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게 정이라는 겁니다. 정만 있어도 문제고 정이 너무 없어도 문제입니다. 도리가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도리만 치중해도 문제라고 원효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설명>오어사에 소장돼 있는 원효의 삿갓.15년 전 쯤 원효의 이 구절을 고려대 명예교수인 김충열 선생님한테 막걸리 마시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참, 재미있다. 참, 재미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더니 얼마 후 우리나라와 중국의 외교문제와 관련해 한 신문에 글을 썼는데 ‘우리는 합리적(合理的)으로 일을 하지 않고 합정적(合情的)으로 일했는데 참 잘했다.’고 썼던 것이 기억납니다. 보십시오. 원효가 얼마나 인간적인 얘기를 하고 있습니까.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도리로만 얘기를 하고 인간미를 빼버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효는 정에도 어긋나지 않아야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때 저는 학점이 짜기로 유명했습니다. 학생들이 지나갈 때 “저기 소금 지나간다”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우쭐했어요. ‘그래 소금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하고 썩지 않는 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소금이죠. 그 무렵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왔어요. “선생님 제가 이번에 시험을 너무 못 쳤습니다. 그런데 점수를 잘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합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성적을 내 마음대로 주는 게 아니야. 네가 시험 본 결과에 따라 주는 거야.” 여러분도 그 때 제가 했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시죠.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 뒤 제가 물었죠. “그런데 왜 시험은 못 봤나?” “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얘기 한 줄 압니까? “부모님 돌아가신 건 돌아가신 거고 성적은 성적이잖아.” 참 지독하고 몰인정했지요.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 그 학생이 한 잔 먹고 우리 집에 쳐들어왔는데 책상을 탁 내리치면서 “선생님 그 때 잘못하셨습니다.” 따지더군요. “그래 뭐가 잘못됐냐?” 제가 말했죠. “학점은 그렇게 짜게 줘도 되는데 그렇게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 학생의 말이 맞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상대방의 가슴에 못 박으면서까지 소위 합리적으로 하려했다는 것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요. 지금 같았으면 이렇게 얘기했겠죠. “야, 너 얼마나 힘들었겠냐. 시험까지 못치고, 그래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그랬으면 그 학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거고, 또 설사 그 점수를 그대로 줬다 해도 그 학생이 이해했을 거예요. 저는 원효가 정에도 어긋나지 않고 도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불합리하다고 하는데 불합리한 것도 중요합니다. 누가 자기 자식을 끌고 파출소로 가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상대방의 정에도 도리에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원효는 ‘도리가 없는 그것이 지극한 도리이고 그렇지 않다는 그 속에 크게 그러함이 들어있다(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렵지요. 원효의 사상은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고, 또 있어야 됩니다. 원효가 굉장히 논리적이고 철학적이고 깊숙이 사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거기에 대한 깊은 사유가 없었다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부분은 어려운 채로 남겨두고 일단 넘어가도록 하지요. 이제는 조금 쉬워질 겁니다.
언어에 의지해 말을 여읜 법을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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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말 떠났지만 말할 수 있기도 하다 두 극단 떠나야지 方外에서 노닐 수 있어
화쟁(和諍)에서 쟁(諍)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말씀 언(言)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쟁은 말로써 옳고 그름을 가립니다. ‘쟁(諍)’에서 말씀 언이 빠져 버리면 전쟁의 ‘쟁(爭)’이 돼버립니다. 부부싸움도 그렇지요. 말로 할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심해져서 베개가 날아가고 그러면 전혀 문제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말이 빠져 버리면 아주 심각해져 버립니다.
오늘날 철학에서도 언어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일찍부터 언어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라는 그 자체가 대단히 편하지만 이를 절대시해서 언어의 늪에 빠지면 마치 진흙에 큰 코끼리가 빠지듯이 언어의 늪에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그 의사소통을 잘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염화시중(拈花示衆)’도 바로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영혼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절망하고 “그래도 일생을 살아가는 가아(假我)로서의 몸은 있다.”라고 하니까 거기에 집착해 버립니다. 중생들이 언어의 늪에 자꾸 빠지니까 부처님께서 연꽃을 드셨고 이에 가섭이 빙그레 웃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때문에 선종에서도 불립문자를 강조하는 것 아닙니까.
