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화두를 念하지 말고 看하라(월호스님의 선어록의 향기)

장백산-1 2011. 3. 25. 13:03

화두를 念하지 말고 看하라



“공부를 짓되 다만 공안을 염(念)하지 말지니, 염해 가고 염해 오면 무슨 교섭(交涉)이 있으리오? 염하여 미륵불이 나올 때까지 이를지라도 또한 교섭함이 없을 것이니

차라리 아미타불을 염한다면 공덕이나 있지 않겠는가?

다만 하여금 염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각기 화두를 들어 일으켜야 할지니,

무자(無字)를 간(看)한다면 문득 무자(無字)상(上)에 나아가 의정을 일으키고,

백수자(柏樹子)를 간(看)한다면 문득 백수자에 나아가 의정을 일으키고,

일귀하처(一歸何處)를 간한다면 문득 일귀하처에 나아가 의정을 일으켜야 한다.”

                                                                                     - <몽산법어(蒙山法語)> -

화두를 드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의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오지심(待悟之心)을 경계하여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한 것도 그러한 알음알이가 의정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나아가 의정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화두를 드는 요령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더러는 이러한 요령을 정확히 터득치 못함으로써 헛되이 공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표적으로 조주의 무자(無字)를 간(看)할 때, 그저 무(無)! 무(無)!를 되풀이하여 드는 경우가 있다. 이야말로 잘못된 방법이다. 길을 갈 때도 무, 앉을 때도 무, 옷을 입거나 밥을 먹을 때도 무, 언제나 무라고 하며 혹은 천천히 하기도 하고, 혹은 호흡과 관련지어 급하게 하기도 하는 것 등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무(無)라는 말에 달라붙어서 의정을 일으켜야지, 그저 무, 무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귀한 물건 잃어버리고 찾듯

의심하고 또 의심해 나가야


의심을 일으킬 때는 반드시 먼저 분노심을 내어 ‘조주는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하고 의심을 해야 한다. 이 분노심은, 소리를 내거나 내지 않거나 학인들이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하나의 ‘조주는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하는 의심을 지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화두는 처음부터 의심을 지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분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따금씩 소리를 내어 ‘어째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라고 하면 혼침과 도거가 사라진다. 이와 같이 해서 공부를 짓되, 정신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혹은 염화두(念話頭)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심을 지어 나가는 요령에서도 또한 우선은 화두 전체를 들어서 챙기고, 그리고 나서는 ‘도대체 모든 생명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셨거늘 조주는 무엇을 인(因)하여 무(無)라 일렀을까?’, ‘어째서 무라 했을까?’, ‘어째서?’, ‘왜?’, ‘?’ 하는 식으로 지어 나가는 것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 (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를 들 때에도 요령은 마찬가지이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하여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에다가 의정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마치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리고 ‘도대체 어디에다 두었을까?’하고

의심하고 의심해 나가듯이 의심을 지어 나가야하는 것이다.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출처 : 석가모니불
글쓴이 : 동다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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