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성품은 오염되지 않은 ‘본마음’ (월호스님의 선어록의 향기)

장백산-1 2011. 3. 24. 11:26

성품은 오염되지 않은 ‘본마음’

 

교문(敎門)에는 오직 일심(一心)법을 전하고,

  

선문(禪門)에는 오직 견성(見性)법을 전했다. 

 

                                                                            - <선가귀감 8>-

 

주해(註解) : 마음은 거울의 바탕과 같고, 성품은 거울의 빛과 같다.

성품이란 저절로 청정한 것이므로 즉시 활연하면 곧 본마음을 얻는다.

여기서는 깨친 한 생각을 중요하게 보인 것이다.

송(頌) : 첩첩이 쌓인 산과 물이여,

맑고 깨끗한 옛 가풍이로다.

사족(蛇足) : 교문에서 말하는 일심은 중생심(衆生心)을 말한다. 우리 모두가 나날이 쓰고 있는 마음이다.

이 한마음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진여(眞如)문과 생멸(生滅)문이다.

진여문은 진리에 합당한 자리, 즉 본마음자리를 말한다.

생멸문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마음자리와 몸 자리이다.

그러므로 일심법은 본마음과 마음 그리고 몸을 모두 포괄한다.

중생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혹은 수백 번씩 진여문을 열었다, 생멸문을 열었다 하면서 살아간다.

선문에서 말하는 견성법이란, 성품을 보는 것이다. 성품은 바로 본마음이다.

본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다. 아니, 닦으려 해도 닦을 수가 없다.

일찍이 오염된 적 없고 앞으로도 오염되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만 원짜리 수표는 오염되고 더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만원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깨끗한 100만 원짜리 수표나 더럽혀진 100만 원짜리 수표나 똑같은 100만원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본마음은 단지 보면 되는 것이다.

 

마음은 거울의 바탕 같고

성품은 거울의 빛과 같다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을 말하는 이는 아직 성품의 문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성품의 문 안에 들어오게 되면 몸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은 더 이상 닦을 대상이 아니다.

단지 쉬어줄 대상이다. 무엇을 쉬어주는가? 몸과 마음이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쉬어주어야 한다.

무언가 실체가 있어서 닦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설혹 닦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점을 밑바탕에 깔고 닦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닦을 것이 없되 닦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품을 보는 것이다. 성품은 공(空)한 것이다.

텅 비어있으므로 무엇으로든 채울 수가 있다. 선인도 될 수 있고 악인도 될 수 있다.

부자도 될 수 있고, 가난뱅이도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한다. 내 작품이다.

얼마 전 대만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까오슝에서 타이베이로 오는 고속철에서 화장실을 찾았다.

그때 한 화장실은 입구에 ‘사용 중(使用 中)’이라는 표시등이 켜져 있었고,

맞은 편 화장실에는 ‘공(空)’이라는 표시등이 켜져 있었다.

‘공(空)’이라는 표시등이 켜진 화장실을 열고 들어가 볼 일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空)하므로 누구든 사용(用)할 수 있고, 사용(用)하면 누구든 공(空)해진다’

비어있어야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들어가서 제대로 볼 일을 보고나면 누구나 텅 비워진다.

이것이 바로 공에 대한 좋은 예가 아닐까?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출처 : 석가모니불
글쓴이 : 동다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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