언어 문자로 표현된 교법을 진리 자체로 절대화하면 그 표현과 다른 모든 것은 옳지 않다는 독단에 빠집니다. 이 때문에 타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원효는 진실은 말을 떠나 있기도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약 바나나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럼 그 사람에게 바나나 맛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언어를 동원한다고 해도 설명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이 필요 없이 바나나를 직접 먹어보게 하면 단번에 그 맛을 알 수 있지요.
언어가 얼핏 보면 굉장한 것 같지만 사실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기저기서 ‘사랑’ 타령이고 ‘사랑’을 떠받들지만 사실 진실로 사랑해보면 ‘사랑한다’는 말로 진심을 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렇듯 언어가 갖는 한계가 본질적으로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말도 안된다는 게 아니라 언어의 길이 끊어진 절대 경지란 의상 스님이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고 말씀하셨듯이 깨달아서 스스로 알 뿐 다른 경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사과를 먹어보고 바나나를 먹어볼 수밖에 없는, 어떤 글이나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럼 거꾸로 언어 없이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원효는 진리라는 것은 말을 떠나기도 하되 말에 의지하기도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기신론별기』의 말을 들어보지요.
이치는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말을 여읜 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理非絶言 非不絶言) 이치는 역시 말을 여읜 것이지만, 또한 말을 여읜 것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理亦絶言 亦不絶言)
언쟁에는 우선 말이 문제입니다. 말은 본래부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가락일랑은 보지 말고 달을 보면 그만입니다. 원효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언어에 의지하여 말을 여윈 법을 보여주고자 한다.(我寄言說 以示絶言之法) 마치 손가락에 의지해서 손가락 여윈 달을 가리키듯.(如寄手指 以示離指之月)
데이트하고 사랑하는 것도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오늘 달이 참 밝습니다.” 그러면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야지요. “그러내요. 그런데 달은 원래 밝잖아요.” 이렇게 대답하면 어떻겠어요? 이면에 담긴 뜻을 못보고 그저 달 자체만을 얘기하면 상대방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이 못됩니다. 한 선생님이 혀가 짧아서 ‘바담 풍’ ‘바담 풍’ 하면 학생들이 ‘우리 선생님이 혀가 짧아서 ‘바담 풍’이지 저게 바람이라는 뜻이구나.’하고 받아들이면 시비는 뚝 끊어집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건 바담이 아니라 바람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원효는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언어의 긍정적 측면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상대방의 말은 새겨서 듣는 것이 좋습니다.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면 상대방의 어떤 견해도 허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뜻을 새겨듣노라면 허용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원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과 같이 취하면 그 말하는 것이 모두 잘못이요(如言而取 所說皆非), 뜻을 얻어서 말하면 그 말하는 것이 모두가 옳다(得意而談 所說皆是)
말꼬리를 잡는 태도는 옳지 않고 말이 내포한 뜻을 살려서 이해하는 자세가 바람직합니다. 어차피 말이란 의사소통을 완전히 해주는 도구는 못됩니다. 그렇다고 편리한 이 언어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원효는 『능가경』의 말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진흙 속의 코끼리처럼 말 속에 묻혀버려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효의 화쟁 방법에는 전개와 통합이 자유롭고 긍정과 부정에 구애됨이 없었습니다. 원효의 저술에는 ‘총이언지(摠而言之)’, ‘별이논지(別而論之)’ 등 용어가 자주 보입니다. 이처럼 그는 통합과 전개의 방법을 잘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원효의 진리 탐구 방법은 개합의 논리로서 철두철미 일관되어 있다”고 지적한 이도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곧 연기(緣起)입니다. 그래서 전체와 부분은 종합적인 고리를 이루면서 있습니다. 곧 화엄교학에서 말하는 총(摠)과 별(別)은 더불어 있고, 하나와 전체도 같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도 ‘산을 보지 못한 채 골짜기에서 헤매거나 나무를 버리고 숲 속으로 달려가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개한다고 번거로워지는 것도 아니요, 합친다고 좁아지는 것도 아닙니다(開而不繁 合而不狹). 또 전개한다고 하나를 더 보태는 것도 아니고, 합친다고 해서 열을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開不增一 合不減十). 이것이 통합과 전개의 묘술(妙術)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합해서 논하면 일관이요(合論一觀), 열어서 말한다면 열개의 문(開說十門)입니다. 원효는 이처럼 통합과 전개에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용과 비판, 즉 긍정과 부정에도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긍정과 부정에 아무 구애가 없기에(立破無碍), 긍정한다고 얻을 것이 없고 논파한다고 잃을 것도 없다.” 이 또한 원효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거나 주장할 때, 자신의 입장이나 위치, 방향 등에 얽매여 있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안경으로 보고, 자기가 가진 잣대로 재며, 자기중심으로 인식하려 듭니다. 이로 인해 아집과 아상과 교만이 생겨납니다. 원효는 말했습니다. “종래에 『起信論』을 해석한 이들이 많지만 진정으로 그 뜻을 밝힌 사람은 적다”고.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기 익힌 것을 지켜 문구에 구애되고 능히 마음을 비워서 뜻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不能虛懷而尋旨) 이 때문에 논주(論主)의 뜻에 가까이 하지 못한다. 혹 근원을 바라보고서도 헤매며 떠돌고(或望源而迷流), 혹은 잎을 붙잡고 줄기를 잃어버리며(或把葉而亡幹), 혹은 옷깃을 베어 소매를 깁고(或割領而補袖), 혹은 가지를 꺾어 뿌리에 댄다(或折枝帶根).
대상의 세계를 아전인수로 곡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심(無心)과 무념(無念)의 상태가 필요합니다. 곧 마음 놓는 것이고 허심탄회해지는 겁니다. 허심탄회에는 전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선생, 나는 나이가 많고 너는 학생이고 나이가 적고 등등. 그런데 이걸 버리는 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무념을 얻으면 상대방과 더불어 평등해진다.” 이 또한 원효가 주목했던 『기신론』의 구절입니다. 잣대 밖의 더 큰 것을 재기 위해서는 고정의 잣대를 버려야 합니다.
일제시대에 한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등에 지는 지게를 한 200여 종 모았다고 합니다. 지게를 모아놓고 결론을 내리기를 ‘조선민족은 아마도 잣대가 없는 민족인 것 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설계도도 없고 아무리 찾아봐도 설명서도 없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만드는 겁니다. 그 때 내 스승이신 효당 스님이 원효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원효의 논리를 가지고 응용해서 말씀하시기를 ‘조선민족은 잣대가 없기 때문에 잣대 밖을 잴 수 있다’는 명언을 하셨습니다.
잣대가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잣대를 강조해도 창의성을 잃게 됩니다. 그게 원효가 갖고 있던 생각입니다. 원효는 두 극단[二邊]을 벗어나야 방외(方外)에 노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이치 하나 아니지만 다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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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他意가 모두 다 부처님의 뜻 다른 것 아니기에 모든 부문이 한 맛
<사진설명>이종상 화백이 그린 원효대사 표준 진영.흔히 우리는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쉽게 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을 비우고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효는 한쪽으로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보신(報身)에 대해 상주라는 집착과 무상이라는 집착이 있는데, 두 분의 주장 중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리는가? 어떤 분은 말하기를 다 맞기도 하고 다 틀리기도 하다. 그 이유는 만약 한쪽만 결정적으로 집착하면 다 과실이 있고(若決定執一邊 皆有過失), 장애가 없이 말한다면 다 도리가 있는 것이다(如其無障碍說 俱有道理).편협한 생각에 얽매여 일방적으로 한 면만을 고집하거나 한 가지 입장만을 절대화하고 독단화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경우,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원효의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에는 원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 들은 바 좁은 견해만을 내세워, 그 견해에 동조하면 좋다고 하고, 그 견해에 반대하면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아서, 그 구멍으로 하늘을 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적은 것을 믿어 많은 것을 비방하는 어리석음이라고 한다.편협한 사고는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싸움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정된 자기 견해에만 열광적으로 집착함으로 다른 견해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종교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특정 신념과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만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졌는가 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복 하냐 그렇지 않으냐 아닙니까. 기독교면 어떻고 불교면 어떻습니까. 신념의 노예,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철 타고 가다보면 간혹 막 협박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뭐 안 믿으면 큰일 난다고. 그럴 때면 ‘당신만 가만히 있으면 다 괜찮을 거요.’란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원효가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면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異其見者 咸是脫失)’고 지적한 것도 이렇기 때문입니다. 화쟁이라는 것은 다양성의 인정에서 출발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오직 한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문은 많고, 그 문으로 향한 길도 많습니다. 그래서 원효는 『기신론소(起信論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법문이 한량없어 오직 한 길만이 아니다(法門無量 非唯一途). 이 때문에 곳을 따라 시설해서 모두 도리가 있다(故隨所施設 皆有道理).세상의 이치는 하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른 것도 아닙니다. 불일(不一)이기에 모든 방면에 통하고, 불이(不異)이기에 어떤 길도 통합니다. 서울로 오는데 만약 남대문으로만 오라면 되겠습니까? 남대문으로 올 수도 있고 동대문으로 들어와도 되지요. 또 오는 방법도 기차타고 오는 방법도 있고 비행기 타고 오는 방법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와도 됩니다. 남대문으로만 자전거 타고 들어오라면 좁아서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요. 그런데 이렇게 상식적인 것 같아도 어느 면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지극히 비상식적입니다. 예전에 변선환 목사님이라고 신학을 전공하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타종교에도 약간의 구원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 때문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오로지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이냐 하면서 교수직 박탈당하고 교단에서 축출된 채로 얼마 후 돌아가셨습니다. 여러 길이 있는데 한 가지 길만 옳고 다른 길은 전혀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법에 이르는 길은 한량이 없습니다. 한 길만 있는 게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원효는 또 『열반종요』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가 아닌 까닭에 모든 부문에 해당하고(由非一故 能當諸門), 다른 것이 아닌 때문에 모든 부문이 한 맛이다(由非異故 諸門一味).
<사진설명>경주 황룡사지. 이곳은 원효가 출가했던 도량이기도 하다.인생의 길이 어찌 하나 뿐이겠습니까. 어찌 어느 한 길만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어느 길도 행복의 동산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도 그것은 한 맛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문으로 오건 서울에 올라와 살면 모두가 서울시민이지 고향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다음 『범망경보살계본사기(梵網經菩薩戒本私記)』에 나오는 원효의 말을 음미해보록 하지요. 부분적[別觀]으로 도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처님은 많은 법문을 하여 그 들어가는 문은 많게 되었지만, 그 이치로 볼 때는 둘이 없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저 한 성에 네 개의 문이 있어서 들어가는 데는 비록 한 문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도 일단 성 안에 들어가면, 둘이 없음이니, 이 뜻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차별문으로 말하자면, 이 문이 저 문이 아니고, 저 문이 또한 이 문이 아니나, 저 전체적인 문[通門]은 부분적인 문[別門]을 다 가지고 있다. 비록 그물눈은 하나하나 달라 차별이 있지만, 그물은 그물눈들을 다 가지고 있으니, 그물눈이 바로 그물이라는 뜻이다.원효는 『본업경소』에서 ‘문 아닌 것이 없기에 일마다 모두 현묘(玄妙)함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도(道) 아닌 것이 없기에 곳곳이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다양성의 인정, 그것은 본래 불교의 기본 입장인 동시에 원효 화쟁 논리의 한 전제이기도 합니다. 비좁고 옹색한 가슴을 열면 창창한 하늘이 열립니다. 원효는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에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도는 넓고 탕탕하여 걸림이 없고 범주가 없다. 영원히 의지하는 바가 없기에 타당하지 않음이 없다. 이 때문에 일체의 다른 교의가 모두 다 불교의 뜻이요, 백가의 설이 옳지 않음이 없으며, 팔만법문이 모두 이치에 들어간다.이처럼 원효가 “일체의 타의(他義)가 모두 다 불의(佛義)”라고 가슴을 열었을 때, 또 “외도의 갖가지 다른 선도 모두 일승”이라고 인정할 때, 도교도 유교도 이미 그에게는 타의가 아니었습니다. 마땅히 알라. 제불의 법문은 하나가 아니기에(當知諸佛法門非一), 그 교설을 따라서 장애도 없고, 착란도 없다(隨其所說而無障碍而不錯亂).불교는 진리에 대한 독단과 종교 자체의 절대화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붓다는 집착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뗏목의 비유를 들고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뗏목의 비유로써, 교법을 배워 그 뜻을 안 뒤에는 버려야 할 것이지 결코 거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법(法) 아닌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이처럼 불교에서는 교법에 집착하는 것까지도 미련 없이 떠나라고 가르칩니다. 이 교훈에 의하면, 종교가 ‘절대 신념체계’라는 견해까지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 용어는 동양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지극히 서구적인 표현입니다. 뗏목은 타고 건너가면 그냥 버려야 될 것이지요. 종교는 결국은 뗏목이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일체의 타의가 모두 불의(佛意)라고 눈 크게 뜰 때, 도교도 유교도 그에겐 이미 타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동서문명 융화-공존 위한 수승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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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명 중심론으로 인한 갈등 증폭 문명 충돌을 공존으로 바꾸는 건 ‘관용’
<사진설명>전북 부안 개암사 원효방. 이곳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원효가 여기서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샘물이 솟았다고 한다.
21세기는 충돌로 시작되었습니다. 충돌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충돌로 치닫는 세계 질서는 어떻게 진단해야 할 것이며, 동서문명의 충돌을 어떻게 공존과 조화로 바꾸어 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불교사상에서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말 공산세계가 무너지면서 냉전체제는 끝났습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이를 ‘역사의 종말’로 해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종말을 목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이념적 진화가 종착점에 이르렀고, 인간이 만든 정치체제의 최종 형태로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승리, 서구문명의 세계 정복은 피상적인 현상일 뿐,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명이라고 하면서, 21세기 초의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문명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합니다.
‘문명의 충돌’, 헌팅턴이 제기한 이 명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비판과 반론 또한 만만치 않지만, ‘문명의 충돌’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화두가 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특히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9.11 테러와 이에 맞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서 ‘문명의 충돌’은 인구에 회자되기에 이르렀고, 이미 정치 및 시사용어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이 던지는 파장 또한 적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문명의 충돌’이란 개념의 배후에 있는 이론은 구제불능의 결함을 안고 있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하랄드 뮐러(Harald Muller)의 강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세계의 현실 정치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팅턴은 간결한 이론이나 모델을 명쾌하게 수립하여 정책 입안자들에게 필요한 지침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탈냉전 세계를 7~8개의 주요 문명으로 구분하면서도, 이를 다시 하나의 서구와 다수의 비서구로 단순화시킵니다. 그리하여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서구문명의 보편성을 관철하려는 서구, 그중에서도 미국의 노력과 서구의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생겨나는 부조화라고 말합니다. 유교와 이슬람국가들은 서구에 맞서 서구를 견제하려 하는데, 가치관과 이익을 둘러싼 서구와의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헌팅턴은 또 9·11테러 이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서구문명은 자기 방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서구는 다른 문명보다 기술적 군사적 우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며, 이슬람국가들과 중국에 대해서는 재래식 군사력이든 비재래식 군사력이든 개발을 막아야 한다.”
이와 같은 헌팅턴의 주장은 미국 중심의 흑백논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극히 단순화된 도식에 따라 세계를 양분하여 이해하고 서구문명의 방어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서구가 다른 문명의 내부 문제에 대해 개입하지 말 것도 당부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입장에는 다른 문명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문명의 공존이나 교류에 대한 관심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헌팅턴의 견해를 따르게 되면, 문명다원주의는 끝나야 하고, 단일 문명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또 국경을 넘어선 선교 활동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문명 사이에 경계를 명확히 그어 다른 문명과 만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면적을 최소화 하는 정치만이 숙명적인 전 세계적 대결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 서구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유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이 동맹을 맺는 악몽이 다가오게 됩니다. 헌팅턴의 이러한 진단은 서구문명의 방어에 집착한 결과로 도출된 오류일 뿐입니다.
카프라(F. Capra)에 의하면, 정신과 물질의 데카르트적 분리는 서구사상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마음과 물질의 이분법에서 세계를 개별적인 부분들로 분리해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는 현대 서구문명의 기저를 이루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분석적, 합리적, 이원론적, 경쟁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사실 서구문명에는 이분법적 단순 논리가 강조될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단계마다 ‘우리와 그들’의 도식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선을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사적 과제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우리와 그들’, 혹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는 최고의 정치 위기에도 영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1946년 윈스턴 처칠(Churchill) 전 영국 총리는 ‘철의 장막’이라는 용어로 자유세계와 억압적 공산세계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오만하고 단순화된 미국의 정책은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와 그들’, 선과 악이라는 도식에 기초하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헌팅턴의 견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헌팅턴이 제시한 이론은 이미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계를 선과 악의 두 편으로 나누고 대결을 부추기는 부시의 연설은 극히 단순한 발상이며 독단적 독선주의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이 선하고 자기와 입장이 다른 모든 국가와 민족은 악하다는 극단적인 독선주의는 갈등을 더욱 부추길 뿐입니다.
단순한 도식으로 세계사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계 정치 현실의 복합성이나 도덕적 판단의 애매성 등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중생들의 공업(共業)에 의존하여 형성됩니다. 업(業)은 역사와 세계의 창조자이고 유지자이며 또한 파괴자입니다. 세계의 모든 일은 중생의 온갖 행위가 얼키고 설키면서 서로 작용하여 일어납니다. 문명도 결국 중생들의 집단적 행위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문명도 명확한 형이나 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문명 안에 있는 중생들의 집단적 행위의 성질에 따라 구분될 뿐입니다.
헌팅턴이 문명권을 구분하는 일차적 기준은 종교입니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입니다. 따라서 그는 세계의 문명을 종교를 중심으로 구분했고, 이에 의해서 크리스트교권, 정교권, 이슬람권, 유교권, 불교권, 힌두권 등을 설정했습니다. 물론 종교가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권, 아프리카권, 일본권 등도 선정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가 여러 문명권을 설정했지만, 결국은 크리스트교권 대 여타 문명권의 대립양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종교학자들은 흔히 종교는 절대 신념체계이며 궁극적 가치체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신념체계가 여럿이 공존하는 다종교 상황은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혼돈과 종교간의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는 위험을 내포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의 길만을 가야한다고 고집하는 종교가 적지 않습니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에 의하면,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타종교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피안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불교라는 길도, 기독교라는 길도 이슬람이라는 길도 있습니다.
불교는 진리에 대한 독단과 종교 자체의 절대화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집착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뗏목의 비유를 들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교법에 집착하는 것까지도 미련 없이 떠나라고 가르칩니다. 이 교훈에 의하면 종교는 결국은 뗏목이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종교들의 대화에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만나서 서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변화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러기에 문명도 변하고 변화를 통해서 문명은 서로 교류합니다. 문명은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합니다. 고정불변의 문명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문명간의 관계를 경직되고 불변하는 모습으로 파악하여 문명 전쟁을 논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라는 지적은 옳습니다. 어떤 문명도 외부와 격리된 채 홀로 존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의 문명이란 언제나 다른 여러 문명과 제휴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또한 문명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종의 차이 등을 뛰어 넘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문명간의 교류는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운송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이 세계는 지구촌으로까지 불리게 되었습니다.
종래에 국가 단위나 지역 단위의 경계를 가지고 전개되었던 인간의 여러 활동이 세계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문명의 접촉은 빈번해졌고, 타 문명의 유입과 전파 또한 자유로워졌습니다.
서구는 다른 문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약 서양이 동양의 윤리와 신비, 그리고 대승불교의 발전을 받아들여 융화한다면, 세계는 인류가 바라는 곳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알버트 슈바이처의 이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의 기독교는 불교의 관용의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관용이야말로 문명의 충돌을 문명의 공존으로 바꾸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화엄적인 연기관에 의하면, 존재들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해, 포용과 상호 존중의 통합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으로 설명됩니다. 상즉은 근원적인 동질성을, 그리고 상입은 상호 의존 및 침투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 세계는 무수히 분리된 객체로 조립된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서 역동적인 관계의 그물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융합은 일치나 동질성을, 그리고 획일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 이것은 원효가 즐겨 사용하는 논리입니다.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보편성이나 다양성을 전제로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되 통합이나 통일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융합하는 것입니다. 곧 융이(融二)입니다. 원효의 화쟁논리인 융이이불일, 이는 동서문명의 융화나 공존을 위해서도 유효한 논리입니다.
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 | 827호 [2005년 11월 07일]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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